12년째 한 직장에서 일하는 이상실씨(가명)는 두 살배기 아이를 키우고 있다. 대학 졸업 직후부터 쉬지 않고 일해 남편과 합치면 소득 상위 10%에 들게 됐지만 마찬가지로 다 제하고 나면 한 사람 월급 정도 남는다. 그 역시 아동수당을 받기 어렵게 됐다. 제도의 혜택에서 벗어난 게 처음은 아니다. 아이를 가지기 전 소득 기준에 걸려 난임 수술비 지원도 받지 못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아이 돌봄 서비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금수저 외벌이’는 복지 혜택을 받고 ‘흙수저 맞벌이’는 역차별을 받아왔다고 이씨는 생각한다.
고소득 맞벌이 가정은 물론이고 아동수당의 도입을 반기던 시민사회와 학계 역시 제도가 도입되기도 전에 취지가 훼손된 데에 우려했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내고 “아동수당을 선별적 제도로 퇴색시켜 보편적 아동권리 보장이라는 목적을 무색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행정비용과 소득계층의 불화를 야기할 것으로 보여 우려스럽다”라고 주장했다. 최영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왜 10%를 제외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제도를 설계할 때 오랜 논의 과정을 거쳐 안을 마련하는데 근거도 없이 단기간에 바뀌었다. 재원 때문에 10%를 줄였다면 차후에 같은 이유로 또 줄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아동수당은 가정에서 아동을 양육할 때 발생하는 비용을 보조하기 위해 가족에게 지급하는 현금을 의미한다. 정부 차원의 논의는 2006년 보건복지부 산하 대통령 자문기구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주로 저출산 극복 효과에 주목했고 도입은 장기적인 과제로 미루어졌다. 이후 정치권에서 국회의원들이 관련 법안을 내면서 논의를 이어갔다. 이낙연 총리도 국회의원 시절이던 2009년, 만 7세 이하에게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내용의 ‘아동수당에 관한 법률안’을 내놓은 바 있다.
아동수당의 도입이 현실화된 건 지난 대선 당시 주요 정당의 후보들 모두 아동수당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다. 사회적 공감대가 컸기에 후보들도 공약으로 구체화했다. 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가별 GDP 대비 아동 관련 지출 비율이 2013년 기준 평균 2.1%인 데 비해 한국은 1.1%에 불과하다. 이 중 현금 지원 형태는 0.2%(나머지는 사회 서비스)로 역시 OECD 평균인 1.2%에 한참 모자라는 수치다. 총량도 적지만 구조 역시 불균형하다는 걸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아동수당을 도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뉴질랜드가 1926년 아동수당을 최초로 도입한 이래 현재까지 90여 개 국가가 0세 이상 20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이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유럽에서 아동수당은 복지국가의 공적 역할을 가늠하는 척도로도 기능해왔다. OECD 회원국 중에서는 미국과 터키, 멕시코를 제외한 국가가 아동수당 제도를 운용한다.
아동수당은 아동의 빈곤을 예방하고 생존권을 확보하는 등 아동권리를 실현한다는 측면에서 기본적 의의가 있다. 돌봄 노동의 보완재로 지급되는 양육수당과 다른 점이다. 자녀가 없는 가구에서 자녀가 있는 가구로 소득재분배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를 유도하고 설계 방식에 따라 저출산 문제를 완화하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한국의 아동수당 논의는 저출산 문제에 집중되어 있는 편이다. 이번 예산안 편성을 앞두고 ‘10만원 줄 테니 아이 낳으라는 정부’ 프레임이 등장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김진석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저출산 정책을 아동수당과 지나치게 밀접하게 연관 짓는 건 경계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출산율 제고 측면에서 아동수당의 효과에 대해서는 일관된 근거가 축적되지 않았다. 다만 고소득층에서 둘째 아이를 갖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는 있다. 프랑스의 경우 출산율을 올리는 데 집중해 둘째 자녀부터 아동수당을 지원한다. 이처럼 국가 상황에 따라 설계 방식을 다양화하고 있다.
선진국 대부분 아동수당 보편적 지급 택해
지급 대상의 범위는 도입 전부터 우려를 낳았던 부분이다. 아동수당의 경우 독일·스웨덴·핀란드·오스트리아 등 유럽 국가 대부분이 나이에 따라 차등은 있지만 보편적 지급을 택하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은 각각 2013년, 2015년부터 소득별 차등을 두었다. 아동복지 수당 이외에도 복지 제도가 비교적 촘촘한 나라의 이야기다. 최영 교수는 “우리의 경우 보편적인 복지 프로그램이 거의 없다. 영국은 무상의료 서비스 등 다른 복지가 잘 되어 있다. 한국은 선별적 복지가 많아 중산층의 불만이 쌓이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당사자들의 반발이 다만 아동수당 제도에서 비롯된 일은 아니라는 의미다. 김진석 교수는 “예산안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아동수당을 카드로 써 보편적 취지를 훼손한 셈인데, 야당은 그렇다 치더라도 여당 안에서 정책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는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소득을 기준으로 아동을 선별하는 방식이 사회 통합을 해치고 행정력을 낭비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합의안을 계기로 부동산 등 자산을 포함한 소득 기준을 정하기 위해 연구용역비, 인건비 등 행정비만 수백억원이 소요될 전망이다. 벌써부터 이 기준을 두고 혼란이 일고 있다. 노인과 달리 젊은 층은 소득 지위도 계속 변하기 때문에 관리 비용이 발생한다. 납세자와 수혜자를 분리할 경우 제도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납세자의 정책적 지지가 약해져 제도의 지속성을 담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맹점 역시 안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득수준에 따른 선별보다 모든 아동에게 주되 과세 등을 통해 일부 환급하는 방식을 제안하기도 했다. 일부에선 아동수당으로 편 가르기를 하기보다 국공립 어린이집·유치원 확충에 예산 편성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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