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쇄 매체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 신한슬 기자
  • 호수 525
  • 승인 2017.10.16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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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언론 <프로퍼블리카>의 스티븐 엥겔버그 편집국장은 저널리즘에서 인터넷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고 했다. 탐사보도를 비롯한 모든 종류의 저널리즘에 유용하다고 본다.

ⓒ시사IN 신선영스티븐 엥겔버그
<프로퍼블리카> 편집국장.

프로퍼블리카(ProPublica)

설립 : 2008년
규모 : 약 100명(편집국 50명)
출판 방식 : 웹사이트, 앱
독자 : 홈페이지 월간 순방문자 220만명
 해외 독자 비율 15%
재정 : 후원금 운영
       2016년 후원금 총액 1723만 달러
      2016년 후원자 총 2만6000명
수상 : 2010 퓰리처상 탐사보도 부문
       2011 퓰리처상 국내보도 부문
       2013 피보디상
       2015 에미상 최고의 탐사보도
       롱폼 부문
       에미상 최고의 리서치 부문
2016 퓰리처상 해설보도 부문
2017 퓰리처상 공공보도 부문
      피보디상 라디오/
      팟캐스트 부문
      피보디상 웹 부문
      외 350개 이상


미국 뉴욕 맨해튼 6번가 155번지에는 1928년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물이 있다. 13층에 가면 <프로퍼블리카> 로고와 마주하게 된다. 흰 벽에 푸른 돋보기로 ‘공공(Public)’의 머리글자 ‘P’를 확대한 로고가 걸려 있다.

사무실에는 트로피 수십 개가 놓여 있다. 2008년 설립된 이후, 지난 9년간 <프로퍼블리카>가 걸어온 길을 증명한다. <프로퍼블리카>는 2010년 온라인 언론사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데 이어 퓰리처상만 4개, 에미상 2개, 방송·온라인 매체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보디상 3개를 수상했다. 이 외에도 탐사보도, 롱폼 저널리즘(Long-form Journalism:1000자 이상의 긴 기사), 데이터 저널리즘, 인터넷 보도 부문에서 각종 언론 관련 상을 휩쓸고 있다.

ⓒ시사IN 신선영인터넷 매체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프로퍼블리카>는 여러 언론상을 휩쓸었다.

단기간에 명성을 쌓은 <프로퍼블리카>는 놀랍게도 전혀 수익을 내지 않는, 100% 후원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매체이다. 처음 3년간은 유일한 후원자인 금융가 허버트 샌들러·매리언 샌들러 부부한테 연간 1000만 달러(약 113억4500만원)를 후원받았다. 이후 후원자가 늘어나, 2017년 현재 샌들러 부부의 후원금이 전체 후원금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로 줄었다.

<시사IN>은 탐사보도의 강자로 자리 잡은 <프로퍼블리카>의 스티븐 엥겔버그 편집국장을 만났다. 엥겔버그 국장은 <뉴욕타임스>에서 18년간 일하며 1995년 퓰리처상을 받은 탐사보도 기자 겸 편집자로, 2008년 <프로퍼블리카>가 만들어질 때 편집팀장(Managing Editor)으로 합류했다. 그는 2013년부터 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2018년이면 10주년을 맞이한다. 그동안 <프로퍼블리카>가 이룩한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인가?

미국 언론계에서 인정받았고, 각종 상도 받았다. <프로퍼블리카>의 창립자가 말했듯이, 우리의 목표는 상을 받는 게 아니다. <프로퍼블리카>의 성과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기사를 썼다는 것이다. 텍사스에 사는 한 남자가 부당하게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을 다룬 기사 덕분에 그는 감옥에서 석방됐다. 캘리포니아 주에서 간호사들을 감독하는 문제를 다룬 연재 기사로 간호위원회 위원들이 전원 해고됐고, 새로운 규정이 도입됐다. 제약사들이 의사들의 연설문을 써주고, 의사들은 그 대신 제약사의 약을 처방해주는 관행을 폭로하는 기사도 썼다. 이 외에도 변화를 이끌어낸 많은 기사들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런 기사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궁금하다.

모든 것은 기자들로부터 시작된다. <프로퍼블리카>는 다른 누구도 하지 않을 이야기를 취재한다. 우리는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가 이미 쓴 기사를 조금 더 잘 쓰거나 약간 다르게 바꿔서 쓸 생각이 없다. 기획 단계에서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낸다. 한 기사를 쓸 때 보통 여러 달이 걸린다. 기자들이 매우 깊이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취재 단계부터 디자인팀과 소셜 미디어팀이 합류해 협업을 한다. 디자인은 온라인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사람들이 우리 기사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 최근에는 동영상과 웹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인력을 추가로 고용했다. 동영상을 만드는 내부 팀을 갖춘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는 외부 전문가와 협력해서 동영상을 만들었다. 앞으로 동영상은 우리 기사를 효과적으로 알리는 데 더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소셜 미디어팀은 어떤 구실을 하나?

소셜 미디어는 온라인 매체에 매우 중요하다. 소셜 미디어로 기사를 퍼뜨리기도 하고, 소셜 미디어를 취재에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지난 9년간 우리가 알아낸 아주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주요 취재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커뮤니티 개발팀’을 따로 구성했다. SNS를 통해 우리가 취재하는 영역의 사람들을 찾고, 연락하고, 조직해서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이 방식으로 우리는 많은 성공을 거뒀다.

지난 10여 년간 <프로퍼블리카>가 겪은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나?

계속해서 넘어야 하는 산이 있다. 기사의 퀄리티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탐사보도는 정말 어렵다. 다른 언론사에서는 탐사보도를 시도하다가 잘 안 되면 “관둬. 인물 기사 좀 쓰고, 특집 기사 좀 쓰자”라고 한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탐사보도를 하다가 안 되면, 그냥 못하는 거다. 그게 가장 큰 난관이다.

재정적으로는 어떤가? 계속 후원자가 늘었나?


그렇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로 소액 기부자들이 크게 늘었다. 10달러, 20달러, 100달러씩 매달 기부하겠다는 사람들이 늘었다. <프로퍼블리카>가 처음 시작했을 때는 첫 기부자이자 창립자인 허버트 샌들러·매리언 샌들러 부부의 기부금에 100% 의지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좋은 기사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지금은 여러 고액 기부자와 수천명의 소액 기부자 덕분에 창립자 부부의 기부금 비율이 전체의 20%에 불과하다.

<프로퍼블리카>는 기부자들이 원하는 기사를 쓰려고 노력하는가?


<시사IN> 같은 잡지도 광고주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기부자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논쟁적인 주제를 취재하는 독립심과 용기다. 어떤 고액 기부자에게도 우리가 작성하고 있는 기사에 대해 미리 말해주지 않는다. ‘돈이 어디서 오는가’와 ‘저널리즘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철저히 구분하려 한다.

그렇다면 편집국장이 경영 문제에 전혀 개입하지 않는가?

나는 편집국장 겸 공동 CEO다. 우리는 편집국과 모금의 분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는 편집국 사람들 중 유일하게 모금에 관여한다. 그렇다고 협상에 직접 나서는 건 아니고, 잠재적인 기부자들을 만나 우리가 하는 일을 설명한다. 또 다른 공동 CEO인 딕 토펠이 우리 회사의 최고경영자다. 모금, 기부자와의 관계, 재단 관련 업무는 그의 소관이다. 기자들과 편집자는 기부자들을 절대 만나지 않는다.

ⓒ시사IN 신선영<프로퍼블리카>의 기자들과 편집자는 기부자들과 절대 만나지 않는다. 위는 <프로퍼블리카>의 편집국 모습.

앞으로도 100% 후원 모델을 유지할 계획인가?

사실 나는 구독 모델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좀 더 지속성이 있다고 본다. <시사IN>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10년 전만 해도 세상에 없었던 매체다. 당시로서는 기부 모델이 최선이었다. 미래에는 구독과 기부 혼합 모델이나, 구독 중심 모델로 변화할 가능성도 있다.  

10년 전 <프로퍼블리카> 창립 당시의 저널리즘 환경을 돌아볼 때 지금과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처음 <프로퍼블리카>에 왔을 때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인터넷이다. 나는 여기 오기 전까지는 프린트 미디어(종이 신문)에서만 일했다. 2008년만 해도 신문사마다 웹사이트가 있었지만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완전히 새로워졌다. 우리 모두 웃으면서 “우리는 탐사보도 전문 매체인데, 140글자로 할 수 있는 게 있겠나?”라고 말하곤 했다. 그때는 트위터가 사람들이 긴 탐사보도 기사를 읽도록 하는 훌륭한 수단이라는 걸 몰랐다. 두 번째는 데이터 저널리즘의 진화다. <프로퍼블리카>를 시작할 때만 해도 데이터 저널리즘이 엄청나게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초창기 멤버 중 데이터 저널리스트는 단 한 명이었다. 이제는 5~6명이 여러 방면에서 데이터 저널리즘을 전담한다. 정말 큰 변화다.

ⓒ시사IN 신선영<프로퍼블리카>에서는 데이터 저널리스트 5~6명이 활동하고 있다.

<프로퍼블리카>는 지면 없이 인터넷에만 존재하지만, 온라인 매체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인터넷(디지털)이 저널리즘의 본래 임무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는가, 장애물이 됐다고 생각하는가?

솔직히 말하자면 저널리즘에서 인터넷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우린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은 언론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미국의 신문사를 보면,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광고주에게서 1달러의 수입을 벌었다고 치자. 그 가운데 취재가 아닌 다른 데에 쓰이는 비율이 85센트 정도 된다. 종이를 구매하고, 인쇄소에서 찍고, 트럭으로 배송하는 데 쓴다. <프로퍼블리카>는 우리가 모금한 금액의 85~90%를 취재에 쓴다. 인터넷은 비용을 엄청나게 줄여주었다. 인터넷은 또한 탐사보도를 비롯한 모든 종류의 저널리즘에 유용하다. 물론 인터넷에서도 광고 상황은 좋지 않다. 거의 모든 광고 수익이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플랫폼 사업자에게 돌아간다. 그럼에도 창의적인 면에서는 지금보다 나았던 적이 없다. 이제는 글과 사진 말고도 움직이는 이미지, 음향 등이 결합한 스토리텔링 기사를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나는 절대 ‘프린트 미디어’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단지 그 시절의 수익이 그립다. 그건 정말 좋았다(웃음).

프린트 미디어(인쇄 매체)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 느낌에는 프린트 미디어의 규모가 계속 줄어들 것 같다. 음악업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한다. 레코드판을 즐겨 듣는 사람도 있지만 그 비율은 아주 적다. 레코드판 마니아처럼 몇몇 사람들은 인쇄된 잡지를 보기 위해 지갑을 열 것이다. 그게 대다수일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지금부터 50년 후에 사람들이 읽는 프린트 미디어는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미국의 언론 자유에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나?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 매우 이상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미국 역사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언론을 향한 막말이 대통령 입에서 나오고 있다. 언론을 공공의 적으로 묘사하기도 하고, 스티브 배넌(전 백악관 수석 전략가)은 언론을 향해 “이제 ‘닥쳐야’ 할 때”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동안은 “우리는 닥치지 않는다”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다니기도 했다(웃음). 우리 직원들은 트럼프 지지자들로부터 온라인에서 공격(악플 피해)을 당하기도 했다.

일부 트럼프 지지자들의 과격한 행동으로 언론이 위축됐다고 보나?

사람들이 겁먹었다고 보진 않는다. 오히려 미국에서 전통적으로 누려왔던 언론의 자유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지금처럼 백악관을 향한 탐사보도가 많았던 적이 없다. 러시아 게이트 의혹 등 그만큼 취재해야 할 것이 많다. 물론 누가 대통령이든 상관없이, 오바마 때도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항상 그 속을 들춰볼 것이다. 그런 면에서 트럼프 당선은 기자들을 겁주기보다 오히려 용기를 북돋아줬다. 지금은 정말 최고의 시간이자, 최악의 시간이다.

<시사IN>과 <프로퍼블리카>가 10년 후에도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언론이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독자에게 필요한 보도를 하는 것이다. 언론이 성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다. 놀랍고 특이하고 특별한 것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이 저널리즘의 미래다. 저널리즘의 미래는 탐사보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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