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가는 오키나와 말고 모르는 오키나와로
  • 이오성 기자
  • 호수 525
  • 승인 2017.10.1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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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오키나와는 양극단의 여행지다. 아름다운 휴양지거나 지상전을 겪은 비극의 섬이거나. 오키나와를 헤매는 ‘여행자’ 이명원씨와 전명윤씨를 만나 극단적인 여행 패턴에 ‘콜라보’하는 방법을 물었다.

지난해 오키나와를 찾은 한국인 여행객은 43만명이다. 오사카, 도쿄, 타이베이, 방콕, 홍콩에 이어 오키나와는 한국인이 많이 찾은 도시 6위를 기록했다. 2010년만 해도 겨우 1만5500명에 그쳤으나 저비용 항공 취항 이후 지난 7년간 연평균 383%나 여행객이 증가했다. 타이완인, 중국인과 함께 한국인은 오키나와를 가장 많이 찾는 외국인이다.

ⓒ전명윤 제공

한국인에게 오키나와는 양극단의 여행지다. <미래소년 코난>의 배경이 됐던 아름다운 남쪽 휴양지거나, 일본 영토에서 유일하게 지상전(미군과 일본군이 벌인 오키나와 전투)을 겪은 비극의 섬이다. 물론 대다수 여행자는 나하 시에서 1박, 중부 고급 리조트에서 2박, 추라우미 수족관이 있는 북부에서 3박 하고 다시 공항으로 돌아오는 여행 패턴을 따라 오키나와를 복사하듯 찍고 온다. 이 극단적이고 전형적인 여행 패턴에 ‘콜라보’를 줄 수는 없을까.

오키나와 연구자와 여행 작가가 한자리에서 만났다. 문학평론가 이명원씨는 2000년대 초반 김윤식 당시 서울대 교수가 가라타니 고진을 표절했다고 문제를 제기해 문단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랬던 그가 몇 해 전부터 오키나와에 꽂혀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더니 최근 <두 섬>(부제:저항의 양극, 한국과 오키나와)이라는 묵직한 저작을 한 권 펴냈다.  

필명 ‘환타’로 여행 마니아들에게 알려진 전명윤씨는 <프렌즈 오키나와>를 쓴 가이드북 작가다. 그는 이 책에서 오키나와 본섬을 속속들이 살펴본 것은 물론 국내 최초로 이시가키, 미야코 등 주변 섬까지 샅샅이 소개했다. 서로 스타일은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1년에 여러 날씩 오키나와를 헤매는 ‘여행자’다. 둘은 대담 내내 오키나와의 역사와 아픔에 크게 공감하면서도 여행의 방식에 대해서는 미묘한 의견 차를 보이기도 했다. 오키나와를 어떻게 여행해야 할까.

■ 오키나와만의 매력

ⓒ시사IN 윤무영가이드북 <프렌즈 오키나와>를 쓴 전명윤씨(왼쪽)는 “오키나와 여행의 미덕은 작은 섬에 모든 게 다 있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두 섬>을 펴낸 이명원씨(오른쪽)는 오키나와의 평화공원을 추천했다.

환타:한국에서 비행기로 고작 두 시간 거리에 아열대 산호초가 있는 여행지가 있다는 건 과거에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그런 점에서 오키나와는 한국인 여행자들에게는 ‘발견’됐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게다가 오키나와는 일본에서 치안이 안전한 지역이다. 여성 여행자가 밤늦도록 동네 이자카야(일본식 선술집) 순례를 해도 문제가 없다. 오키나와는 동남아와 일본이라는 두 지역의 장점을 갖고 있다. 동남아의 풍광을 즐기며 밤늦도록 차를 타고 해변의 여기저기를 헤매도 안전하다.

이명원:난 오키나와에 미군기지만 없다면 유토피아일 거라는 농담을 가끔 한다. 하지만 과거 오키나와는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1609년 규슈의 사쓰마 번이 류큐 왕국(오키나와의 옛 지명,
19세기 후반까지 오키나와는 독립된 나라였다)을 점령한 이래 오키나와는 수탈의 대상이 되었다. 생존이 불가능해진 오키나와인들은 남미로, 만주로 떠났다. 그럼에도 오키나와 사람들은 낙천적이다. 오키나와 말 중에 ‘난쿠루나이사’라는 말이 있다. ‘다 잘될 거야’ ‘어떻게든 될 거야’ 하는 뜻이다. 마치 제주 출신 소설가 현기영이 ‘눈물은 떨어져도 숟가락은 올라간다’고 말한 것과 비슷하다. 류큐 음악이 나오는 식당에 가면 나중에 함께 춤을 추는데 이들의 손동작이 우리나라 춤사위와 비슷하더라.

환타:오키나와에는 아직까지 ‘나 혼자 달려가지는 말아야지’ 하는 마인드가 있다. 물론 그게 외부인의 눈으로 보면 지나치게 낙천적이거나 세상에 대한 회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래도 저들은 왜 우리와 달리 살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품게 된다. 그것 자체가 여행 내내 흥미롭다.

■ 한쪽에선 휴양지, 한쪽에선 안보 관광지

이명원:한국에서는 휴양지로 알려졌지만 일본에서 오키나와의 이미지는 중·고생 수학여행지다. 일본 우파들이 보기에는 유일하게 지상전이 펼쳐졌던 안보 관광지다. 지금 한국인 여행 프로그램도 일본인이 만들어놓은 기존 코스를 따라가고 있다. 한국인 여행자를 위한 인문 여행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환타:과거에 한 매체에서 유명 인사와 함께 가는 오키나와 여행 프로그램을 내놨는데, 일정 전체가 비극의 역사만 살피도록 짜였더라. 괌이나 사이판도 역사적 맥락이 있는 섬이지만 한국인은 결국 휴양지로 선택한다.

이명원:오키나와에 한국인이 800명 정도 사는데 다들 정착한 지 얼마 안 됐다. 관광업 종사자도 오키나와 역사에 대해 잘 모른다. 제주 강정마을처럼 미군기지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헤노코 해상기지 같은 곳도 들러볼 만하다.

환타:내가 헤노코 기지를 가이드북에서 처음 소개했다(웃음). 나하 시 도마린 항에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도카시키 섬 같은 경우 아리랑 위령비라는 것이 있다.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폭로한 배봉기 할머니를 비롯한 오키나와 위안부를 기리는 비다. 배봉기 할머니가 오키나와에 있었다는 걸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런데 국내 어떤 가이드북에서는 일본인 잡단학살지는 소개하면서도 아리랑 위령비 소개는 빼놓았더라.

■ 거울처럼 한반도와 닮은 곳

이명원
:오키나와 공항에 내리자마자 한 소바집(메밀국숫집)에 들렀는데 김치가 나오더라. ‘어? 김치가 왜 나오지?’ 싶었다. 나중에 평화공원에 갔는데 일본인이 세운 조선인 위령탑이 있더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세운 위령탑도 있고. 대체 이곳에서 조선인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궁금해졌다.

환타:<두 섬>에도 나오지만 당시 오키나와 전쟁에서 조선인 1만명이 죽었다(당시 오키나와에는 강제로 끌려온 조선인 1만5000명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오키나와 남부에 있는 평화공원 위령비에 보면 대한민국(82명)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364명) 출신의 이름이 분리되어 새겨져 있다. 사망자에 비해 인원이 너무 적었다. 단순히 유족들이 비극적인 죽음을 기록하는 걸 반대했기 때문은 아니었던 것 같더라.

ⓒ전명윤 제공오키나와 평화공원에 자리한 ‘평화의 초석’ 모습.

이명원:자민당 계열 지사가 등장한 뒤 예산 지원을 끊어버렸다. 보수화된 오키나와 정부가 추가 발굴 작업을 지원하지 않았다. 시신을 수습할 때도 일본군은 유족과 시신의 DNA를 비교해서 발굴했지만, 조선인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았다. 보상 문제가 불거지기 때문에 아예 원천 배제했다. 그래서 대다수 조선인은 실종자가 되어 있다.

환타:오키나와 평화공원에 가면 미군에 쫓기던 사람들이 집단 자결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영상을 보면 사람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절벽에서 몸을 던진다. 마치 삼단뛰기 하듯 뛰어내린다. 수학여행 온 일본 학생들은 그걸 보고 운다. 당시 일본 군부가 미군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며 오키나와인들에게 집단 자결을 강요했다. 나이 든 오키나와 사람들을 만나보면 일본 본토에 대해 가지는 감정이 한국인의 그것보다 더 적대적인 사람을 만날 수 있는데, 그 장면을 보고 이해했다.

이명원:오키나와 평화공원의 딜레마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름이 다 섞여서 새겨졌다는 점이다. 모두가 희생자가 되면서 역사적 맥락이 휘발됐다. 원래 일본군이 오키나와 주민을 총으로 겨누는 조형물이 있었는데, 자민당 쪽에서 (총구 방향을) 바꾸도록 했다. 오키나와에 있던 조선인 문제는 아직 조사할 게 많이 남아 있다. 일본 정부 산하의 전쟁자료실에 오키나와에 대한 웬만한 자료가 다 있다. 당시 일본 군부가 오키나와에서 전쟁 증거를 제대로 소각하지 못했다. 우리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새로운 사실을 파헤칠 수 있다.

환타:나는 가이드북 작가치고는 역사적 배경에 분량을 많이 할애하는 편인데, 그런 점에서 기존 가이드북에는 아쉬움이 많았다. 어떤 가이드북은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은 소개하지 않으면서 일본 우파들이 좋아하는 히메유리 탑(일본 전쟁에 앞장선 학생을 기리는 탑)은 소개해놓았다.

■ 오키나와 음식은 왜 맛이 없을까

이명원
:실제로 함께 여행을 간 지인이 오키나와 소바를 먹으면서 불만이 가득하더라. 면의 질감이 일본 본토의 것과 다르니까. 덜 익은 면발의 맛이랄까. 역사적 맥락과 환경을 알고 오키나와 소바를 보면 달리 보인다. 일단 오키나와에서는 메밀이 나지 않는다. 오키나와 소바라는 것도 전후에 미군이 보급한 밀가루로 만든 것이다. 게다가 더워서 반죽을 해도 숙성이 잘되지 않는다.

환타:초밥도 그렇다. 오키나와에는 애초에 초밥 문화가 없었다. 사쓰마 번의 지배 이후로 쌀이 귀했고, 아열대라 초밥용 생선을 삭힐 수 있는 기후도 아니었다. 쌀이 귀하다 보니 좋은 청주로 좋은 식초를 만들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고. 와사비 재배도 불가능해서 오키나와 초밥집에는 겨자를 넣어주는 곳도 있다. 일본 본토인들도 오키나와 초밥을 보면 깜짝 놀란다고.

이명원:오키나와 현에서 자신들의 전통술인 아와모리를 한국인에게 팔고 싶어 하는데 잘 안 된다더라. 맛이 일본 사케와는 확 다르다. 아와모리가 처음 만들어진 게 중국에서 책봉사들이 내려올 때 대접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쌀을 태국(타이)에서 수입해서 조선과 중국식 양조 기술로 술을 만들었다고 한다. 한국 술과 친연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환타:아와모리 자체가 단맛이 잘 안 난다. 오키나와에서 나는 인디카종 쌀은 자포니카종에 비해 단맛이 부족하다. 사실 술로서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명원:여행은 타자를 만나는 것이다. 보통 여행자들은 ‘한국을 잊자’는 마음으로 해외를 다닌다. 현지 음식과 문화를 이해하면서 즐길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 같다. 한국인 40만명이 오키나와에 간다면 그중에 5% 정도는 다른 방식의 여행 모델을 따라가도 괜찮지 않을까.

환타:미야코 섬에 가면 고명을 면 아래에 까는 소바집이 있다. 과거 세금을 걷을 때 고명을 위에 올리면 잘 산다고 생각해서 세금을 많이 걷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역사를 알고 먹어도 맛이 없는 건 맛이 없더라(웃음).  

■ 추천하는 오키나와 여행지


이명원:먼저 평화공원을 추천한다. 단점은 주변에 식사를 할 만한 곳이 없다는 것이다. 대신 도시락을 들고 가면 된다. 나하 시에서 투어버스가 오전 9시에 출발한다. 하루 정도 날 잡아서 천천히 둘러보면 좋다. 나 같은 경우는 주변 섬에 들어가기 쉽게 나하 시 도마린 항 주변 숙소에 자주 묵는다. 항구 주위에 오키나와에서 죽은 외국인을 안치한 ‘외인묘지’가 있는데 이곳에 갖가지 사연이 숨어 있다. 가령 오키나와 여성을 겁탈하려다 주민들에게 쫓겨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 외국인 묘지가 있다. 아침엔 항구 시장에서 참치 해체 장면도 볼 수 있다. 300엔만 내면 근사한 회덮밥이나 초밥도 먹을 수 있다. 과거 류큐 왕국의 수도였던 우라소에 성도 추천한다. 이곳은 오키나와 역사의 기원이 된 장소다. 이곳에서 고려시대 기와도 다량 발견됐다. 우라소에 성에서 바라보는 나하 시 풍경은 슈리 성에서 본 그것 못지않다.

환타:오키나와 여행의 미덕은 작은 섬에 모든 게 다 있다는 점이다. 아름다운 해변에서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고, 멋진 트레킹 코스가 있는 산도 있다. ‘진지한 여행자’들을 위한 사연이 깃든 역사까지. 이유마치 수산시장은 나하 시민의 어물전이다. 물론 관광객도 많다. 이른 아침 초밥 도시락을 판매하고, 오전 10시쯤부터 해체하고 남은 참치 부속물로 바비큐를 해주는데 끝내준다(500엔). 사키마 미술관은 ‘오키나와 전쟁도’라는 그림 하나만으로도 가볼 만한 곳이다. 미군기지 사이, 아슬아슬하게 남은 공터에 조성되어 있다. 미술관 옥상에 오르면 미군기지도 조망할 수 있다. 여러모로 오키나와의 현재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다. 비세마을 후쿠기 가로수길은 오키나와 본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잘 보존된 오키나와 전통 마을이다. 인공 방풍림인 후쿠기 나무 사이로 끝없이 돌담이 이어져 있다. 드문드문 샛길 사이로 보이는 푸르른 바다를 보면 마음이 탁 트인다. 세이화 우타키는 오키나와 전통 신앙의 성지다. 류큐 왕국 시절에는 왕의 누이가 성소의 무녀들을 대표했다고 한다. 소박하기 짝이 없는 신앙이지만, 압도적인 주변 자연환경으로 인해 없던 경외감도 절로 생겨난다. 고우리 섬은 오키나와 북부 나키진에 있는 작은 섬이다. 오키나와판 아담과 이브 전설이 있는 데다 하트 모양의 바위가 있는 ‘사랑의 섬’이다. 섬으로 연결되는 다리는 오키나와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 중 하나다. 여름철에 방문하면 자연산 성게로 만든 덮밥을 맛볼 수 있다.

■ 오키나와 여행 붐은 계속될까


이명원:막 시작됐다. 앞으로 10년 동안은 활황일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오키나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여행 프로그램이 부족하다.

환타:오키나와를 대체할 수 있는 곳이 없다. 항공시간, 안전, 휴양 이 세 가지가 매력적이다. 중국이 아직 국제면허 제도에 가입하지 않아서 중국인도 적다.

이명원:북부 모토부 지역에 조선인이 매장돼 있는 게 확실시되는 곳이 있다. 바다에서 운반 작업하다가 미군 폭격에 의해 사망한 이들이다. 10월 말쯤 일본 시민단체와 한국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굴 작업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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