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 〈시사저널〉을 떠난 1992년은 또한 한국을 등진 해이기도 하다. 1989년 창간 멤버로 일하다가 이론과 실기로 탄탄히 중무장한 미술 전문기자가 되겠다고 프랑스로 건너온 지 벌써 25년이 흘렀다.
그동안 원 〈시사저널〉 식구들이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고 〈시사IN〉으로 거듭나고 또 10년의 역사를 쌓아가는 동안, 나는 지구 반대편에서 인생이란 오묘한 것이고 저 스스로 알아서 제 길을 간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도 문득 고향이 그리울 때, 정이 고플 때, 또 삶의 잣대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난감할 때 〈시사IN〉은 현재까지도 나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그것은 창간 시절 가졌던 진실 보도와 전문성에 대한 열정,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선후배 간의 끈끈한 연대감이 내 안에 있기 때문일 테다.
옛 추억을 떠올리면, 창간 당시 ‘보는 잡지’의 선도적 구실을 했던 〈시사저널〉을 만들기 위해 나는 글을 쓰는 기자이면서도 미술부와 사진부의 중요성을 부각하려 애썼던 점이 기억난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도 어쩌다가 고국에 들렀을 때 가판대에서 세련된 디자인의 〈시사IN〉을 만나면 참으로 뿌듯하기 그지없다.
환갑을 바라보는 내게 미술과 관련된 글쓰기는 몇 년 전부터 그림을 그리는 작업으로 자연스럽게 탈바꿈되었다. 그림은 이제 내 삶의 동반자이다. 영원히 그림을 그릴 것이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역설에 대해 크게 공감하게 된다. 김치와 치즈가 다르듯 한국적 감성과 유럽적 감성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림도 자아의 표현이란 점에서 익숙한 토양에서 퍼올려지는 표현이 안정감이 있다. 반면에 인간이 느끼는 희로애락은 세계인이 공감하는 원초적인 감정으로 동서양을 하나로 묶어준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감정을 화폭에 담아내는 작업은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불변하는 진실을 찾는 또 다른 방법이 아닐는지….
고명희
원 〈시사저널〉 창간 멤버로 입사하여 1992년까지 실용뉴스부와 문화부에서 일했고, ‘거리의 화가들:영화 간판을 그리는 사람들’ 등의 기획기사를 썼다. 1992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1대학 미술사학과에서 DEA 과정을 마쳤다. 월간 미술잡지 〈미술세계〉에서 2006~2012년 파리의 전시 소식을 알리는 통신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현재 프랑스 초등학교에서 파트타임 장애아 교사로 일하며 몇 년 전 시작한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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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찬 (원 〈시사저널〉편집국장, 주필, 발행인)
1989년은 특별한 한 해였다. 한국 언론이 지형의 대변화를 예고하며 술렁이던 그해 연말, 나는 원(原) 〈시사저널〉 경영진의 거듭한 초빙에 응하여 〈한국일보〉를 떠나서 제작 총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