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주인공 ‘브루저’는 땅을 파거나 다지는 기계입니다. 보통 불도저라고 불리지요. 브루저는 아주 당당하게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돌진합니다. “이봐! 내 앞에서 비켜! 나는 고속도로를 건설해야 해.”

〈힘센 브루저〉 개빈 비숍 지음, 공민희 옮김, 한솔수북 펴냄


월요일에 브루저는 언덕을 다섯 개나 갈았습니다. 화요일에는 바위 열 개를 잘게 부수었지요. 수요일에는 숲 세 곳을 밀어버렸고 수선화 꽃밭도 깡그리 뭉개버렸습니다. 목요일이 되자 브루저는 기름 한 통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이 해놓은 일들을 돌아봅니다. 언덕 다섯 개, 바위 열 개, 숲 세 곳 그리고 수선화 꽃밭을 없애버렸습니다. 브루저는 자기 자신을 큰 소리로 칭찬했습니다. “괜찮은데, 브루저! 아주 잘했어!”

브루저가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도 자신을 칭찬하는 장면에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실제 건설 현장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산과 논밭이 사라지고 아파트 단지와 빌딩 숲이 세워집니다. 새로운 고속도로가 만들어집니다. 특히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산마다 너무나 많은 터널을 만들고 있습니다. 브루저는 무자비하고 저돌적인 건설업자를 그대로 닮았습니다.

작가 개빈 비숍은 브루저의 눈을 유리창에 그렸습니다. 그동안 자동차를 모델로 만들었던 많은 캐릭터들이 헤드라이트에 눈을 그려 넣었기에 아주 이색적입니다. 중요한 것은 작가의 이런 시도가 대단히 성공적이라는 사실입니다. 불도저 유리창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검고 성난 눈동자는 브루저의 저돌적인 성격을 아주 강렬하고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트랜스포머처럼 변신하지 않아도

브루저는 곧 달라집니다. 도대체 왜, 어떤 이유로 브루저는 냉혹한 건설업자에서 따뜻하고 친환경적인 건설업자로 거듭나게 될까요? 너무나 따뜻해서 순진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야기가 어쩜 이렇게 뜨거운 감동을 불러일으킬까요?

그림책 〈힘센 브루저〉의 캐릭터는 지극히 단순합니다. 트랜스포머처럼 변신하기는커녕 보통 불도저가 하는 일을 열심히 할 뿐입니다. 심지어 작가 개빈 비숍은 도로나 나무 그리고 작은 동물들을 다양한 소재의 콜라주로 표현합니다. 개빈 비숍의 콜라주는 단순하지만 서정적입니다.

그런데도 〈힘센 브루저〉는 트랜스포머보다 더 강렬한 인상과 감동을 줍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은 기교가 뛰어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또 아무리 기교가 뛰어나도 독자나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면 그건 분명 헛수고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그림과 뛰어난 시각예술은 독자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한국의 자연환경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습니다. 제 눈에는 그 어떤 나라보다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우리 자연환경은 아파트 단지와 고속도로 등 무분별한 건설로 파괴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우리 자연을 살리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예술적인 건설 작품을 보고 싶습니다. 부디 그림책 〈힘센 브루저〉를 통해 그 놀라운 지혜를 발견하기 바랍니다.

기자명 이루리 (작가∙북극곰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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