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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죽은 사람도 쉬지 못하게 한다”

남편과 친구를 잃은 정선희씨. 피해자인 정씨는 악플과 루머에 두 번 죽어야 했다. 하지만 정선희씨는 기도한다고 했다. ‘최진실법’에 대해서는 병균이 자란다고 호수의 물을 뺄 수는 없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주진우 기자 ace@sisain.co.kr 2008년 10월 13일 월요일 제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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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세상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가 사별이라고 한다. 남편이 죽었다. 정선희씨(36)도 함께 죽어야 했다. 고인이 부디 편안한 곳으로 가기를 바란다고 해놓고 언론은 자살을 팔아먹었다. 죽음을 멋대로 묘사하고 추측하며 내달렸다. 정씨가 실신해서 오열하는 모습은 ‘화보’로 포장됐다. 일부 누리꾼은 정씨를 ‘선한 남편 잡아먹은 여자’로 매도했다. 그 사이 정씨의 친구 최진실씨는 사채업자가 되어 있었다. 돈을 받기 위해 친구를 결혼까지 시켰다는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결국 정씨는 가장 친한 친구 최진실씨마저 잃었다. 정씨는 또다시 죽어야 했다. 사채업자들이 퍼뜨린 소문 때문에 경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어떤 이는 ‘어떻게 남에게 웃음을 줄 수 있겠느냐’면서 정씨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정선희씨를 만나는 것은 미안한 일이었다. 묻는 말 하나하나가 정씨에게는 또다시 아픔을 되새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10월10일 새벽에 만난 정씨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정씨는 “기도로 버티며 이겨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왜 친정에 가 있었나? 혹시 결혼 뒤 안재환씨와 헤어져 지낸 것은 아닌가.
남편이 결혼 후 1년 동안은 친정에서 3일, 시댁에서 3일씩 지내자고 했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생활이 안정되지 않아 지난 5월부터는 한남동에 집을 하나 빌렸다. 결국 세 집 살림이 됐다. 남편은 결혼 뒤 나를 따라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지난 5월 촛불집회 발언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남편이 새벽 기도에 나가자고 했다. 기도 제목이 많다고 했다. 철야 예배도 빠지지 않았다. 그때 남편은 가게 문제로 힘들어했지만 그럴수록 부부간의 결속력은 더 커졌다. 불화는 전혀 없었다. 모두가 샘을 낼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재환씨는 100% 완벽한 남편이었다. 자기 어려움을 아내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것만 빼고는….

안재환씨가 마지막으로 집을 나설 때는 어땠나?

8월21일 남편이 중계동 집(친정)에 좀 일찍 들어왔다. 밤 11시쯤이었는데 그 전에는 워낙 늦게 들어왔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다면서 밥을 달라고 해서 밥을 맛있게 먹었다. 그날은 밝았다. 남편은 음악을 틀어놓고 나를 안고 아무 데도 못 가게 했다. 그리고 “미안해” “미안해” “내가 행복하게 해줄게”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다음 날 아침 두 숟가락 정도 밥을 뜨다 “어머님 점심 약속 있어요”라면서 나갔다. 8월22일 오전 10시30분께 함께 출근하면서 내가 남편에게 “안재환 최고야! 파이팅!”이라고 소리쳤다. 남편은 해맑게 웃으면서 나갔는데 그게 마지막이다.

안씨가 집을 나가서 발견될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왜 바로 찾지 않았나?

남편이 집에 안 들어오는데 가만히 있는 아내가 어디 있나. 매일 전화하고 문자하고 백방으로 찾아다녔다. 전에도 한두 번 전화 연락이 안 된 적이 있었다. 남편에 대한 믿음이 컸다. 어두운 면이 없는 사람이었다. 집을 나간 날 화장품 사업을 하는 이사님으로부터 남편이 연락이 안 된다는 전화가 왔다. 그날부터 남편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이튿날부터 남편 주변  사람을 만나고 다녔다. 남편과 친한 사람이 “재환이가 2,3일 머리 식히고 싶다며 낚시 장비와 낚시터를 알아보고 다녔다”라고 말했다. 마누라에게 문자 한 통이라도 해야지 하는 생각에 화가 났다. 처음에는 “머리 식히고 있다가 어서 와” “도대체 섭섭한 게 뭐냐”라고 하다가 나중에는 울면서 “제발 돌아오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이상한 낌새를 채지는 못했나?
7월부터 술 먹으면 남편은 울었다. 8월부터는 술을 먹는 횟수가 늘었고 세상에 대해 비관적이고 시니컬해졌다. 8월 초에 강화도에 갔는데 “너에게 말 안 한 것이 있다. 미안하다. 남자로서 다 끝났다”라고 했다. “선희야, 너한테는 피해 안 가게 할게”라며 기도했지만 하나님이 안 들어준다는 이야기도 했다. 여자 문제인 줄 알았다. 난 어려운 일을 많이 겪어서 이겨낼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어리광 부린 것이다. 쪽 팔리니 잊어달라”고 말했다. 그 말을 믿었다. 워낙 해맑게 웃어서 걱정하지 않았다. 남편이 하도 낙천적인 성격이어서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안재환씨 사채가 100억원 가까이 된다고 한다.
사채라니…. 사채, 빚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걸 알았다면 서둘러 결혼했겠나? 남편의 성실함을 믿었고 그 믿음은 확고했다. 남편에게 사채가 있다는 것은 지난 9월4일 처음 들었다. 남편이 모습을 보이지 않자 사채업자가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채업자들은 가족과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사채업자들이 나를 만나겠다고 했다. 남편 친구 한 분이 “사채가 30억~60억원 된다”라고 말했다. 어떤 사채업자는 건달이 남편을 데리고 있다고, 모든 것을 폭로하겠다고 했다. 사채업자들은 말을 계속 바꿔 가면서 공갈하고 협박했다.

   
ⓒ연합뉴스
지난 9월8일 고 안재환씨의 발인 후 장지로 향하는 정선희씨(가운데)와 부축하는 최진실씨(오른쪽).
경찰에 따르면 2005년부터 안씨가 사채에 시달렸다고 한다.

남편이 운영하던 가게가 두 곳 있었는데 한 동업자와 사이가 틀어져 6억9000만원 상당의 소송이 붙었다. 가게가 팔리기만 하면 된다고 해서 금방 해결되는 줄 알았다. 남편 하는 일인데 등기를 보자거나 서류를 보자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난 5월 안재환씨에게 2억5000만원에 대한 보증을 직접 섰다.
남편이 저녁에 들어와 가게에 투자했던 투자자가 갑자기 돈을 뺀다고 해서 보증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 날 오전에 가서 보증을 섰다. 그리고 방송하러 갔다. 보증이 무언지도 모르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남편을 믿었다.

왜 실종 신고를 하지 않았나?

연예인인데 떠들 수도 없는 문제였다. 잡음이 들리면 남편이 방송일을 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면 남편이 돌아와서도 해결할 길이 없어진다. 9월4일 언니(안재환씨 누나)가 실종 신고를 하자고 했다. 그래서 언니에게 “나 재환씨 믿어요. 나타날 거예요” “언니, 재환씨 와요” “어떻게든 와요”라고 했다. 언니는 사채업자를 만나라고 했다. 사채업자를 만나면 그들이 쳐놓은 올가미에 걸려들 수밖에 없다. 사채업자의 속성을, 그 집요함을 잘 안다. 아버지가 사채 때문에 큰 피해를 보아, 나는 그 빚을 12년 동안이나 갚아야 했다. 하지만 나도 사채업자에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9월11일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만나기로 했다.

시댁 식구들이 납골당에서 정선희씨 사진을 치웠다.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정선희씨’라고 부르고, 시어머니는 기자들과 함께 선희씨를 찾아다닌다. 또 안재환씨 누나는 정선희가 범인을 알고 있는데 숨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남편을 잃은 내 슬픔이 크다고 하더라도 자식과 형제를 잃은 슬픔이 더 심하리라 생각한다. 1년간의 추억과 수십년간의 추억이 다르다고 여기시는 것 같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는데…. 어떤 일에는 희생양이 필요한데 분노와 책임의 대상이 ‘나’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어머니는 딸 때문에 말도 못하고 매일 신경안정제만 먹고 계신다. 가슴 아프다. 세상이 죽은 사람도 쉴 수 없게 만드는 것 같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남편에게 집중하려고 한다. 차마 말을 못한 것이지 일부러 나를 속인 게 아니라고.

   
ⓒ연합뉴스
고 최진실씨 삼우제가 열린 지난 10월6일 최진실씨 어머니와 동생 최진영씨, 정선희씨, 이영자씨가 오열하고 있다.
최진실씨 가족과 안재환씨 간에 금전 거래가 있었는가.

진실 언니의 뜨거운 마음을 나는 안다. 남편의 장례식장에 한걸음에 달려와 누구보다 더 애통해하고 더 많이 울었다. 무조건 도우려고만 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도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보내나. 내 가슴으로 정말 너무 미안하다. 의붓아버지 사채 이야기까지. 이건 정말 너무 말이 안 된다. 진실 언니와 남편은 통화한 적도 없다. 돈거래는 더더욱 없다. 다른 사채업자도 다 알고 있다. 너무 사악하다. 진실 언니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모른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얼마나 짓이겨졌는데…. 평생을 안고 가야 한다. 그분의 생각 없는 행동이 무고한 한 사람을 보냈다. 무섭다. 너무 무서운 사람이다.

최진실씨가 안재환씨를 소개해준 것은 맞나?

언론에 결혼설이 터지고 나서 진실 언니는 “어떻게 나도 모르게 그럴 수 있냐”라고 서운하다고 했다. 주변에 안재환이 어떤 사람이냐고 수소문하고 다니기도 했다. 결혼 직전에 남편을 만난 언니는 “우리 선희 행복하게 해주세요”라고 했다. 결혼 후에는 결혼 생활에 적응하느라 바빠서 언니를 몇 달 동안 보지도 못했다. 남편은 내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가까워졌다. 남편은 양복 두 벌을 돌려 입던 사람이다. 신발 굽이 다 닳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애잔한 그 모습에서 나를 발견했다. 내가 기억하는 안재환은 무책임하게 훌쩍 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불쌍하게라도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이었다. 연로한 부모와 집안을 책임지는, 말벗 해줄 사람이 없어 너무 외로워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외로운 사람끼리 말이 통했고, 웃는 얼굴로 나를 맞아주었고, 항상 웃는 얼굴로 의지하면서 살자고 했다.

안재환씨 자살 뒤 악플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 ‘안씨가 요구한 보증을 서주지 않았다’ ‘돈이 없어 결혼하자마자 별거했다’ 등 온갖 루머와 악플이 넘쳐났다.  

악플 안 본다. 촛불집회 때 악플 보면 못 살 것 같았다.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내게 댓글을 이야기하면 ‘순간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 내가 죽어야 정리되겠구나.’ 발이 빠지면 무릎을 원하고 다시 허리를 원하는 늪과 같다. 장례식장에도, 병원에 있는 동안에도 악플 이야기가 들려온다. 고스란히 생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전해 받았다. 남겨진 자의 아픔을 생각하는 이성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저 고통을 중지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이 고통에서 해방되는 길은 죽는 길뿐이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정치권에서 악플을 금지하는 이른바 ‘최진실법’을 만든다고 한다.
나도 진실 언니 가족도 ‘최진실법’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최진실법’이 나올 때마다 유족 가슴이 찢어질 것이다. 진실 언니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악플에 너무 큰 고통을 받았다. 댓글이 의견 나누는 것이 아니라 마녀사냥의 도구이자 사형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막는다고 될 일인지 모르겠다. 나오지 말아야 할 싹이 나온다고 흙을 통째로 갈아엎을 수는 없는 일이다. 외국에서도 댓글을 규제하는 나라가 없다고 들었다. 문화는 거대한 호수와 같다. 어떤 미생물이나 병균이 자란다고 해서 물을 뺄 수는 없는 것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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