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실습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게 세 번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특성화고 졸업생 복성현씨가 눈물을 흘렸다. 재학 중 세무사 사무실에서 현장실습을 한 복씨는 업체 직원에게 “학생이니까 돈 받고 학원에 다닌다고 생각하라”는 말을 들었다. 초과근무를 했지만 최저임금도 받지 못했다. 무시하는 투의 발언이 이어졌고 그만두려 하자 “지금 그만두면 결혼해 뭐 먹고 살겠느냐”라는 말을 들었다. 학교에 말하니 교사는 “참으라”고 말했다. 교사는 현장실습을 그만둔 학생을 ‘배신자’라고 불렀다. 대학에 진학하는 친구에게도 배신자라며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취업률을 올리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그와 교사, 업체 모두 현장실습이라는 단어 대신 ‘취업’이라는 말을 썼다. 11월30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폐지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복씨의 말은 제도적으로는 학생이지만 현실은 노동자인 현장실습생의 현실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현장실습 제도는 애초 교육적인 고려에서 시작된 게 아니다. 예산 부족을 이유로 시행되었고 산업화 시대, 값싼 노동 인력의 대체재로 활용되다 지금에 이르렀다. 파견형 현장실습의 시작은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반고등학교와 직업고등학교의 구분이 없던 시절, 산업교육진흥법이 제정되면서 직업교육을 위한 실업계고등학교(실업고)가 등장했다. 실습 장비가 부족한 학교에서 교육을 위해 기업에 실습을 보낸 게 현장학습 제도의 시작이다. 1970~1980년대를 지나며 노동력 공급의 측면에서 기능했지만 고등교육의 기회가 확대되면서 실업계고 자체가 침체기를 겪었다. 1990년대 김영삼 정부 들어서는 사람들이 기피하는 3D 업종의 인력을 공급할 목적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1997년 ‘제7차 고등학교 교육과정 편성운영지침’에 비로소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전문 교과 학습을 현장실습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현장실습을 하는 학생들은 노동자와 학생 신분을 동시에 가지지만 제도적 혜택을 양쪽에서 누리기보다 모두에게 배제된 채 인권과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왔다. 10대 청소년들이 최소한의 안전장치 없이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는 사이 현장에선 크고 작은 사고들이 일어났다. 단적인 사례가 2007년 7월 ㈜세원테크가 노조원들의 사무실 출입을 막는 데 현장실습생을 구사대로 동원한 사건이다. 2002년에는 원주와 춘천에서 상사가 실습생을 성폭행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2003년 5월, 교육부에서 ‘현장실습 운영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조기 취업 형태를 규제하고 현장실습 운영 시기와 내용을 다양화하며 전담 교사를 배치한다는 내용이었다. 현장은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2005년, 전남 여수의 한 엘리베이터 정비업체에서 안전장비 없이 일하던 고3 현장실습생이 엘리베이터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실습 전 안전교육이 없었다고 밝혀졌다. 이 밖에도 장시간 노동, 야간 근무, 열악한 작업환경 등 현장실습 제도가 가진 문제점이 하나둘 드러났다.
이듬해인 2006년 교육부는 ‘실업계고 현장실습 운영정상화 방안’을 내놓았다. 졸업 후 취업이 보장된 경우에 한해 현장실습을 허용하고, 현장실습 시기를 3학년 2학기 교육과정의 3분의 2 이상을 이수한 경우에 가능하도록 했다. 조기 취업으로 인한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 문제 등이 고려된 결과였다. 이러한 방침은 규제 완화를 강조한 이명박 정부 들어 바로 폐기되었다. 이른바 자율화 조치였다. 정부는 2008년 ‘마이스터고 육성방안’을 시작으로 ‘고교 직업교육 선진화방안’ ‘고졸 취업 활성화 방안’ 등 취업을 강조하는 정책을 연이어 내놓았다. 이 과정에서 현장실습제 역시 개별 학교들의 자율성이 보장되면서 더욱더 활성화되었다. 학교는 다시 3학년 1학기부터 학생들을 산업체에 보냈다. 이수정 노무사(청소년노동인권 네트워크)는 “자율화 조치에 따라 많은 권한이 학교장 재량으로 넘어가면서 빨리 취업에 내보내기 위해 경쟁이 붙었다. 현장실습을 나가면 전문 교과를 이수한 것으로 되어 조기 취업이 활성화되었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목표 취업률 제시하고 지원금 연계도
그 과정에서 정부는 목표 취업률을 제시하고 이를 학교지원금과 연계했다. 정부는 2011년 25%, 2012년 37%, 2013년 60%를 특성화고 취업률 목표로 제시했다. 2010년 직업의 전문성을 더욱 강조하는 마이스터고등학교가 개교하면서 취업률 압박은 더 심해졌다. 점차 전공과 무관한 업체에 파견하는 일이 늘었다. 그 가운데 2011년 12월 광주 기아차 공장에서 주 70시간 이상 일했던 실업고 3학년 학생이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는 자동차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현장에서 자동차 페인트칠 업무를 했고 주야 맞교대로 작업했다. 2012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조사에 따르면 현장실습 중 전공 분야 기능 업무 종사자는 27.9%에 불과했다. 특성화고 취업률이 1년 만에 14.3% 증가했다고 홍보했던 2012년, 국정감사에서 서울의 취업 기업 1위는 군대, 2위는 롯데리아로 드러났다. 일자리의 질을 드러내는 사례다.
기아차 사건을 계기로 교육부 외에도 2012년 4월 고용노동부와 중소기업청이 함께 ‘특성화고 현장실습제도 개선대책’을 발표했다. 근로조건 강화가 핵심이었다. 산업안전보건 교육을 의무화하고 근로계약서를 체결하도록 했다. 현장실습 협약서가 개정되었지만 사고는 그치지 않았다. 그해 12월 울산 신항만에서 작업선이 전복돼 현장실습 중이던 특성화고 학생이 사망했다. 2013년 정부는 또다시 ‘학생 안전과 학습 중심의 특성화고 현장실습 내실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때는 파견 시기를 3학년 1학기 종료 후에 하는 원칙을 마련했다. 예외 조항을 두어 사실상 조기 취업을 허용했다. 학생들의 희생은 계속되었다.
2014년 1월 CJ진천공장 현장실습 중 얼차려를 비롯한 폭행 등에 시달리던 마이스터고 학생이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2월에는 울산 현대자동차 협력업체에서 현장실습 중이던 특성화고 학생이 폭설로 쌓인 눈에 지붕이 무너지면서 사망했다. 박근혜 정부는 잇단 사고에도 취업률 제고를 강조했다. 2014년 10월 ‘고졸 취업 활성화 방안’에서 특성화고를 중심으로 스위스 도제식 직업학교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2016년 5월, 분당의 한 외식업체에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취업한 졸업생이 상사의 괴롭힘 등으로 자살했고 같은 달 역시 현장실습을 나갔다 취업한 ‘구의역 김군’이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했다.
‘구의역 김군’ 사건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는데, 이를 계기로 파견 현장실습의 운영과 실습 기준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이 개정되었다. 이때 현장실습 표준협약서에 포함되어야 할 내용이 구체적으로 정해졌다. 실습 시작 7일 전 표준협약서를 체결해야 하고 현장실습 시간(1일 7시간·주 35시간, 합의 시 1일 1시간 연장)이 확정되었다. 초과 및 야간 휴일의 실습 금지 등의 규정을 어길 시 벌칙금이 생겼다. 여러 가지 제도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이어졌다. 올해 1월 전주 LG유플러스 고객센터의 해지방어 부서에서 실적 압박으로 힘들어하던 특성화고 학생이 자살했고, 11월9일에는 제주도의 한 음료 제조업체에서 일하던 이민호군이 프레스기에 눌려 병원에 이송된 지 열흘 만에 사망했다.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이슈가 되고 정부는 관련 대책을 발표해왔다. 규제가 강화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고는 반복되고 있다. 근본적으로 현장실습의 운영과 관리의 주체가 불분명하다는 맹점이 있다. 결과적으로 운영과 관리 모두 학교의 몫이다. 교육부 고시 ‘초·중등학교 교육과정’에 따르면 각 시·도 교육청에서 현장실습 운영 지침을 마련하도록 되어 있다. 각 학교는 그 지침에 따라 현장실습을 운영한다. 현장실습 대상 산업체의 선정 방식은 제각각이다. 기업체가 학교에 공문을 보내거나 학생들이 개별적으로 기업의 구인광고를 찾아 지원한 뒤 이 사실을 교사에게 알리기도 한다. 그럴 경우 학교가 다시 해당 기업에 연락해 표준협약서를 작성하는 방식이다. 기업이 현장실습 제도의 취지나 방식을 깊이 인지하기 쉽지 않은 구조다.
학교별로 산업체 선정을 심의하고 현장실습 중 학생을 지도 및 감독하는 현장실습운영위원회를 두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2014년 각 교육청에 정보 공개를 청구한 결과, 교육청은 위원회의 구성 여부만 파악하고 있을 뿐 구성 현황과 운영 횟수, 심의와 협의 결과에 대해서는 파악하고 있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현장실습을 관리 감독하는 취업지원관 제도 역시 교육청마다 운용 현황이 다르다. 이민호군이 사망한 제주도교육청의 경우 2015년도에 특성화고에 배치된 취업지원관 11명을 해고하면서 아예 폐지했다. 현장실습을 나가기 전 받는 노동인권교육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경기도가 그나마 지난해 ‘경기도교육청 노동인권교육진흥조례’를 통해 특성화고 학생들이 연간 2시간씩 노동인권교육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했다. 이수정 노무사는 “교육청에서는 학교로 운영 규정만 내리고 다음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학교장이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책임 회피의 구실로만 작용할 뿐이다. 사고 원인을 산업체로 몰고 가는데 근본적으로 학교에 있어야 할 학생이 왜 산업체에 나가 있는지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교육부는 현장실습의 운영 책임을 교육청에 돌리고 교육청은 교육부의 지침을 따른다는 이유로 책임을 교육부에 미루고 있다.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대책을 발표하지만…
책임과 관리 소지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현장실습제는 오랫동안 취업률 제고를 위한 용도로만 기능해왔다. 현장실습의 유형에는 산업체 파견 형태의 현장실습만 있지 않다. 교내 실습활동도 있고 외부 활동의 경우에도 단기간 이뤄지는 현장 체험학습, 위탁교육이 있다. 하지만 학교는 취업률 통계 때문에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을 선호한다. 학생들도 일찌감치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선호도가 맞물린다. 교육부는 시·도 교육청 평가지표에 특성화고 취업률과 관련된 지표를 포함해왔다. 교육부의 평가에 따라 교육청과 학교에는 성과급이 차등 지급된다. 취업의 양과 관련된 지표만 있을 뿐, 질과 관련된 지표는 없다. 숫자에만 얽매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어서 경쟁이 더 치열하다. 특성화고 학생 수는 2011년 34만227명에서 2016년 29만632명으로 줄어든 데 비해 학교 수는 499개에서 497개로 2개밖에 줄지 않았다. 취업을 나갔다 복교한 학생에게 반성문을 쓰게 하는 등의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지는 배경이다.
현장실습의 교육적 의미와 목표를 바로세우는 게 우선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일부에선 위험이 도사리는 파견형 현장실습을 일단 폐지한 뒤 대안을 논의하자고 주장한다. 하인호 산업체파견현장실습대책회의 대표는 “현장실습 제도는 젊은 노동자를 억지로 인기 없는 일자리로 공급하는 파견업체 역할을 맡고 있다. 취업을 몇 달 앞당기는 것보다 평생 노동자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치는 것이 급선무다”라고 말했다. 박재철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장은 “인권 감수성이 강한 아이들을 19세기 산업성장 세대의 아이들과 똑같이 내모는 데 문제의 근본 원인이 있다”라고 말했다.
12월1일 정부가 제주도 이민호군 사망 사건을 계기로 또다시 새로운 대책을 내놓았다. 2020년 도입하기로 했던 ‘학습 중심’ 현장실습의 시기를 앞당겨 내년부터 도입하기로 했다. ‘조기 취업 형태의 현장실습’을 폐지하되, 현장실습 교육 프로그램에 따라 안전관리 등이 가능한 ‘학습 중심 현장실습’의 경우에는 허용하기로 했다. 기간 역시 6개월 이내에서 최대 3개월로 줄인다. 의무적 참여에서 자율적 참여를 보장하고 특성화고 평가지표 역시 정량적인 취업률을 배제하고 취업 유지율 등을 추적조사하기로 했다. 여전히 관리의 책임이 학교에 있다는 문제는 남는다. 하인호 대표는 “폐지라고 하지만 사실상 폐지가 아니다. 근로 중심에서 학습 중심으로 바꾼다는 말은 그간의 정부 안에서도 나왔던 얘기다. 정말 실습의 형태라면 3개월이나 필요 없다. 기업체와 학교가 연계해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에 의해 운영되어야 하는데 현재 상태에서 가능한 기업이 있을지 의문이다. 너무 오랫동안 현장실습 제도가 파행적으로 운영되어왔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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