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 오는 환자들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처음에 문제가 된 생리대를 몇 년간 썼는지를 이야기하던 분노와 걱정에서, 어차피 패드·탐폰 다 똑같다며 체념하고 생리를 안 하는 방법을 묻는 환자가 늘었다. 환경호르몬은 생리대만이 아니라 살충제 달걀에도, 햄버거에도 있다고 이야기하면 다시 낯빛이 어두워진다. 그러는 사이 생리대 문제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허가와 위험 관리 의무를 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문제 제기를 시작한 여성환경연대를 비판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유해물질 생리대 문제를 공론화한 시민단체와 특정 기업의 유착 의혹을 국감에서 다루겠다고 나섰다. 유난 떨지 말라는 여성혐오 목소리도 높아졌다.

아직 역학조사와 위험물질 분석이 진행 중이지만, 생리대에서 대표적으로 우려되는 것은 피부 점막 과민반응과 내분비계 교란, 발암 여부이다. 이 중 환경호르몬이라고 통칭하는 외인성 내분비계 교란물질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산업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화학물질이 체내에 흡수되어 쌓이면 당뇨나 갑상선 질환, 생식 계통 질환 등의 내분비계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대표적으로 다이옥신, 프탈레이트, 비스페놀 등이 있다. 생리대에서는 목화솜에 들어가는 제초제, 접착물질, 방수제 등을 의심해볼 수 있다. 환경호르몬이 체내에 축적되고 배설되는 과정에서 생물학적 기전 차이와, 태아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잠재적 위험성 때문에 여성의 생식건강에 더 위협적이다. 지난 10년 사이 성조숙증으로 진단받은 어린이 환자가 12배 늘었고, 20대 여성의 불임도 급증했다. 여성의 전 생애 주기에 걸쳐 자궁근종, 자궁내막증, 다낭성난소증후군, 유방암 등 생식기계 질환도 증가하고 있다.

ⓒ정켈 그림

유해물질로 인한 피해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지 않다. 생물학적 약자와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주요 피해자가 임산부나 아동이었듯, 유해물질에 더 노출되는 이들은 보호 장구를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이다. 소득이 적을수록 많은 식품첨가물이 함유되어 유통기한이 길고 저렴한 음식을 먹는다. 바빠서 천 생리대는 못 쓰고, 비싸서 유기농 생리대 또한 못 쓰는 여성이 대량으로 할인 판매하는 ‘유해물질 생리대’를 쓴다. 그마저도 어려운 여학생들은 ‘깔창 생리대’를 쓴다.

건강과 안전은 개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규제 완화와 시장 활력보다 감시와 연구가 필요하다. 이미 위험성이 알려진 성분에 대해서는 표시제를, 밝혀지지 않은 성분에 대해서는 더 많은 임상실험 이후에 판매를 허용하는 제도적인 규제가 필요하다. 개인적인 해결책을 묻는 환자들이 많은데, 운동해서 땀 배출을 늘리고,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며, 향이 있는 생리대를 피하라는 일반론은 생리 불순이 있어도 병원에 오지 못하는 현실 앞에 공허한 처방이다.

합리적 의심을 음모론자라고 몰아붙이다니…

과거 일산화탄소 등 유해가스 측정 장치가 없었을 때, 광부들은 카나리아를 갱도에 데리고 들어갔다. 카나리아가 노래를 멈추면 광부들은 서둘러 갱도를 빠져나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카나리아의 죽음으로 유독가스를 감지할 수 있었기에, 위험의 전조 증상을 ‘탄광의 카나리아’라고 부른다. 카나리아의 울음을 틀어막는다고 위험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적폐를 지적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시민단체들이 우리에게 위험을 경고하는 카나리아이다. 다 같이 탄광을 탈출하자는 경고이고 외침이다. 광우병, 의료민영화, 가습기 살균제까지 우리는 보지 않았는가. 합리적 의심과 보수적 사전 예방의 법칙을 말하는 이들을 음모론자라고 몰아붙여온 그들이야말로 적폐 세력이다.

기자명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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