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제작도 되지 않은 드라마가 여기저기서 화제다. 아이유가 출연을 확정 지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20대 계약직 여성과 40대 대표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20대 계약직 여성’을 연기할 아이유와 ‘40대 대표’를 연기할 이선균의 나이 차이는 열여덟 살이다. 이 현격한 나이 차가 ‘문제가 되지 않아’ 도리어 문제가 되고 있다. 여성 배우는 30대만 되어도 맡을 역할이 없어서 걱정이라는데 남성 배우는 40대가 되어도 무려 열여덟 살 연하와 로맨스가 가능하다니! 〈나의 아저씨〉 소식을 듣고 문득 한 사람이 생각났다. 내 또래 여성인 A는 여덟 살 연하 남성과 사귄다는 이유로 지인들로부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것 아니냐”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나의 아저씨’들은 그래도 되고, A의 선택은 ‘사회적 물의’가 되는 이 차이는 뭘까?

‘사회적 물의’ 영역을 주도하는 40대 남성

새삼스럽게 ‘나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영포티(Young+Forty)’ 때문이다.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모를 이 합성어는 최근 통계청에서 작성한 ‘지금은 아재 시대, 대세는 영포티!’라는 리포트 때문에 유명해졌다. 그 덕분에 ‘개저씨’나 ‘아재’로 놀림받던 40대 이상 남성들에게 좀 더 산뜻한 별명이 생겼다. 그 리포트에 따르면 ‘영포티’들은 ‘1972년 전후에 태어나 내 집 마련에 집착하지 않고, 결혼이나 출산의 관성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가정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들이다. 40대가 지나면 어떨까? 서울시 양천구를 비롯한 몇몇 지자체에서 고독사 비율이 가장 높은 ‘50대 독거남’의 “사회적 고립과 개인의 복합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나비남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남성들은 사랑도 고독도 ‘사회적 차원’에서 특화된 응원과 격려를 받는 셈이다.

ⓒ정켈 그림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치민다. 왜 ‘영포티’는 ‘아재’, 즉 남성들로 수렴될까? ‘50대 독거녀’의 삶은 어떻게 응시되고 있을까? 동시대를 경험하고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공존하고 있는 여성들의 서사는 왜 번번이 사회적 시선 바깥으로 탈락하는 것일까?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이란 ‘가난한 집 제사 닥치듯’ 시시때때로 침범하는 무례하고 부당한 질문에 자신의 인생을 해명해야 하거나 간단하게 부정당하는 일상의 반복이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영포티’라는 용어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될 무렵, 그들이 저지른 각종 ‘추문’도 함께 입길에 올랐다. 연예인을 지망하던 여중생을 성폭행하여 임신까지 시킨 한 40대 연예기획사 대표가 무죄를 선고받은 사건을 비롯해 인터넷 검색창에 ‘40대 남성’이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좀 더 다양한 ‘영포티’들을 만날 수 있다. 주로 ‘가해자’의 입장에서 말이다. 지난해 ‘갑질 소비자’인 ‘블랙 컨슈머’를 단속한 결과, 남성의 비율이 89.6%로 압도적으로 높았다고 한다. 연령대별로는 40대와 50대가 절반을 넘었다. 즉, 40대와 50대 남성은 사회문화 담론뿐 아니라, ‘사회적 물의’ 영역도 주도하고 있다. 오죽하면 ‘노(No)아재존’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올까.

그들은 도대체 자신이 가진 사회적 자본과 권력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그들을 ‘시대의 중심’으로 주목해도 괜찮은 것일까? ‘50대 남성’의 무능한 생활력과 고독은 그들이 누려온 가부장 권력이 원인이라는 진단 없는 대책이 대체 무슨 소용일까? (물론 일부의 문제라고 하겠지만) 도무지 자신을 성찰하지 않고, 사회문화를 주도하길 원하는 ‘센터 욕망’을 숨기지 않으며 오늘도 거울을 보면서 “그래도 나 정도면 괜찮지 않아?” 하고 씨익 웃는 ‘나의 아저씨’들이 생각나 자꾸만 소름이 오스스 돋는다.

기자명 오수경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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