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대학의 리처드 세일러 교수가 2017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한국에서도 〈승자의 저주〉 〈넛지〉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 등이 출간되었을 정도로 그의 책은 대중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책에는 온갖 재미있는 일화들, 특히 교과서적 경제 이론을 정면으로 거스름으로써 읽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화들이 가득하다. 초기에 주류 경제학은 리처드 세일러 등의 지적을 ‘호기심 천국’이라고 무시했다.

리처드 세일러 교수는 1980년대 말부터 〈경제 전망(The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에 ‘이상현상(Anomalies)’이라는 제목의 시리즈를 연재했다. 이 글들을 나중에 〈승자의 저주〉로 엮었다. 경제학의 기본 가정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그의 눈에는 부지기수였다.

그는 그 이유를 인간의 인지능력 부족에서 찾고 이러한 한계를 정리했다. 첫째는 사이먼(197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저 유명한 ‘제한 합리성’이다. 인간은 모든 정보를 활용하여 ‘합리적으로’ 극대화(maximizing)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충 그냥 만족할 만한 정도(satisfying)의 행동을 한다는 것이고, 이는 나중에 ‘정신적 회계(mental accounting)’ 이론으로 발전했다(예금통장에 충분한 돈이 있는데, 이자율이 훨씬 높은 카드 빚을 갚지 않는다). 두 번째는 ‘제한 의지(bounded will power)’로 ‘계획자-실행자 모델(planner-doer model: 우리 마음 안에는 멀리 보는 계획자와 근시안적 쾌락을 추구하는 실행자가 항상 갈등한다)’로 발전했다. 세 번째는 ‘제한 이기성(bounded self-interest)’이다. 사람은 보통 경제학이 예측하는 만큼 이기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는 ‘사회적 선호(social preference)’ 이론이 되었다.

그의 예리한 관찰은 독특한 정책 방향을 낳았는데 ‘넛지(nudge)’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국가가 모든 것을 결정하거나 완전히 시장(즉 개인의 선택)에 맡기지 않고 쿡쿡 옆구리를 찌르는 제한적인 개입으로 아주 훌륭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제안이다. 연금의 확충(자동 가입과 탈퇴의 자유)이나 학생들의 건강한 식생활(뷔페의 앞쪽에 야채와 유기농 음식을 놓는다) 등에서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오바마 정부와 영국의 캐머런 정부 등 각국의 전략실에 넛지팀이 생길 정도였다.

 

 

ⓒ연합뉴스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9일(현지시간) 경제 분석에 인간 심리 연구결과를 접목한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H. 세일러(72) 미 시카고대 교수를 2017년 제49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리처드 세일러의 행동경제학은 경제학과 경제를 혁신적으로 바꿀 수 있을까? 가끔 그런 희망을 품는 사람들이 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리처드 세일러의 주장은 상당한 갑론을박을 거쳐 주류 경제학에 무난하게 흡수되었다. 코즈-윌리엄슨으로 이어지는 거래비용 이론도 마찬가지인데, 신자유주의의 본산인 시카고 대학이 코즈와 리처드 세일러를 영입한 것은 매우 흥미롭다. 30년 전, 리처드 세일러의 연재물 제목 ‘이상현상’은 쿤의 패러다임 혁명을 연상케 하는 제목이지만 현실에선 라카토스의 ‘보호대(핵심 명제를 보호하는 주변의 여러 이론들)’가 된 셈이다.

이질적 행위자의 상호작용에서 거시적 흐름 파악해야

한편 현재의 금융위기 맥락에서 주류 경제학을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거시경제 이론의 대가들(스티글리츠, 크루그먼 등)도 행동경제학에서 경제학 혁명의 미시적 기초를 찾는다. 즉 이질적 행위자의 상호작용에서 거시적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의 균형이란 제도와 규범의 일정한 범위 안에서 안정성을 보이는 것이며, 이질적 개인들의 누적 상호작용의 결과, 그 범위를 벗어나면(이것이 ‘티핑포인트’ 또는 ‘임계점’이다) ‘돌연변이=이상현상’이 복제를 거듭한 결과 새로운 정상(new normal)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지금과 같은 대위기와 장기 침체가 지속될 것이다.

기실 리처드 세일러의 ‘이상현상’이란 보통 사람들이 매일 겪고 당연하게 여기는 일상의 실천이다. 단지 경제학자들에게만 어떻게든 해명해야 할(리처드 세일러를 공격하건 옹호하건) 괴이한 현상이 되곤 한다. 이는 경제학이라는 색안경을 벗는 사람이 리처드 세일러처럼 가끔씩만 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기자명 정태인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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