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편지를 건넨 건 빈센트가 죽고 1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찾아가서 무슨 말을 해요?” “근데 지금 편지를 전해서 뭐하게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계속 아버지의 청을 튕겨내는 아들에게 당신께서 말씀하신다. “나라면 받고 싶을 거다. 만일 네가 죽었는데 네가 나한테 쓴 편지가 있다고 하면 난 받고 싶을 거야. 넌 그렇지 않겠니? 그게 나라면?”

그길로 기차에 오른다. 프랑스 남부 도시 아를에 사는 집배원 조셉 룰랭(크리스 오다우드)의 아들 아르망 룰랭(더글러스 부스)이 편지 한 통 들고 길을 나선다. 빈센트 반 고흐의 동생 테오 반 고흐를 찾아간다. 우편으로 연이어 반송되어온 고인의 마지막 편지를 인편으로 전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테오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편지는 갈 곳을 잃는다. 테오가 아니라면 누가 빈센트의 편지를 받을 자격이 있을까. 그 답을 찾아 고흐가 마지막 순간 머문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떠나는 아르망.

영화 〈러빙 빈센트〉는 아르망이 오베르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다. 그들 입으로 전해 듣는 고흐의 생전 행적을 영화가 재구성한다. 그리고 질문을 던진다. 고흐는 정말 자살했을까? 혹시 타살은 아니었을까? 어느새 본분을 잊고 탐정이라도 된 양 고흐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아르망에게, 이 영화가 숨기고 있던 진짜 중요한 질문을 던진 이는 가셰 박사(제폼 플린)의 딸 마르그리트(시얼샤 로넌). “당신은 그의 죽음에 대해 그렇게나 궁금해하면서 그의 삶에 대해선 얼마나 알죠?”

그 순간 말문이 막히는 건 아르망만이 아니다. 나와 당신, 〈러빙 빈센트〉를 보는 모든 관객이 그 질문 앞에서 할 말을 잃을 것이다. 고흐의 죽음 말고, 고흐의 기행 말고, 고흐 그림의 경매 말고, 고흐의 삶과 상처와 야망과 열정에 대해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제라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제라도 고흐의 삶과 예술에 제대로 매혹당하고픈 이들을 위해, 감독은 〈러빙 빈센트〉를 만들었다. 이 필생의 프로젝트를 위해 그가 바친 세월이 무려 10년이었다.

고흐 이야기를 고흐 화풍으로

고흐 이야기를 고흐 스타일로 만드는 길 말고는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애니메이터가 아니라 화가를 모집했다. 지원자 4000여 명 가운데 최종 107명이 뽑혔다.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요리사로 살던 사람, 미술학교를 나왔지만 스페인어 교사로 살던 사람, 그림을 배운 적은 없지만 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 못한 사람, 그러니까 생전의 고흐처럼 오직 가슴에 뜨거운 불덩이 하나 품고서 붓을 놓지 않고 악착같이 버틴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빈센트 반 고흐가 남긴 작품 130여 점을 재료 삼아 빈센트 반 고흐 스타일의 유화 6만2450점을 새로 그렸다(사진).

고흐가 그린 초상화 속 모델이 곧 영화의 등장인물이다. 고흐의 피조물들이 스크린에 살아 움직이며 자신들의 조물주 고흐의 삶을 관객 마음속에 그려넣는 이 작품. 아름답고 경이로운 비주얼만으로도 이미 짜릿한데 기대하지 않았던 스토리텔링마저 아주 끝내주는 이 작품. 〈러빙 빈센트〉를 보고 나면 익숙한 고흐 그림도 다르게 보인다. 모르고 있던 고흐의 삶을 새로 알고 싶어진다. 그가 남긴 편지를 하나도 남김없이 읽고 싶어진다. 무엇보다 방금 본 영화를 당장 처음부터 다시 보고 싶어진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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