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위기 연원에 해법이 있다
  • 존 메릴 (전 미국 국무부 동북아지역 정세분석실장)
  • 호수 528
  • 승인 2017.11.01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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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핵무기를 전쟁용·억지용 그리고 강압용으로 사용해왔다. 미국이 주도적으로 일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북한은 계속 핵무기를 협박용으로 활용할 것이다.

북한이 6차 핵실험과 미국 본토를 겨냥한 대륙간 탄도미사일 시험에 나서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사시 북한의 ‘완전 파괴’를 거론하면서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감이 전례 없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 간에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설전이 오가면서 전쟁 발발에 대한 불안감이 어느 때보다 크다. 1990년 들어 문제가 불거진 뒤 올해로 27년째 관련 당사국들이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 채 표류 중인 북한 핵 위기의 본질은 무엇인가? 미국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로서 오랫동안 국무부 동북아지역 정세분석실 실장을 지낸 존 메릴 박사가 북한 핵 위기의 근원을 진단하고 타개책을 제시한 특별 기고문을 보내왔다. 그는 하버드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델라웨어 주립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존스홉킨스 대학 국제대학원, 조지타운 대학, 조지워싱턴 대학, 라파예트 대학 및 국제관계센터(CSIS) 등에서 강의 및 연구 활동을 해왔다. 국내에 <한국전쟁의 기원과 진실>이 번역 출판되기도 했다.

ⓒ시사IN 포토존 메릴 박사는 “미국은 전쟁용·억지용·강압용으로 핵을 실행해왔다”라고 말했다.

지난 몇 년간 북한 핵무기 계획이 급속한 진전을 보면서 논평가들의 북한 비난이 봇물을 이뤘다. 정작 이 문제를 야기한 미국의 역할에 대해선 사실상 아무런 고려도 하지 않았다. 많은 논평가들은 북한과 북한이 저지른 위법 행위들, 이를테면 각종 불법 행동, 인권유린, 가족 암살 등을 비난하는 데만 열중한다. 하지만 작금의 사태를 야기한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에 이들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만한 제안을 내놓기는커녕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다. 핵 문제를 야기한 장본인이 미국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게 궁극적인 해결을 향한 첫걸음이다.

오늘날 북한 핵 위기의 연원은 1950년대 핵무기 사용을 통해 북한을 협박하려던 미국의 정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의 문제를 야기한 건 미국의 핵 위협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편의상 잊어버린다. 이제 그 저주가 새의 새끼처럼 둥지로 돌아온 형국이다.

한국전쟁 이후 ‘핵을 통한 굴복 정책’


핵무기의 용도는 크게 세 가지다. 즉 전쟁용, 억지용 그리고 강압용이다. 미국은 이 세 가지 용도를 모두 실행해본 나라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때 ‘적국’의 도시, 즉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무기를 사용한 유일한 국가다. 이후 미국은 다른 여러 나라와 함께 억지용으로 핵을 활용해왔다. 핵 억지 목적이 통하면 좋지만 그렇지 않으면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각오한 채 말이다. 세 번째 목적인 강압, 협박 및 정치적 공갈 목적의 핵 용도는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일반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자주 이용돼왔다. 이런 수법을 이용한 나라 가운데는 핵 보유를 선언하지 않았으면서도 초보적 핵 국가로 탈바꿈한 이스라엘과 북한도 포함돼 있다.

미국은 과거 북한에 핵무기를 사용할 뻔한 일이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은 중국의 추가 병력 파병을 막기 위해 압록강 일대에 ‘방사능 벨트’를 구축할 것을 주창한 바 있다. 그의 구상은 실현되지 못했지만 한국전쟁 중 북한에 대한 다른 형태의 핵 위협은 훨씬 더 실제적이었다. 한국전쟁이 길어지자 미국은 피가 말랐고, 서유럽과 중동의 더 화급한 사안에서 주의를 돌리게 만든 요인으로 비쳐졌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소련의 진짜 결정타는 (한국이 아닌) 서유럽과 중동 지역에 날아들 것으로 느꼈다. 미국은 한국전쟁을 종식하기 위해 북한에 핵 위협 혹은 핵을 통한 굴복 정책으로 눈을 돌렸다. 물론 당시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미국은 이런 정책을 펼치기가 수월했다. 소련도 미국의 핵 사용에 맞서서 ‘핵의 아마겟돈(최후의 대결전)’ 상황이 야기되는 위험을 감수할 것 같지는 않았다. 중국은 1960년대 후반까지도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한 상태였다.

북한에 대한 핵 위협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취임식 행렬 때 확연히 드러났다. 위 사진을 보면 아이젠하워 대통령 취임식 때 280㎜ 원자 대포(atomic cannon)가 군 트럭에 실려 수도 워싱턴의 펜실베이니아 거리로 내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 오른쪽 배경에 옛 우체국 건물이 보이는데, 그 자리에 지금은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이 들어서 있다. 일반인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 역사광으로 알려졌고 대단히 존경받는 전역 장군들을 보좌진으로 두었기 때문에 북한 핵문제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잘 이해하고 있으리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EPA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취임식 행렬의 280mm 원자 대포.
ⓒEPA현재의 트럼프인터내셔널 호텔.


남한에 한때 엄청난 수에 달하는 미국의 전술 핵무기가 배치됐다는 사실은 지금 잊힌 상태다. 비핵무기 국가 혹은 1960년대 핵 개발 프로그램을 시작한 중국 같은 나라들에 사용할 경우 얻게 될 효용성에 자극을 받은 미국은 남한에 전술 핵무기를 배치하는 데 전력했다. 남한의 전술 핵무기는 1958년 1월에 처음 배치되었다. 당시 어니스트 존 지대지미사일, 마타도어 크루즈미사일(순항미사일), ADM 핵지뢰, 280㎜ 원자 대포 및 8인치 곡사포가 배치됐다. 이어 미국은 한국의 오산 및 군산 공군기지에 전투폭격기 탑재용 핵폭탄을 보냈고, 나중에는 라크로스 단거리 탄도미사일, 데이비 크로켓 무반동총 및 단거리 서전트 미사일도 한국에 보냈다.

1960년대 중반 핵 증강이 절정에 달하던 당시 남한에는 전술 핵탄두가 거의 950개나 배치됐다. 그 가운데 다수는 중국의 참전을 가정한 비상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따로 비축됐다. 당시 유럽 전역에는 7배 더 많은 핵무기가 배치되었지만, 남한 한 곳에만 배치한 핵무기치고는 아무리 봐도 지나치게 많은 것이었다. 이런 엄청난 수의 핵무기는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당시 펼치던 ‘새로운 조망(New Look)’이라는 안보정책의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새로운 조망’ 국가안보정책은 군사적 공약을 경제 자원과 균형을 이뤄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무력”을 확보하자는 것인데, 그 특징은 핵전력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었다. 핵 개발과 경제개발을 동시 진행한다는 북한 김정은의 병진 노선과 기이하리만큼 비슷하다. 김정은과 아이젠하워 두 사람 간에 큰 차이가 있다면 당시 아이젠하워는 김정은처럼 재래식 병력의 대대적인 노후화 문제에 직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조지 H. 부시 대통령은 1990년대 초 남한에 배치된 전술 핵무기를 철수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남한에서 전술 핵무기가 철수된 지 오래다. 미국은 사찰을 해서라도 남한에 배치된 전술 핵무기가 철거됐음을 북한에 보여주는 방안을 한때 진지하게 고려하기도 했다. 비록 남한에서 전술 핵무기는 철거됐지만, 북한 내 어느 목표 지점이라도 미국이 바다 혹은 심지어 미국 본토에서 30분이면 핵무기가 발사될 수 있다는 사실은 여전하다.

ⓒ연합뉴스1992년 2월17일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남북기본합의서 및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서명하고 있는 모습.

북한이 느끼는 실존적 위협을 줄여줘야

오늘날 북한의 핵무기 계획은 전형적인 ‘작용-반작용(action-reaction) 역동성’에 따라 움직인다. 이런 모델은 1차 세계대전 때 전투함 건조에 나선 영국과 독일 사이에 벌어진 해군 군비 경쟁을 통해 그 예를 볼 수 있다. 즉 어느 한 국가의 위협이 감지되면 상대국에도 비슷한 반응을 촉발시키고, 그런 과정은 계속 상승작용을 하면서 소용돌이친다. 작용-반작용 역동성은 기본적으로 외부 요인이다. 이데올로기, 지도부의 위신, 군산복합체의 압력 등과 같은 국내 요인들은 부차적이다.

이제 북한 핵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 하는 질문에 부닥친다. 북·미 양측의 과열된 수사를 피함으로써 현재의 위기 상황을 누그러뜨리는 건 분명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다. 또한 러시아 및 중국이 제시한 ‘동결 대 동결’ 방안도 나름 장점이 있는 듯하다. 구체적인 협상 기준이 무엇이든 간에 타협안이 성사되려면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실험 동결 대가로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상당한 축소를 포함해야 한다. 지금까지 대부분 군축 역사를 보면 작용-반작용 역동성은 되돌릴 수 있다. 우리는 다양한 긴장 완화 조치를 통해 이런 과정을 실험해봐야 한다. 또한 타협안이 북한에 어떻게든 받아들여질 수 있으려면 북한이 느끼는 실존적 위협을 줄여주어야 한다. 미국이 주도적으로 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면 북한은 핵무기를 협박용으로 활용하고 (동맹 관계인) 미국과 한국 간에 쐐기를 박으려는 유혹에 빠질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같은 북한의 전략은 미국 억지력에 대한 신뢰성을 파괴하고, 이 지역 전체에 핵무기 경쟁을 촉발할 것이다.

정리·남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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