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이다. 2016년 11월16일부터 2017년 1월3일까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를 빌미로 닭 2582만 마리가 도살·매몰되었다. 올해 상반기 물가상승률은 누가 뭐래도 기름 값과 함께 달걀 값이 끌어올렸다. 우리는 식당에서 ‘달걀 프라이 서비스’가 사라진 뒤에야 닭 귀한 줄 새삼 깨달았다.

그때뿐이었다. 달걀 값 앙등이 진정되자 지난 일이 되었다. 그러고는 ‘살충제 달걀’이 찾아왔다. 유럽발 살충제 농장 파문에 놀란 농림축산식품부는 잔류 농약 검사에 들어가 지난 8월14일 한 산란계 농가에서 살충제 성분을 찾아냈고, 8월15일 자정을 기해 산란계 3000마리 이상을 키우는 모든 농장의 달걀 출하를 잠정 금지했다. 하루 유통되는 달걀이 4300만 알 규모다. 전수조사를 마치기까지 그 가운데 80% 이상의 달걀이 가정과 업소에 닿지 못했다. 얄궂게도 명절을 앞두고 있었다. 정부는 민감한 시기를 앞두고, 서민 대중에게 가장 민감한 식료인 달걀의 수급 안정에 진력했다. 일단 가격 앙등부터 막고자 했다. 노력이 통한 모양이다. 9월 중순 이후 10월 상순까지, 특란을 기준으로 달걀 열 알의 소매가는 5000원대 중반을 지켰다. 그러자 이 또한 지나간 일이 되었다.

달걀만큼 귀한 식료도 없다. 닭은 소·돼지보다 키우기가 만만했으므로 역설적으로 그 귀함이 서민 대중에게 사무치는 식료가 달걀이다. 별다른 공간도 필요 없다. 암탉 몇 마리만 풀어놓으면 아무튼 매일 달걀을 받을 수 있다. 김준근의 그림 〈넉넉한 객주〉는 반드시 농가에서만이 아니라도, 번잡한 저잣거리에서라도 가축을 치며 사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김준근의 〈넉넉한 객주〉, 독일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 소장.

객주는 조선 시대에 숙박·물류·은행 업무를 하던 공간이다. 19세기 말까지 마당 있는 어느 집에서나 구정물로 키울 만큼의 돼지, 알아서 먹이를 찾는 닭과 오리를 치며 살았다. 이때까지 닭은, 소량이라도 매일 단백질 식료를 사람에게 제공하기에 더욱 귀했다. 꿩 대신 닭이라고 했지만 올무 놓고 새그물 쳐서 꿩을 잡는 편이 낫지, 감히 고기만 먹자고 닭을 잡을 수는 없었다. 씨암탉 잡는다는 소리도 그렇다. 씨암탉은 암평아리를 내는 닭이다. 달걀을 내다보고 키우는 닭이다. 사위보다 더한 사람이 와도 ‘닭 대신 꿩’이었다.

그러다 세상이 바뀌었다. 1900년대에 고기용 나고야코친, 고기와 달걀을 아우른 플리머스록, 그리고 1970년대까지 산란계의 상징이었던 레그혼 등 외래종이 물밀듯이 들이닥쳤다. 근수 더 나가고, 달걀 더 낸다는 신품종은 이 땅의 재래종을 완전히 대체했다. 1900년대의 지식인들은 인공부화, 동물약품 사용 등 새 사육법만 익히면 닭 몇 마리가 금세 수천 마리로 불어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조선총독부와 미군정 모두 양계를 적극 장려

광복 후 양계는 농촌 개발의 핵심에 자리했다. 남한 정부뿐 아니라 미군정, 그리고 미군이 양계에 더 열심인 적도 있었다. 적은 비용으로 고기고 달걀이고 증산이 확실한 가축이 닭이니까. 안정적인 식료 확보란 외국군에게도 필수니까. 그러고서 양계는 1960년대 이후 가장 먼저 산업화한 축산으로 탈바꿈했다. 이제 한국 양계는 한 사람이 1년에 평균 220알 넘는 달걀을 먹고, 온 나라가 닭 10억 마리를 먹어치우는 규모를 감당한다. 동시에 닭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주기적으로 식품 불안에 떠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이상 〈넉넉한 객주〉와 같은 풍경은 없다. 저 풍경은 몇 마리 놓아 치던 닭과, 3000마리 이상 산란계를 키우는 농장 사이의 거리를 냉정하게 드러낼 뿐이다. 그 거리 앞에서, 우리는 섭섭해하기보다 냉정해질 일이다. 우리는 부를 수 없는 목가와 멈추어야 할 현실 사이에 서 있다.

기자명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