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포털의 익명성이야
  • 최내현 (월간 판타스틱 발행인)
  • 호수 57
  • 승인 2008.10.14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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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뒤에서 흉을 볼지라도 그 사람 앞에서는 되도록 싫은 티를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런데 왜 유독 우리나라 인터넷에서 ‘악플’이 많이 달리는 것일까. 과연 단순한 익명성의 폐해일까.
   
세상에는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많다.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다. 단순히 생김새가 뭔가 거슬리는 사람도 있고, 나보다 너무 잘나서 싫은 사람도 있다. 나보다 별로 나을 것도 없는데 사회적 명망을 얻은 게 아니꼬울 수도 있다. 혹은 평소 잘 지내는 사람인데 그날따라 내 기분이 안 좋아서 욕을 한마디 해주고 싶은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뒤에서 흉을 볼지라도 그 사람 면전에서는 가급적 싫은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나를 모르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유독 인터넷에는 ‘악플’이 많이 달리는 것일까?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과 누리꾼이 서로 다른 사람이 아닐진대, 대체 왜 이들은 인터넷에 접속만 하면 돌변하는 것일까. 일부에서는 익명성의 폐해라고 지적한다. 익명의 가면 뒤에 숨은 일부 누리꾼이 스트레스를 욕과 저주로 푼다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최진실씨의 자살을 계기로 실명제 강화를 추진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포털 뉴스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달린 악플이 텔레비전 뉴스의 자료 화면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싸이월드는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실명 사이트다. 포털 사이트의 경우 댓글을 쓰려면 회원 가입을 해야 하고, 최근에는 다시 한번 실명 확인 및 등록을 거치도록 했다. 그러니 익명성이 문제의 발단이라는 시각은 한참 빗나간 헛다리 짚기가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싸이월드에서 버젓이 자기 실명을 걸고도 욕을 한다.

실제로 ‘최진실 사채설’을 인터넷에 올린 사람은 전부 경찰에 잡혔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추적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처럼 사이트 가입 때 주민등록번호를 넣지 않는 외국에서는 오히려 이런 문제가 덜 심각하다. 왜 그럴까?

문제는 댓글을 다는 사람의 익명성이 아니라, 반대로 댓글이 달리는 뿌리 글의 주인이 없기 때문이다. 가령 뉴스의 경우, 문제가 되는 공간이 해당 기사를 내보낸 언론사 사이트가 아니라 포털 사이트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언론사 사이트라도 악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기사에 대한 악플의 비율이 언론사 사이트에서는 현저히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아무리 성격이 ‘개차반’인 사람도 남의 ‘집’에 들어가서는 조금 예의를 차린다는 말이다. 수십 개 언론사의 기사가 쏟아져 들어오는 포털 사이트는 언론사 직원이 아닌 포털 직원이 관리하는 공간이다. 그러니까 문제의 핵심은 글 쓰는 이의 익명성이 아니라 ‘포털의 익명성’이라는 것이다. 면전에서 못할 말이라도 뒤에서 수군거릴 수 있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난나 그림
처벌 강화보다는 인터넷 서비스 구조 바로잡아야

그럼 외국에서는 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가? 간단하다. 포털 사이트가 뉴스 서비스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 기사는 뉴욕 타임스 사이트에서 본다. 구글이나 야후에서 읽는 것이 아니다. 결국 우리나라의 경우 기사가 기사 작성자가 아닌 제3자의 손에 의해 관리되는 곳에서 읽히고 소비되다 보니 ‘뒷담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다. 정부는 이른바 ‘최진실법’을 만들어 처벌을 강화한다고 하지만, 실명제의 예에서 보듯 그런다고 상황이 달라질지 의문이다. 6·15 남북회담 당시 나이트클럽 웨이터가 인공기를 걸고 ‘부킹 위원장 김정일’이라는 명함을 돌렸다가 국가보안법으로 체포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권력에 자의적 해석 권한을 주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악플의 폐해를 보고 실명제 강화, 처벌 강화 같은 억압 정책을 펴기보다는 인터넷 서비스의 근본 구조를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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