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이 지나면 ‘꼼짝할 수 없는 본격적 겨울’이 닥친다. 81년 전 신문에 따르면 김장과 솜옷 준비가 당장 큰일이다. 겨울나기 음식 문화 가운데 하나인 김장 김치는 한국인의 오랜 문화다. 삼국시대의 편린에 기대 김치 역사 3000년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매일신보〉 1936년 11월7일자는 신문 5단을 할애해 김장을 다룬다. ‘시세’는 그 중심에 있다. 이때 한반도 북부에서 서울로 공급되는 배추, 특히 평양 배추에 대한 평가가 눈에 띈다. “그중에 평양 배추가 속 잘 들고 싹싹하여 맛이 있습니다.” 속이 든다니, 속이 안 차는 배추도 있는가?
고려 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전해진 배추는 속이 차지 않고 상추처럼 퍼지는 비(非)결구배추였다. 18세기 말 이후 중국에서 속이 든 결구배추가 새로이 도입되었다. 더러 잡종이 생기면서 반(半)결구배추가 개성과 서울 쪽에 자리를 잡은 듯하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산동에서 건너온 화교에 의해 결구배추는 더욱 널리 조선에 퍼졌다. 결구배추가 음식 문화사 최근 100년의 신출내기란 말이다. 김동인 소설 〈감자〉(1925)에 나오는 왕서방의 배추밭이 바로 화교가 가꾼 결구배추 밭이다.
그런가 하면 고려 시인 이규보(1168∼1241)는 오이, 가지, 무, 파, 아욱, 박의 맛과 미덕을 읊은 ‘가포육영(家圃六詠)’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장에 익힌 무장아찌는 한여름에 먹기 좋고[得醬尤宜三夏食] 소금에 절인 무는 겨울 내내 반찬 되네[漬鹽堪備九冬支].” 이 또한 김장의 원형으로 되새길 여지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둥근 물체를 차며 벌이는 놀이가 곧 사커(Soccer)는 아니지 않은가.
여느 채소절임 또는 짠지와는 확연히 다른 젖산발효에 의한 김치의 역사는 한마디로 요약하기 참 어려운 주제다. 그래도 연구는 이어진다. 세계김치연구소 문화융합연구단 박채린 단장의 연구를 거칠게 요약하면, 20세기 초반 김장 문화 속에서 통배추김치가 화려하게 꽃피면서 김치의 보편적인 주류로 떠올랐다. 김치의 재료는 무와 배추로 집약되었고, 더구나 속이 꽉 차는 결구배추가 보편화되었다. 거기에 오늘날 우리가 익히 접하는 갖가지 부재료가 통배추김치와 만나 그 이채로움과 세련됨을 더했다.
결구배추는 배춧잎도 두껍다. 달큰한 즙을 좀 더 넉넉히 쥔다. 싹싹하다고 할 만하다. ‘싹싹하다’란 물 많은 배 씹을 때처럼 정말 보드랍고 연하다는 말이다. 잎잎이 포개어진 꼴이므로, 잎잎이 양념을 가지런히 채워 시간을 두고 폭 익히기 좋다. 한 포기씩 풀고 썰어 먹을 수 있으니 오래 두고 먹기도 좋다. 배추·무만큼이나 중요한 고명의 재료인 파·고추·실고추·마늘·생강·청각·쑥 또한 통배추김치 김장을 전제로 한 것이다.
결구배추로 새로운 김치 문화사를 만든 서민 대중의 감각
과거 김치 거리를 말할 때 보통 ‘무·배추’라 했다. 무가 배추에 앞서는 김치 재료였다. 그러다 1900년대를 지나 결구배추가 통배추김치에 이어지면서, 겨울에서 봄까지 통배추김치를 반양식으로 삼으면서 배추김치는 어느새 무김치를 압도하게 되었다. 채만식 소설 〈소년은 자란다〉(1949)에는 만주에서 서울로 온 주인공이 난생처음 서울식 김치를 맛보는 장면이 있다. 주인공의 김치 시식 평이 이렇다. “물같이 연하고 고기보다 더 맛이 있는 배추김치.” 이 관능 평가에 신출내기 종인 결구배추로 새로운 김치 문화사를 만들어간 서민 대중의 감각이 요약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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