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친정에 가 있었나? 혹시 결혼 뒤 안재환씨와 헤어져 지낸 것은 아닌가. 남편이 결혼 후 1년 동안은 친정에서 3일, 시댁에서 3일씩 지내자고 했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생활이 안정되지 않아 지난 5월부터는 한남동에 집을 하나 빌렸다. 결국 세 집 살림이 됐다. 남편은 결혼 뒤 나를 따라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지난 5월 촛불집회 발언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남편이 새벽 기도에 나가자고 했다. 기도 제목이 많다고 했다. 철야 예배도 빠지지 않았다. 그때 남편은 가게 문제로 힘들어했지만 그럴수록 부부간의 결속력은 더 커졌다. 불화는 전혀 없었다. 모두가 샘을 낼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재환씨는 100% 완벽한 남편이었다. 자기 어려움을 아내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것만 빼고는….안재환씨가 마지막으로 집을 나설 때는 어땠나?8월21일 남편이 중계동 집(친정)에 좀 일찍 들어왔다. 밤 11시쯤이었는데 그 전에는 워낙 늦게 들어왔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다면서 밥을 달라고 해서 밥을 맛있게 먹었다. 그날은 밝았다. 남편은 음악을 틀어놓고 나를 안고 아무 데도 못 가게 했다. 그리고 “미안해” “미안해” “내가 행복하게 해줄게”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다음 날 아침 두 숟가락 정도 밥을 뜨다 “어머님 점심 약속 있어요”라면서 나갔다. 8월22일 오전 10시30분께 함께 출근하면서 내가 남편에게 “안재환 최고야! 파이팅!”이라고 소리쳤다. 남편은 해맑게 웃으면서 나갔는데 그게 마지막이다.안씨가 집을 나가서 발견될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왜 바로 찾지 않았나? 남편이 집에 안 들어오는데 가만히 있는 아내가 어디 있나. 매일 전화하고 문자하고 백방으로 찾아다녔다. 전에도 한두 번 전화 연락이 안 된 적이 있었다. 남편에 대한 믿음이 컸다. 어두운 면이 없는 사람이었다. 집을 나간 날 화장품 사업을 하는 이사님으로부터 남편이 연락이 안 된다는 전화가 왔다. 그날부터 남편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이튿날부터 남편 주변 사람을 만나고 다녔다. 남편과 친한 사람이 “재환이가 2,3일 머리 식히고 싶다며 낚시 장비와 낚시터를 알아보고 다녔다”라고 말했다. 마누라에게 문자 한 통이라도 해야지 하는 생각에 화가 났다. 처음에는 “머리 식히고 있다가 어서 와” “도대체 섭섭한 게 뭐냐”라고 하다가 나중에는 울면서 “제발 돌아오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이상한 낌새를 채지는 못했나?7월부터 술 먹으면 남편은 울었다. 8월부터는 술을 먹는 횟수가 늘었고 세상에 대해 비관적이고 시니컬해졌다. 8월 초에 강화도에 갔는데 “너에게 말 안 한 것이 있다. 미안하다. 남자로서 다 끝났다”라고 했다. “선희야, 너한테는 피해 안 가게 할게”라며 기도했지만 하나님이 안 들어준다는 이야기도 했다. 여자 문제인 줄 알았다. 난 어려운 일을 많이 겪어서 이겨낼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어리광 부린 것이다. 쪽 팔리니 잊어달라”고 말했다. 그 말을 믿었다. 워낙 해맑게 웃어서 걱정하지 않았다. 남편이 하도 낙천적인 성격이어서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안재환씨 사채가 100억원 가까이 된다고 한다. 사채라니…. 사채, 빚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걸 알았다면 서둘러 결혼했겠나? 남편의 성실함을 믿었고 그 믿음은 확고했다. 남편에게 사채가 있다는 것은 지난 9월4일 처음 들었다. 남편이 모습을 보이지 않자 사채업자가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채업자들은 가족과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사채업자들이 나를 만나겠다고 했다. 남편 친구 한 분이 “사채가 30억~60억원 된다”라고 말했다. 어떤 사채업자는 건달이 남편을 데리고 있다고, 모든 것을 폭로하겠다고 했다. 사채업자들은 말을 계속 바꿔 가면서 공갈하고 협박했다.
지난 5월 안재환씨에게 2억5000만원에 대한 보증을 직접 섰다.
시댁 식구들이 납골당에서 정선희씨 사진을 치웠다.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정선희씨’라고 부르고, 시어머니는 기자들과 함께 선희씨를 찾아다닌다. 또 안재환씨 누나는 정선희가 범인을 알고 있는데 숨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남편을 잃은 내 슬픔이 크다고 하더라도 자식과 형제를 잃은 슬픔이 더 심하리라 생각한다. 1년간의 추억과 수십년간의 추억이 다르다고 여기시는 것 같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는데…. 어떤 일에는 희생양이 필요한데 분노와 책임의 대상이 ‘나’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어머니는 딸 때문에 말도 못하고 매일 신경안정제만 먹고 계신다. 가슴 아프다. 세상이 죽은 사람도 쉴 수 없게 만드는 것 같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남편에게 집중하려고 한다. 차마 말을 못한 것이지 일부러 나를 속인 게 아니라고.
정치권에서 악플을 금지하는 이른바 ‘최진실법’을 만든다고 한다.나도 진실 언니 가족도 ‘최진실법’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최진실법’이 나올 때마다 유족 가슴이 찢어질 것이다. 진실 언니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악플에 너무 큰 고통을 받았다. 댓글이 의견 나누는 것이 아니라 마녀사냥의 도구이자 사형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막는다고 될 일인지 모르겠다. 나오지 말아야 할 싹이 나온다고 흙을 통째로 갈아엎을 수는 없는 일이다. 외국에서도 댓글을 규제하는 나라가 없다고 들었다. 문화는 거대한 호수와 같다. 어떤 미생물이나 병균이 자란다고 해서 물을 뺄 수는 없는 것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