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6일 낮, 서울역에서 출발해 포항으로 향하는 KTX 열차는 동대구역을 지나자 속도가 느려졌다. 전날 경북 포항에서 규모 5.4 지진이 발생한 이후 여진이 계속되고 있어 속력을 시속 90㎞로 낮춘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열차는 당초 예정보다 17분 늦게 포항역에 도착했다.

역에서 나와 바로 마주한 풍경은 비교적 차분해 보였다. 훼손된 건물도 눈에 띄지 않았다. 진앙인 포항시 북구 흥해읍 망천리에서 포항역이 있는 흥해읍 이인리는 다소 거리가 있어 피해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불안감은 포항 시내 전체에 감돌았다. 지하철이 지나가는 듯한 약한 강도의 여진에도 시민들은 몸을 움츠렸다. 11월15일부터 11월16일까지 여진은 49차례 발생했다.

진앙에 가까워질수록 외벽이 무너지거나 벽에 금이 간 건물이 많아졌다. 낡은 단독주택이 모여 있는 흥해읍 남성2리에는 두 집에 한 집꼴로 담벼락이 무너져 내렸다. 해병대 병력 200여 명이 투입돼 자루에 무너진 벽돌, 기왓장 등을 주워 담고 슬레이트 판을 치웠다. 지붕에 올린 기와가 심하게 훼손된 한 주민은 현장을 지휘하던 지휘관에게 “집이 아직 엉망인데 군인들이 치우다 말고 다른 곳으로 갔다”라며 울상을 지었다.

ⓒ시사IN 조남진포항시 북구 흥해읍 대성아파트는 5개 동 가운데 한 동이 4°가량 기울었다. 간단한 옷가지와 침구만 챙긴 주민들이 긴급 대피하고 있다.
임시 대피소로 마련된 흥해실내체육관에는 이재민 1000여 명이 몰렸다. 포항 지역 13개 대피소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이다. 1층 강당부터 2층 관람석까지 스티로폼 자리를 깔고 앉은 이재민들이 들어찼다. 자신을 “40대 후반 아줌마”라고 소개한 김난희씨(가명)는 두 여동생과 함께 있었다. 고3 수험생 아들, 유치원 다니는 여섯 살짜리 딸, 두 돌배기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이다. 김씨는 “집에 있어보려 했는데 여진이 계속되니까 너무 무섭더라. 어젯밤 11시에 이곳으로 왔다”라고 말했다. 수능이 미뤄져도 포항시 수험생과 부모들은 시름이 깊다. 대피소에서 밤을 지새운 뒤 수능 준비를 해야 하는 고3 아들을 친척 집으로 보냈다. 친척 집도 흥해읍에 있는 아파트이지만 김씨가 사는 5층보다 낮은 2층이라 안전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대피소에 있어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는다. 김씨의 둘째 여동생은 구호 물품을 내려놓을 때 울리는 쿵쿵 소리에도 가슴이 떨린다고 했다. “지진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 두려움을 모른다. 남편이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는데 마땅한 곳이 떠오르지 않아 대피소에 있다. 우리 아기는 여기 계단에 걸려 넘어져서 지금 입안이 다 찢어졌다.” 울다 지친 아기는 큰이모 품에 안겨 잠들었다.

ⓒ시사IN 조남진11월15일 지진이 발생한 이후 임시 대피소가 마련된 포항시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에는 2층까지 이재민들이 들어차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포항시 북구 흥해읍 마산리 대성아파트는 5개 동 가운데 한 동이 이번 지진으로 4°가량 기울었다. 지진의 참상을 보여주는 상징물처럼 되어버린 이 아파트에는 주민보다 취재진이 더 많이 몰렸다. 260가구가 대피한 뒤, 짐을 빼내기 위해 다시 온 주민 몇몇이 아파트 현관을 오갔다. 이곳에서 부모와 20여 년을 살았다는 문지안씨(가명)도 1t 트럭으로 짐을 옮기고 있었다. 컴퓨터, 이불, 옷가지, 전기밥솥, 온수매트 등 세간 살림이 트럭 짐칸에 실렸다. 문씨는 “집이 무너질까 봐 걱정돼 트럭을 빌려와서 일단 짐만 빼놓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문씨의 어머니가 짐을 더 가져오기 위해 집에 들어가려는 순간 여진으로 땅이 흔들렸다. 문씨는 “다시 들어가는 건 위험하다”라며 어머니를 말렸다. 짐 빼기를 포기한 듯, 문씨와 아버지가 세간이 실린 트럭 짐칸 위로 밧줄을 감았다. 곧바로 트럭은 대성아파트를 떠났다.

ⓒ시사IN 조남진외벽 곳곳이 갈라진 대성아파트는 지진의 참상을 보여주는 상징물처럼 되어버렸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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