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확립되었다고 믿었던 민주주의의 기본 문법이 세계 곳곳에서 흔들리고 있다. 이번엔 독일이다. 가장 안정적인 정치체제로 손꼽히던 독일이 불확실성의 소용돌이로 들어갔다. 유럽연합의 중심 국가 독일이 흔들리면 유럽연합도 불안정해질 수 있다. 총선 이후 독일 정치의 전개 과정을 살펴보면, 21세기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고민이 압축되어 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이하 기민·기사 연합)은 9월24일 총선에서 제1당 유지에 성공했다. 하지만 두 달 가까이 이어진 연정 협상이 11월19일 결렬되면서 새 정부 구성에 실패했다. 기민·기사 연합이 시도한 ‘자메이카 연정(세 당의 상징색인 검정·노랑·초록이 자메이카 국기 색이라 붙은 별명)’은 자유민주당(자민당)과 녹색당을 연정 파트너로 삼는 것이었다. 총선에서 세 당은 합쳐 52%를 득표했다. 득표율이 그대로 의석에 반영되는 독일 선거제도에 따라 자메이카 연정은 다수파 정부를 구성할 유일한 옵션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시장과 기업의 자유를 중시하는 자민당과, 환경보호와 진보적 의제를 강조하는 녹색당이 정부를 구성하기가 매우 까다롭다는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되었다. 연정 협상은 석탄 발전과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 제한 등 환경 이슈에 더해 난민 이슈까지 꼬이면서 결국 결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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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옵션은 왜 불가능했을까. 오른쪽 〈표〉를 보자. 총선에서 제3당으로 약진한 AfD(독일을 위한 대안)는 극우 포퓰리즘 정당이다. 독일 주류 체제의 수용 범위를 넘어가는 정당으로, 연정 파트너로 고려할 수 없다. 제5당인 좌파당은 사회민주당 좌파 블록이 떨어져 나가 옛 동독 공산당과 연합한 정당으로 강성 진보 성향이다. 역시 연정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다수파 구성이 가능한 옵션은 둘이었다. 첫째, 자메이카 연정. 둘째, 대연정. 대연정이란 독일의 주축 보수·진보 정당인 기민·기사 연합과 사회민주당(사민당)이 함께 정부를 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2차 대전 이후 세 차례 있었다. 사민당은 9월 총선 패배 직후 대연정은 없으며 야당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왜 총선 직후 사민당은 대연정을 거부했을까. 역사를 되짚어보면 답이 보인다. 최초 사례인 1966년 대연정은 사민당 집권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 대연정에서 외무장관을 맡은 빌리 브란트는 기존의 대결주의적 동독 정책을 뛰어넘어, ‘접근을 통한 변화’와 ‘긴장 완화’를 축으로 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도입한다. 사민당은 1969년 총선에서 집권에 성공했고, 브란트는 총리가 되어 자신의 동독 정책을 독일(당시 서독) 사회의 표준으로 격상시킨다. 사민당의 관점에서 이 대연정은 집권으로 가는 징검다리 구실을 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성사된 두 차례 대연정은 정반대 효과를 냈다. 2005년 대연정 이후 치러진 2009년 총선에서 사민당은 23%를 득표했다. 2차 대전 이후 최악의 참패였다. 대연정은 2013년에 다시 꾸려졌다. 평가는 더 가혹했다. 2017년 총선에서 사민당은 20.5% 득표로 최악의 기록을 다시 경신했다. 대연정에서 총리를 배출한 기민·기사 연합의 성적표도 아름답지는 않다. 대연정 직후인 2009년 총선에서 33.8%, 2017년 총선에서 33%를 득표했다. 이 두 수치는 1949년 총선 이후 최악이다.

예나 대학의 올리버 륌베크 교수(정치학)는 “이번 총선 최대 사건은 극우 포퓰리즘 정당 AfD의 약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독일 정당체제를 떠받치는 양대 정당이 동반 추락했다. 이것이야말로 정당체제가 흔들리는 사건이다. 일정 부분 대연정의 결과다. 급박한 국가 위기 상황에서는 대연정이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일상적 상황에서 대연정이 이뤄졌다. 이 경우 정부에 불만과 반대를 표현할 통로가 군소 정당밖에 없다. 좌우 극단주의 정당의 득표율 합이 20%를 넘긴 이번 선거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사민당이 애초에 대연정을 거절한 결정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대연정은 정부에 참여함으로써 지지층에게 어느 정도 자원을 배분해준다. 독일노동조합연합(DGB)이나 독일 금속노조 등 사민당의 핵심 지지 기반인 노조는 이런 이유로 대연정을 선호한다. 하지만 사민당 차원에서 보면 대연정은 당장의 실리를 받는 대신 당의 존립 기반을 갈수록 좁아지게 만들었다. 베를린 자유대학의 김상국 교수는 “대연정은 기성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혐오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기존의 좌우 구도가 아니라, ‘기성 체제 대 체제 밖의 반대파’ 구도를 형성한다. 대연정을 한 번만 더 하면 궤멸적 타격을 받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사민당에 있다”라고 말했다.

ⓒEPA10월24일 제19대 독일 연방의회가 개원했지만 아직 연정은 구성되지 못했다.
사민당 처지에서 성공적이었던 1966년 대연정 당시에는 이렇다 할 극단주의 세력이 서독에 존재하지 않았다. 유권자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단순했고, 사회경제적 노선과 동독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양대 정당 중 한 곳을 택하면 되는 문제였다. 1960년대의 제1세계 정치는 대체로 안정된 좌우 정립 상태를 유지했다. 독일은 그중에서도 특히 모범적인 온건 다당제 사례로 꼽혀왔다.

대연정이 키워준 독일 극단주의 정당

21세기는 신기술과 불평등과 이민과 난민과 유럽 통합 실험이 한꺼번에 몰려온 시대다. 20세기의 안정된 좌우 선택지 자체가 뒤흔들렸다. 극단주의의 등장은 20세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으로 대연정의 리스크를 끌어올렸다. 이제 대연정으로 들어가는 양대 정당은 좌우 극단주의에 나란히 지지층을 잃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1966년에는 없던 위협이다.

이로부터 묘한 역설이 등장한다. 지금 독일에서 극단주의는 대연정을 제약하는 힘인 동시에 대연정을 압박하는 힘이다. 자메이카 연정 협상이 최종 결렬되고 독일 사회는 “결국 대연정 외에는 답이 없다”라는 압력을 양대 정당에 쏟고 있다. 상징적 국가원수인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사민당의 총리 후보였던 마르틴 슐츠 대표를 만나 대연정을 권유했다. 극단주의 세력을 배제하고 다수파 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 유일한 옵션이 대연정이라서다. 하지만 21세기에 이뤄졌던 두 차례 대연정은 양대 정당에게는 독이었고 극단주의에게는 훌륭한 배양액이었다. 독일의 기성 양당은 딜레마로 내몰렸다.

대연정 외에 이론적으로 가능한 옵션은 소수파 정부 구성과 재선거가 있다. 전자는 2차 대전 이후 독일 정치사에 전례가 없다. 소수파 정부는 입법부에서 법안 부결의 위험을 늘 감수해야 하므로 근본적으로 정부가 취약해진다. 핵심 법안이 부결될 경우에는 언제든 조기 선거로 내몰릴 수 있다. 후자는 9월 총선 결과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경우 결국 같은 상황으로 돌아올 수 있다. 심지어 정치 환멸이 높아질 경우 극단주의 정당이 더 약진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메르켈 총리와 슐츠 사민당 대표는 11월30일에 회동했다. 총선 직후 대연정은 없다고 선언했던 사민당은 70여 일 만에 일단 연정 협상 가능성을 내보였다. 여전히 사민당의 내부 사정은 복잡하다. 대연정이 당의 지지 기반을 좁히고 극단주의 정당에 공간을 열어줬다는 비판은 변함없이 유력하다. 하지만 독일이 정부 구성을 하지 못하고 표류할 경우 그 불확실성은 유럽 전체로 파급된다. 독일은 유럽연합의 노선과 방향을 결정하는 사실상의 지도국가다. 기성 체제를 떠받치는 정당으로서 책임감을 발휘해야 할 때라는 유럽연합 차원의 압박이 사민당에 쏟아졌다. 슐츠 대표는 유럽연합 국가 지도자들과 통화하면서 “사민당은 책임감을 인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독일 정치는 21세기 세계가 받아든 숙제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20세기 독일에서 온건한 정당 체제는 모범적으로 작동했고, 연정은 독일의 기본 문법이 되었다. 1966년 대연정은 극단주의로부터 위협받지 않았다. 2017년에는 이 모든 것이 흔들렸다. 정당체제는 분극화되었다. 양대 주요 정당에 자민당 하나 정도가 추가되던 독일의 ‘2.5당제’는 이제 6개 정당이 연방의회에서 각축하는 다당제로 바뀌었다. 그중 적어도 하나(보기에 따라 둘일 수도 있다)는 독일 체제의 용인선을 넘어서는 극단주의 정당이다. 연정 협상의 어려움도 커졌다. 20세기 독일에서 연정 협상이란 양대 정당 중 누가 자민당을 잡는가의 문제였다면, 이제는 자메이카 연정 협상 실패가 보여주듯 군소 정당끼리의 이견만으로도 연정 자체가 깨지는 상황이다.

이런 현실에서 대연정은 사실상 유일하게 작동 가능한 대안으로 떠오른다. 바로 이 현실을 만든 극단주의가 대연정이라는 토양에서 자라났다.

기민·기사 연합과 사민당은 둘 다 유럽 통합을 지지하는 세력이다. 메르켈 총리는 ‘유럽의 여제’로 군림하면서 유럽의 노선을 ‘독일화’했다. 강한 재정 규율과 독립적인 중앙은행이라는 독일 모델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유럽 재정위기를 거치며 유럽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사민당도 사회정의 이슈에서 좀 더 적극적인 유럽을 원할 뿐 유럽 통합 반대파와는 거리가 멀다.

2017년 독일이 던진 의미심장한 숙제

그런데 이 양대 정당의 노선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대가 극우 포퓰리즘 정당 AfD를 타고 분출했다. AfD 지지층은 ‘개방’보다 ‘국경’에 단연 높은 가치를 둔다는 점에서 독일의 다른 유권자들과 진정으로 구분된다(지난 9월 총선 출구조사에 따르면 ‘개방’과 ‘국경’ 중에 더 중요한 가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AfD 지지자들은 ‘개방’ 14%, ‘국경’ 85%로 답했다. 독일 유권자 평균은 ‘개방’ 71%, ‘국경’ 27%였다).

20세기 민주주의에서는 좌우 주축 정당이 합의를 이룬 정책은 대단히 안정적으로 지속됐다. 이를테면 좌파는 국유화를 포기하고 시장경제를 받아들였고, 우파는 완전한 시장자유 대신 일정한 정부 개입과 사회안전망을 인정했다. 이렇게 가운데로 수렴된 노선은 국가 전체의 합의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었다.

이제는 다르다. 좌우 주축 정당과 연정 모델의 전형을 만들다시피 한 독일에서, 주축 정당 간의 합의가 안정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20세기에는 안정성의 원천이던 주축 정당 간 합의가 이제는 불확실성의 원천으로 돌변했다. 이 불확실성에 대응해야 하는 기성 체제는 주축 정당 간 합의를 더 강하게 다지는 길 외에는 대안을 찾지 못했다. 2017년의 독일이 던진 숙제는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이나 마린 르펜의 프랑스가 던진 숙제와는 결이 다르지만, 저 둘에 못지않게 의미심장하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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