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통화 스와프’가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 연장됐다. 지난 2009년 체결된 한·중 통화 스와프는 이미 한 차례 연장된 바 있는데 그 만기일이 바로 10월10일 자정이었다. 한·중 양측은 올 들어 수개월에 걸쳐 스와프 연장을 둘러싸고 협상을 벌여왔으나 중국 협상단의 소극적 태도로 만기일까지 결론을 짓지 못해 그 시점에서 스와프 약정이 일단 종료되었다. 그러나 관련 협상을 계속 이어간 끝에 종료 몇 시간 뒤 스와프 계약을 다시 체결할 수 있었다. 이번 계약 만기는 2020년 10월10일이다. 이 사실을 10월12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 회의에 참석한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공식 발표했다.

ⓒ한국은행 제공10월12일 국제통화금융·세계은행 연차총회 참석차 미국 워싱턴을 방문 중인
김동연 경제부총리(왼쪽)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기자 브리핑 후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중 간 통화 스와프는 양국 모두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정도는 아니지만 ‘있으면 좋은’ 제도다. 중국 측 협상단이 소극적 태도로 일관한 배경에는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 정부의 불만이 깔려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이 통화 스와프를 무기로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는 이야기다. 다만 한·중 통화 스와프가 이웃 나라를 압박할 정도로 강력한 수단인지에 대해서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통화 스와프(Currency Swap)’란, 문자 그대로 중앙은행이 일정 규모의 자국 통화(currency)를 일정 기간 동안 다른 나라의 통화와 교환해서(swap) 사용할 수 있도록 약정하는 협약이다. 국가들 사이에 무역 및 금융 거래가 활발한 현대 세계경제에서는 어떤 나라든 자국의 중앙은행에 일정 규모의 외환(다른 나라의 통화)을 비축해둘 필요가 있다. 예컨대 한국인(기업)이 미국산 소비재나 중간재를 구입하려면 달러가 필요하다. 미국인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했다면, 이자 역시 달러로 지급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기업 내에 보유한 달러로 지급하거나 혹은 갖고 있는 한국 원화를 시중은행에서 환율에 따라 달러로 바꾸면 된다. 국가경제 상황이 좋지 않으면, 시중에서 필요한 달러는 많은데 정작 은행에는 달러가 충분하게 비축되어 있지 못한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럴 때 시중은행은 중앙은행(한국은행)으로부터 달러를 공급받는다. 한국은행에도 달러가 없다면, 한국인들은 결국 미국인들에게 물품 대금, 이자 등을 지급할 수 없게 된다. 이른바 외환 부족에 따른 국가부도 사태다. 각국 중앙은행들은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평소 달러 등 외환을 축적해놓는다(외환보유고).

통화 스와프는 외환보유고의 이런 기능을 보완하는 제도다. 계약을 체결해놓으면, 필요할 때 간편하고 신속하며 직접적으로 상대국 중앙은행으로부터 외환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와 통화 스와프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한국은행은 300억 달러, 미국 연준 역시 그에 상당하는 한국 원화의 사용 권리를 상대방에게 각각 부여했다. 만기는 2010년 2월이었다. 다만 한·미 간 통화 스와프는 ‘동등한 혜택’의 교환이 아니다. 미국이 한국에게 일방적으로 혜택을 제공한 것에 가깝다. ‘통화의 세계’에는 달러화를 정점으로 하는 강력한 위계질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달러를 원하는 한국인은 많지만, 원화에 대한 미국인들의 수요는 그리 절실하지 않다. 한국으로부터 물품 대금이나 금융 수익금을 받아야 하는 외국인은 대개 원화보다 달러로 지급되길 바란다.

그렇다면 한·중 통화 스와프는 어떨까. 2009년 4월 체결된 한·중 통화 스와프에서는 한국은행이 1800억 위안, 인민은행(중국 중앙은행)은 31조원(2017년 10월 현재 위안화 시세로 환산)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서로 교환했다. 스와프 규모는 2011년에 3600억 위안(약 62조원) 규모로 확대되었다. 2014년 10월10일 협상에서는 순조롭게 3년 더 연장되었다. 그 만기가 지난 10월10일 자정이었는데, 중국 측이 배짱을 부리면서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가 결국 연장된 것이다. 한국은 중국을 비롯해 오스트레일리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아랍에미리트 등 5개국과 통화 스와프 약정을 맺고 있었다. 중국과의 스와프 규모가 압도적으로 크다. 산술적으로는 중국이 빠지면 이 제도로 긴급 조달할 수 있는 외환 규모가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게 된다.

외국인 위안화 보유 허용한 중국 정부의 속내

ⓒ연합뉴스한·중 간 무역 거래에서 위안화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위는 서울 KEB하나은행 본점에서 직원이 원화와 위안화를 살펴보는 모습.

이렇게 한·중 통화 스와프가 연장된 것은 무조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일부 언론에서 떠들어댔듯이 한국 경제가 무너질 뻔하다가 구사일생한 사건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한국의 위안화 수요가 크지 않고, 시중에 위안화가 모자란다고 해서 국가부도가 발생할 일은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 측이 중국 물품을 구입하면 그 대금을 어떤 통화로 지급할까? 중국 돈인 위안화일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지난 8월21일 나온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보고서(〈한·중 수교 25주년:경제협력 성과 및 과제〉)에 따르면, 한국 측이 중국 물품의 구입 대금을 위안화로 지급하는 비중은 전체의 4.6%에 불과하다. 나머지 95% 정도는 달러·유로·엔화 등이다. 한국 기업이 중국에 수출하고 받는 돈이 위안화인 경우도 전체의 5.9%에 그친다. 한·중 간 무역 거래에서 위안화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돈이다. 중국인마저도 자국 통화인 위안화보다 달러 같은 서방 선진국의 돈을 선호한다. 한국이 위안화 부족만으로 외환위기를 당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여의치 않으면 중국의 수출업자나 채권자에게 달러로 주면 그만이다.

만약 중국 위안화가 ‘국제적으로 인기 있는’, 즉 ‘태환성이 높은’ 돈이었다면 한·중 통화 스와프의 중단은 한국 협상단에 엄청난 압박이 되었을 것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중국은 개혁·개방 초기에는 위안화를 강력히 규제했다. 중국 수입업자들은 해외 거래처에 물품 대금을 위안화가 아니라 외환(거의 달러)으로만 지급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위안화가 외국인 수중으로 들어갈 통로가 ‘원천봉쇄’되었던 것이다. 선진국 금융투기꾼들이 대규모의 위안화를 보유한 뒤 그것을 무기로 중국 경제를 교란하는 사태를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2000년대 들어 중국 경제가 급격히 발전하면서 중국 정부는 점차 이른바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하기 시작한다. 위안화를 ‘국제적으로 인기 있는’ 통화로 발전시키려는 장기 국가전략이다. 현대 세계에서 가장 국제화된 태환성 높은 통화는 단연 미국 달러다. 어떤 나라와 무역하든 그 대금을 달러로 지급하면 무조건 받는다(거래). 세계 각국의 부자들은 자산을 가급적 달러로 갖고 있으려 한다(가치 저장). 가장 안정적으로 가치가 유지되는 통화이기 때문이다. 부를 증식하기 위한 금융상품 가운데서도 ‘달러로 표시된 증권’이 수와 종류에서 압도적으로 많다(투자). 글로벌 패권국을 지향하는 중국 정부는,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위안화를 거래·가치 저장·투자의 수단으로 보유 또는 사용하고 싶어 하는 돈으로 만들고 싶었다. 마치 달러처럼 말이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외국인이 위안화를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일단 갖고 있어야 사용할 수 있고, 그래야 인기가 높아질 것이다. 중국 정부는 2009년 7월 ‘위안화 기반의 무역 결제를 확대해나가겠다’라고 선언한다. 이전까지 중국과 거래하는 외국인은 중국에 물품을 판 뒤 그 대금을 위안화로 받을 수 없었다. 위안화로 중국 물품을 살 수도 없었다. 중국 정부가 ‘위안화 결제’를 추진한다는 것은 외국인에게 위안화 보유를 허용하겠다는 의미다. 외국인의 위안화 보유를 확대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방법이 바로 통화 스와프다. 중국 인민은행이 다른 나라 중앙은행에게 각각 수백억~수천억 위안 규모의 사용권을 부여한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2017년 현재 32개국과 통화 스와프를 약정한 상태인데, 규모 기준으로 한국은 홍콩(4000억 위안)에 이어 2위(3600억 위안)다. 한국은 중국의 위안화 국제화 전략에서 대단히 중요한 지위를 가진 나라인 셈이다. 

중국 정부는 이렇게 외국인들이 위안화를 보유하게 허용하는 동시에 그 위안화의 사용처도 인위적으로 조성해주었다. 위안화로 할 수 있는 일이 ‘중국산 물품 매입’뿐이라면, 위안화의 인기를 단기간에 높이기는 어렵다. 위안화로만 매입할 수 있는 ‘위안화 표시 증권’을 국가정책 차원에서 다수 만들었다. 외국인 투자가 제한된 중국 기업의 주식도 특정한 분량만큼 위안화로 매입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한국 등 일부 국가에는 ‘위안화 직거래 시장’을 조성해서 그 나라 통화를 곧바로 위안화와 교환할 수 있도록 했다. 이전까지 한국인이 위안화를 보유하려면, 먼저 원화를 달러로 바꾼 뒤 그 달러로 위안화를 매입해야 했다. 한편으로는 해외에 위안화를 유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외국인이 그 위안화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위안화로 무역 결제, 위안화 표시 증권, 위안화 직거래)을 인위적으로 조성해나간 것이다.

중국 정부의 의욕에 비해 위안화 국제화의 성과는 아직 미미한 편이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국제 결제에서 지불수단(payments currency)으로 사용된 통화들 가운데 중국 위안화의 순위(가치 기준)는 2016년 12월 기준으로 6위다. 2010년대 이전에는 위안화가 순위에 오르지도 못했다는 측면을 감안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하지만 비중으로 따져보면, 위안화는 1.68%에 그친다. 1위인 미국 달러화는 42.09%, 2위인 유로화는 31.30%다. 그 뒤로는 영국 파운드(7.20%), 일본 엔화(3.40%), 캐나다 달러(1.93%) 순서다(왼쪽 표 참조).

한·중 통화 스와프는 중국 측 ‘위안화 국제화’ 전략의 일환으로 체결된 약정이다. 한국보다 중국 측의 필요성이 더 컸다. 중국이 통화 스와프로 한국을 압박하는 것은 자승자박이란 이야기다. 한국으로서는 위안화와의 스와프 자체는 ‘있으면 좋지만’ 절실하게 필요하지는 않다.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주로 달러·유로·엔화 등으로 구성)는 지난 9월 말 현재 3846억 달러로 세계 8위 수준이다. 그러나 유사시에도 끄떡없는 수준인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위기 시에는 국내외 모든 경제주체들이 각종 거래에서 달러를 요구하기 때문에 미국과 유럽연합 이외의 국가들은 아무리 많은 외환을 보유해도 안심할 수 없다. 심지어 외환보유고 1, 2위 국가인 중국과 일본도 마찬가지다.

이런 측면에서 ‘위안화 국제화’는 장기적으로 한국은 물론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전체에도 이익이 될 수 있었다. 서방의 달러와 유로 외에는 어떤 통화도 글로벌 차원의 태환성을 갖지 못한 상황에서, 중국의 위안화가 국제화된다면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국가부도를 방지할 수 있는 수단을 하나 더 갖게 될 터였다. 예컨대 미국과 유럽연합, 심지어 중국의 기업들이 달러와 유로 이외에 중국 위안화로도 물품 대금이나 이자를 받으려 한다면, 아시아 국가들은 위기 시에 중국으로부터 위안화를 공급받아 모자라는 달러를 보충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사드 배치라는 국제정치적 의제를 경제 부문까지 무리하게 끌어들여 한·중 통화 스와프 협상에 우여곡절을 빚은 중국의 처사는, 대국답지 않은 근시안적인 태도가 우연찮게 노출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중국이 일단 위안화를 국제화한(물론 이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다음에는 그것을 국제정치적 무기로 삼을 가능성이 이번 사태에서 확인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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