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대한민국’의 판단이 공개됐다. 10월20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위원장 김지형)는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 건설 재개·중단 여부에 대한 시민참여단의 결정을 발표했다. 최종 59.5%가 건설 재개, 40.5%가 건설 중단 의견을 냈다. 향후 원자력발전 정책에 관해서는 원전 축소가 53.2%, 원전 유지가 35.5%, 원전 확대가 9.7%였다. 공론화위원회는 현재 일시 중단된 신고리 5·6호기의 건설을 재개하는 한편 원자력발전 비중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에너지 정책을 추진할 것을 정부에 권고했다.

ⓒ시사IN 신선영10월20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김지형 위원장이 공론화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은 지난여름부터 숨 가쁘게 지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19일 대선 기간 공약으로 내세웠던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문제에 관해 사회적 합의를 통한 결정에 따르겠다고 밝혔다. 그 ‘사회적 합의’의 방식으로 선택된 게 바로 공론조사(시민참여형 조사)였다. 7월24일 공론화위원회가 출범했고 8월8일부터 시민 2만6명에게 1차 조사 전화가 갔다. 참여 의사를 밝힌 5891명 가운데 지역·성·연령·의견 분포를 고려한 500명을 추출해 9월13일 최종 시민참여단을 구성했다.

500명 시민참여단은 한 달간 ‘숙의(熟議)’ 과정을 거쳤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와 중단을 주장하는 양측 전문가가 만든 자료를 제공받았다. 책자와 동영상(이러닝 시스템)을 보고 지역 순회 토론회 등을 찾아가며 공부했다. 10월13일부터 충남 천안에서 열린 종합토론회에서는 2박3일간 합숙하며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중단 여부를 결정할 정보를 모았다. 참여율이 높았다. 하나당 15~20분짜리 찬반 양측 동영상 강의 12강을 모두 수강한 비율이 92%에 이른다. 최종 선정된 시민참여단 500명 가운데 478명이 9월16일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고 10월13일 종합토론회 때에는 거기에서 7명이 빠진 471명이 2박3일치 짐을 꾸려 합숙 장소에 집결했다.

2박3일 종합토론회가 이번 시민참여형 조사의 백미였다. 471명의 시민참여단은 ‘경청’과 ‘숙의’ 현수막이 걸린 토론장에서 전체 14시간여(855분) 동안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중단 여부를 고민했다. 양측 전문가의 발표를 듣고 10명으로 구성된 분임별로 모여 토론했다. 분임 토론에서 뽑아낸 질문들을 다시 전문가들에게 던져 대답을 들었다. 이런 과정을 총 4번 거쳤다. 중립적인 위치에서 시민참여단의 토의를 돕는 모더레이터(moderater) 중 한 명으로 종합토론회에 참여한 박지호 갈등전환센터 소장은 “짧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시민참여단이 더 집중하는 분위기였다. 끝까지 빠지는 사람 없이 진지하게 토론에 참여하는 걸 보고 우리도 많이 놀랐다”라고 말했다.

시민참여단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친 건설 재개·중단 양측 전문가들에게도 종합토론회 2박3일은 피 말리는 시간이었다. 건설 중단 측은 사고 시 신고리 5·6호기의 안전성 문제와 신재생 에너지의 확산 가능성 등을 근거로, 건설 재개 측은 원전 중단 시 전력 수급 불안 우려와 수출 상품으로서의 원전 역할을 강조하며 시민참여단을 설득했다. 시민참여단은 중단 측에 ‘탈원전 시 LNG 발전이 증가하는 문제’ ‘태양광 폐패널과 풍력발전기 소음 등 신재생 발전의 환경 악영향’ 등에 대한 대안을 물었다. 재개 측에는 ‘원전 비정규직 노동자 안전 실태’ ‘핵폐기물 처리 비용을 반영한 실제 원자력발전 비용’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판단의 근거를 구했다.

10월20일 공개된 최종 조사 결과, 과반 이상의 시민참여단은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측에 손을 들었다. 이날 함께 공개된 1차 조사(2만6명 대상) 결과도 건설 재개 36.6%, 건설 중단 27.6%로 재개 측 의견이 9%포인트 높았다. 이 의견 분포를 그대로 반영해 구성한 시민참여단은 숙의 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더 ‘건설 재개’ 쪽으로 기울었다. 자료집과 동영상 강의를 듣고 모인 합숙 첫날인 10월13일에 돌린 3차 조사에서는 재개 대 중단 격차가 14%포인트로 벌어졌고 합숙을 마친 10월15일 실시한 4차 조사에서는 17.8%포인트로 간격이 더 커졌다(9월16일 오리엔테이션 때 실시한 2차 조사에서는 찬반 의견을 묻지 않았다). 양자택일을 요구한 최종 조사 문항에서는 19%포인트 더 많은 사람들이 ‘건설 재개’를 지지했다. 1~3차 조사 때까지 ‘잘 모르겠다’에 체크한 25~35%의 판단 유보층이 종합토론회를 거친 뒤 대부분 마음을 정했다.

53.2% ‘향후 원전 축소해야 한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지지’가 곧 ‘원전 지지’는 아니다. 시민참여단은 ‘신고리 5·6호기는 계속 짓되 향후 발전 정책에서 원전은 축소해나가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원자력발전 정책 방향을 묻는 문항(4차 조사)에서 시민참여단 53.2%가 ‘원전 축소’를 지지했다. ‘원전 유지’는 35.5%이고 ‘원전 확대’는 9.7%에 불과하다. 숙의 과정 전 진행한 1차 조사와 비교해 ‘원전 축소’ 비율은 높아지고 ‘원전 확대’ 비율은 낮아졌다. 특히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재개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사람 가운데에서도 32.2%가 향후 원전은 축소해나가야 한다고 응답했다. 국민들 사이 ‘탈원전’에는 공감대가 서 있지만 그 속도에 관해 의견이 갈린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결과를 떠나, 공론화 조사 과정에 대한 참여자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시민참여단의 공론화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는 평균 3.24점(4점 만점)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종 결과가 본인 의견과 다를 경우 존중하겠다는 응답이 93.2%에 달했다. 종합토론회를 마친 뒤 시민참여단 구성원은 “부모와도 대화가 어려운데 전 연령대와 대화가 될까 하며 왔는데 너무 좋았다” “요즘 젊은이들… 이런 생각이 있었는데 젊은 사람들도 생각이 많고 대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대한민국의 시민의식이 낮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토론을 하면서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시민으로서 자부심을 느꼈다”와 같은 소감을 남겼다. 종합토론회에서 건설 재개 측 토론자로 참석한 임채영 한국원자력학회 총무이사는 “주제가 너무 낯설고 상반된 주장과 팩트가 오가기 때문에 사실 처음엔 (공론조사의 효과에 대해) 좀 의문이었다. 그런데 직접 경험해보니 시민참여단의 모습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진지하고 열의가 있어서 평가할 만하다고 느꼈다”라고 말했다. 건설 중단 측에 섰던  ‘안전한 세상을 위한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시민행동’도 10월20일 기자회견을 열어 “아쉽지만 시민참여단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무엇보다 이게 끝이 아니다. 건설 중단 측 토론자로 참석한 이상훈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소장은 “당장 원전 찬성파가 세를 키울 수 있겠지만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가 장기적으로는 ‘탈원전’에 좋게 작용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40년 동안 한쪽 방향으로 흘러온 에너지 정책이 방향을 트는 노력과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국민들이 함께 확인하고 공감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어차피 에너지 전환은 한 세대 정도의 시간은 걸리는 일이고 이번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