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죽음은 우리 세대의 패배”
  • 차형석·이오성 기자
  • 호수 56
  • 승인 2008.10.07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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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최진실의 사망 소식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녀는 한국의 대표적 문화 아이콘이었다. ‘국민 요정’에서 ‘줌마렐라’ 신드롬까지, 여러 이미지와 코드가 중첩된 그녀의 연기 이력 20년을 되짚는다.
   
ⓒ뉴시스
가히 ‘최진실 쇼크’라고 할 만하다. 그녀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몇몇 인기 블로그에 ‘최진실’이라는 포스팅이 동시에 올라왔다. 30대 초반의 대중음악 평론가는 전설적인 록그룹 니르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자살했을 때보다 더 놀랐다고 썼다. 한 영화 담당 여기자는 대중이 ‘바닥에서 시작해 중산층에 성공적으로 편입한 표본’으로 최진실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충격이 컸다고 썼다. 그날 <시사IN>의 한 여기자는 여성계 모임에 갔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이혼 후 최진실의 삶은 우리 사회에서 이혼을 한 여성들의 신산스러운 삶을 보여준다. 가정 폭력에서 양육 문제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여성들이 자기의 감정을 이입하는 것 같다.” 그렇게 대중은 최진실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기 욕망을 투영했다. 다양한 각도로.

최진실은 1980~1990년대 한국 대중문화의 대표 아이콘이었다. 출발부터 경로가 달랐다. 그녀는 CF를 통해 스타 탄생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첫 번째 사례였다. 1980년대 말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라는 카피는 가전 시장의 판도를 갈랐다. 그 즈음 서울 올림픽이 끝난 뒤 소비문화가 팽창할 시기였다. 세탁기·비디오·전자레인지 등 생활가전 제품이 대중화하던 시기, CF 스타 최진실의 등장은 한국에서 ‘소비문화’가 대중문화의 중요 포인트로 등장한 것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가 “만약 다른 미녀 탤런트가 ‘남편 퇴근시간은 여자 하기 나름이죠’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그건 최진실씨가 아니고선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만용이 될 것이다”라고 평할 만큼 그녀의 등장은 문화적 충격이었다.

1992년 그녀가 출연한 드라마 <질투>는 이후 10여 년간 한국 드라마의 방향을 선도했다. 도시를 배경으로 청춘남녀의 사랑을 속도감 있게 보여주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는 트렌디 드라마 시대를 연 것이다. 그 유명한 ‘360도 회전 촬영’ 장면은 이후 여러 코미디 프로그램이 패러디한 장면이었다. 1992년 연예·방송 전문지 <TV 저널>이 올해의 연기자로 최진실을, 올해의 가수로 서태지와 아이들을 뽑은 것은 1990년대에 전개될 대중문화의 흐름을 예고한 일이었다.

당시 문화평론가 강영희씨는 최진실의 매력을 특유의 ‘눈밑 주머니’에서 찾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귀여우면서도 풍상을 겪은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지하에서 고층까지 신분 상승의 엘리베이터를 탄 것 같은 스타가 갖는 귀엽고 친근한 이미지는, 나도 언젠가 저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당시 ‘대중의 일상성과 맞닿은 톱스타’였다.
그래서일까. 1968년생으로 최진실과 동갑내기인 이택광 교수(경희대·영미문학)는 “그녀의 죽음이 마치 우리 세대의 패배처럼 느껴진다”라고 말한다. “마치 존 레넌이 죽은 뒤, 1960년대 히피와 리버럴리스트들이 느낀 패닉 상태 같은 걸 느낀다. 수제비 먹으며 자라서 알뜰살뜰 저축왕까지 된 성공한 연예인의 자살이 곧 우리 세대 생활방식의 실패로 여겨지는 것이다. 나만 그렇게 느낀다고 생각했는데 내 주변의 1968년생이 다들 그렇게 느끼고 있더라.”

‘대중의 일상성과 맞닿은 톱스타’ 최진실

하지만 브라운관 밖 그녀의 삶엔 스포트라이트만큼이나 그늘도 짙었다. 그녀는 지금 연예가에서 일상화된 ‘매니지먼트 체계’ 안에서 성장한 첫 번째 사례였다. 매니저였던 고 배병수씨는 1994년 한 시사지와 했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실이를 처음 만나서 했던 얘기가 이거예요. 첫째, 압구정동에 가지 마라, 디스코테크 가지 마라. 둘째, 남자를 만나더라도 한 남자만 사귀어라.” 그해 말, 배병수씨가 최진실의 로드 매니저에게 살해되면서 그녀는 각종 루머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그건 고통의 시작일 뿐이었다.
2000년 야구 스타 조성민과의 화려한 결혼으로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은 최진실은 4년 뒤 결혼보다 더 떠들썩한 이혼과 가정 폭력 등으로 고통스러운 개인사의 정점을 맞는다. 이혼 직전에 출연한 드라마 <장미의 전쟁>은 <질투>를 함께했던 최수종과 함께 ‘투 톱’을 이루며 출연했으나 시청률이 시원치 않았다. ‘최진실 시대’도 이렇게 저무나 싶었다.  

하지만 2005년 최진실은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했다. <장밋빛 인생>은 최진실 연기의 2막을 알리는 작품이었다. 최진실은 남편에게 버림받고 암에 걸리는 아줌마 ‘맹순이’가 되었다. 1990년대 귀엽고 애교스러운 신데렐라 같던 이미지, 똑 소리 나는 며느리 정도의 이미지를 보인 최진실은 이 작품 이후 가족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해나가는 ‘억척 아줌마’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으로 최진실은 다시 바닥을 치고 올라왔다. 브라운관 밖의 삶과 브라운관 안의 연기가 묘하게 오버랩되면서 기혼 여성과 시청자는 최진실에게 뜨겁게 감정이입했다.

그리고 2007년 ‘아줌마’와 ‘신데렐라’를 합한 ‘줌마렐라’라는 합성어를 낳게 한 히트작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이 있었다. ‘아줌마를 위한 트렌디 드라마’였다. 돈 한 푼에 벌벌 떨며 일상에 찌든 파마 머리 아줌마가 남편과 결별하고 첫사랑인 당대 최고의 스타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는 ‘주부들의 판타지’를 자극했다. CF로 연예계에서 화려하게 데뷔한 최진실이 이 드라마에서 CF 단역 아르바이트에 나서는 장면은 굴곡 많은 그녀의 삶을 의미심장하게 함축했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그녀 생애 마지막 드라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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