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 모비(Moby)의 말마따나 음악이란, ‘그저 조금 다르게 움직이는 공기’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음악은 그러니까, 공기를 구성하고 있는 분자구조들이 변형된 것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기타를 연주한다고 치자. 당신이 듣는 소리는 이전까지 동일했던 공기의 분자구조가 기타 플레이에 의해 바뀐 결과물이다. 그 소리를 듣는 당신은 감탄사를 내뱉고, 환호성을 지르며, 때로는 눈물을 훔친다.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 〈스코어〉는 이렇게 ‘조금 다른 구조의 공기 분자’일 뿐인 음악이 영화 속에서 어떻게 관객들을 매혹했는지 보여준다. 여기서 잠깐. ‘스코어’라는 단어에 대해 부기해야 할 것 같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면 음악 관련 두 가지 부문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오리지널 스코어’ 부문이고, 다른 하나는 ‘오리지널 송’ 부문이다. 둘의 차이는 ‘가사의 유무’에 기인한다. 〈스코어〉는 (주로 오케스트라 기반의) 연주곡 쪽을 다룬 작품이다.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 〈스코어〉 속의 영화음악 녹음 장면.

당연히 출연진부터가 화려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음악적 파트너였던 존 윌리엄스를 필두로 팀 버튼 감독의 분신이라 할 대니 앨프먼, 영화음악에 빅 밴드 감성을 불어넣은 ‘007 시리즈’ 주제가의 주인공 존 배리, 그리고 한스 짐머와 엔니오 모리코네까지 영화음악사를 수놓은 거장들이 등장해 자기만의 생각과 영업 비밀을 털어놓는다. 이 영화, 사정이 허락한다면 꼭 보기 바란다. 저 뛰어난 작곡가들이 창조해낸 음악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오는 것만으로도 대만족이다. 당신의 귀가 오랜만에 호사를 누릴 것이다. 

그 어떤 분야든, 정점에 올라선 사람에게는 철학적인 통찰력이 서려 있다고 믿는다. 영화음악가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얘기하는 건 결국 영화음악을 경유한 우리의 인생이다. 경험이라는 이름의 옷을 입은 아포리즘이 잊을 만하면 나오는 덕에 나 역시 받아쓰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중 하나를 소개한다. “오케스트라 레코딩을 할 때 수많은 연주자가 같은 음을 연주하지만 미세한 수치로 조금씩 다르죠.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코러스 효과예요. 그런데 모든 연주가 완벽하게 똑같다면? 아마 음악은 끔찍했을 겁니다.”

그래, 이게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의 꼴 아니던가. 음악을 세계로, 연주자를 우리 자신으로 치환하면 우리가 서로 다르고, 마땅히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다. 영화 〈사이코〉의 살인 장면에 삽입된 음악을 얘기하는 신도 기억할 만하다. 그 장면에서 음악을 뺀다면? 하나도 무섭지 않을 거다. 반대로 찡찡거리기를 반복할 뿐인 음악만 듣는다면? 그냥 소음처럼 들릴 게 분명하다. ‘함께’가 당위가 되어야 하는 순간을 이보다 더 적확하게 설명할 순 없지 않을까 싶다.

당신 곁의 알람 시계가 바로 영감의 원천

이 탁월하고 재밌는 음악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피아니스트 양방언씨가 출연했을 때가 떠올랐다. 당시 배철수 DJ의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영감은 언제 가장 잘 떠오릅니까?” 거창한 대답을 기대하고 있는 와중에 양방언씨는 정말이지 진실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대답을 우리에게 던져줬다. “마감이 다가올 때죠.” 오죽하면 위대한 한스 짐머도 “막바지에 제작자가 전화를 하는 건 영감을 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겁을 주는 것에 가깝죠”라고 말하겠나. 심지어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는 〈아마겟돈〉(1998) 작업 당시 영화음악가 트레버 래빈에게 ‘카운트다운 시계’를 선물했다고 한다. 항상 보이는 곳에 놓고 있으라고.

기자명 배순탁 (음악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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