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외교 불장난이 또 다시 시작됐다
  •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 호수 528
  • 승인 2017.11.02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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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 맺은 핵협정과 관련해 인증 거부를 선언했다.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이 이란의 핵협정 준수를 확인했지만 이란이 ‘나쁜 행동’을 했다며 거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외교 불장난’이 또다시 시작됐다. 이미 그는 지난 6월 미국의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를 전격 선언해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바 있다. 이번엔 전임 오바마 행정부의 대표적 외교 업적인 이란 핵협정에 손을 댔다. 트럼프는 미국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P5+1)이 2015년 7월 이란과 체결한 핵협정을 두고 “미국이 지금까지 맺은 가장 나쁘고도 일방적인 협정 가운데 하나”라고 비판해왔다. 10월14일에는 이란의 협정 준수 여부에 대한 인증 거부(불인증·decertification)를 선언함으로써 이 협정이 파기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EPA10월14일 테헤란에서 한 시민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란 핵협정 불인증 선언을 보도한 신문을 읽고 있다.

‘P5+1’과 이란이 2006년 협상에 돌입해서 2015년 7월 극적으로 타결한 핵협정의 공식 명칭은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이다. 핵심은 이란의 핵 개발 중단이다. 협정에 따르면, 포르도(핵무기의 핵심 재료인 농축우라늄 제조 장소)를 이란과 서방의 핵과학자들이 함께 근무하는 연구시설로 바꾸며, 이란의 원심분리기 2만 개를 10년에 걸쳐 6104개로 줄이기로 했다. 또한 원자력 연구 개발에 필요한 우라늄도 저농축 수준으로 제한하고 추출 규모도 300㎏ 이하로 고정했다. 핵 개발 중단 대가로 이란은 석유 금수 및 금융제재를 포함한 서방의 경제제재에서 벗어나고, 100억 달러로 추산되는 동결 자산도 돌려받게 된다. 만일 이란이 합의를 어기면 65일 안에 제재를 복원할 수 있는 안전장치도 마련해놓았다.

당시 이란 핵협정이 타결되자 세계 대다수 나라가 환영했지만 미국의 친이스라엘 단체들과 공화당 의원들은 강력히 반발했다. 특히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는 90일마다 행정부(대통령)가 이란의 합의 준수 여부를 의회에 인증해야 한다는 ‘이란 핵협정 재검토 법안(INARA)’을 통과시켰다.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 아무 문제없던 이란 핵협정은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중대 기로에 처했다. 대선 유세 때 이란 핵협정의 폐기를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지난 1월 대통령에 취임한 뒤에도 4월, 7월에 각각 ‘이란의 합의 준수’를 인증하면서 국제사회의 불안감은 다소 줄어드는 듯했다. 세 번째 인증 시한인 10월15일을 하루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결국 불인증으로 돌아섰다.

문제는, 이란이 핵협정을 충실히 준수해왔다는 점이다. 이란 현지에 여러 번 사찰단을 파견해 준수 여부를 확인한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물론 협정 서명국인 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나아가 미국 국무부조차 이란의 합의 준수를 공인했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과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이 지난 9월26일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이란의 핵협정 준수를 당당히 확인한 바 있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인증을 거부한 까닭은 무엇일까? 트럼프 대통령은 불인증 이유에 대해 “이란이 여러 차례 협정을 위반했으며, 협정 정신에 부응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이란이 ‘협정 정신’을 위배하는 ‘나쁜 행동’을 해왔다는 것이다. 그 ‘나쁜 행동’으로는 이란의 탄도미사일 시험, 헤즈볼라나 하마스 같은 테러단체에 대한 자금 지원, 시리아 내전 등이 열거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는 이란의 나쁜 행동은, 핵협정에 포함되지 않았거나 입증되지 않은 사안들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 참모들이 내놓는 불인증 사유 자체가 궁색하다는 비판을 듣는 대목이다.

협정 당사국들, ‘불인증 사유 궁색’ 비판

트럼프의 불인증 선언에 미국을 제외한 모든 협정 당사국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란의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미국이 핵협정을 찢겠다면, 이란은 그것(협정)을 산산조각 내겠다”라고 경고했다. 핵협정 서명국인 영국·프랑스·독일은 공동성명을 통해 “우리 3개국은 협정을 완전히 이행한다는 방침에 변함이 없다”라면서 트럼프 행정부와 갈라섰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및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 선언으로 자초한 미국의 국제적 고립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란 핵협정 체결의 미국 측 주역이었던 존 케리 전 국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이 국제적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라고 비난했다. 웬디 셔먼 전 국무부 정무차관도 “미국의 외교정책에 재앙적 결과를 가져오는 한편 미국·유럽 동맹관계가 틀어지고 이란·러시아 및 중국의 영향력은 더욱 증대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트럼프의 불인증 선언만으로 협정이 완전히 파기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만이 당사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서명국들과 이란은 여전히 준수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이제 공은 미국 의회로 넘어갔다. 미국의 ‘이란 핵협정 재검토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이란의 합의 준수 여부를 불인증하는 경우, 의회는 향후 60일 내에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다시 부과하는 법안을 상정할지 결정해야 한다. 미국 의회 내 트럼프 불인증에 대한 반대 기류도 심상치 않다. 상원의 경우, 이란에 다시 경제제재를 부과하는 법안이 상정된다면 정족수 100명 가운데 60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공화당 의석은 52석에 불과하다. 설상가상으로 미치 매코넬 상원 원내대표, 존 매케인, 랜드 폴 등 공화당의 영향력 있는 의원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조치에 난색을 표명한 상태다. 민주당 의원들은 상·하원 가릴 것 없이 전원이 트럼프의 이란 핵협정 불인증에 반대하고 있다.

ⓒAP PHOTO10월13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미국의 이란 핵협정 불인증 선언에도 핵합의를 계속 지키겠다고 밝혔다.

유럽은 미국 대통령의 불인증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의 불인증은 순전히 미국 국내적 이슈라는 게 유럽의 공식 견해”라면서 “유럽 관리들은 미국 의회가 이란 제재를 다시 부과하지 않도록 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런 분위기를 아는 대다수 외교 분석가들은, 미국 의회가 이란에 경제제재를 다시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본다. 대신 미국 처지에서 이란 핵협정의 미비점을 보완한 법안을 발의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실제로 공화당의 대표적 대이란 강경파인 톰 코튼 상원의원이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 뒤 백악관 실무진과 구체적 보완책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현재 논의 중인 보완책은 대략 세 가지다. 이란의 핵 활동 제한 시한을 2025년으로 설정한 ‘일몰조항(sunset clauses)’을 없애고, 이란 핵시설에 대한 사찰 활동을 더욱 강화하며, 이란의 탄도미사일 및 순항미사일 프로그램을 제한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일몰조항 제거’가 핵심이다. 이란의 핵 활동을 2025년이 아니라 영구적으로 금지하도록 핵협정을 수정하자는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불인증 카드를 꺼낸 진정한 목적은, 의회에 보완 입법의 압력을 넣는 동시에 이란에 대해서도 재협상을 압박하기 위함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다만 이런 보완 입법에 대해서도 야당인 민주당이 부정적이기 때문에 미국 의회에서 통과될지는 불투명하다.

직접 당사국인 이란은 핵협정 재협상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만에 하나 재협상이 열리더라도 미국이 기존 협정의 보완을 원하는 만큼 이란도 협상 당시 양보한 쟁점들을 다시 꺼내들 것이 분명하므로 타결에 이르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최근 뉴욕을 방문한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재협상 가능성을 일축하며 “이란이 (핵협정 때문에) 포기한 10t의 농축 우라늄을 반환할 준비가 돼 있는가?”라고 트럼프 행정부에 되물었다. 러시아와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영국·프랑스 등 유럽의 우방국들도 재협상에 부정적이다. 피터 위티그 미국 주재 독일 대사는 “이란에 대한 미국의 우려는 이해하지만 기존 핵협정을 준수하는 바탕에서만 그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최종적으로 이란 핵협정에서 탈퇴해도, 유럽 우방국들은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의미다. 이래저래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불장난으로 전후 70년 세계 질서를 주도해온 미국의 지위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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