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년이 실종되었다. 그는 인권운동가 산티아고 말도나도(28). 지난 8월1일 파타고니아 남부 지역인 추부트 주에는 도로를 점거한 채 원주민 권리 보호를 촉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당시 말도나도를 비롯해 다른 인권운동가와 마푸체 원주민들이 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이탈리아 의류업체 베네통 소유의 대지에서 쫓겨난 원주민의 권리를 보호해달라고 요구해왔다.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흩어져 살고 있는 마푸체족은 토지 문제로 정부·기업과 갈등이 깊었다. 이날 시위대는 당국에 체포된 마푸체족 지도자인 파군도 존스 우알라의 석방을 요구했다. 경찰은 시위대를 강제 해산했고, 이때 말도나도가 사라졌다.

ⓒREUTERS한 시민이 말도나도 실종에 대한 진상 조사를 요구하며 그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다.

그의 가족들은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말도나도의 부인 안드레아 안티코 씨는 “정부 당국이 답변을 해야 한다. 정부는 처음부터 내 남편이 길을 잃었다고 봤다. 남편은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사라졌다”라고 주장했다. 그사이, 말도나도가 헌병대 차에 강제로 태워지는 현장을 보았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이 나왔다. 국내외 인권단체들은 아르헨티나 정부가 진상 조사에 적극 나서라고 촉구했다.

말도나도의 실종은 아르헨티나 국민의 트라우마를 건드렸다. 바로 ‘더러운 전쟁(Guerra Sucia)’이라는 악몽이다. 1976년 쿠데타로 집권한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군사정권은 야당 정치인과 학자, 학생, 노조원 등을 비밀리에 납치해 고문·살해했다. ‘더러운 전쟁’으로 불린 군사정권의 이 같은 탄압으로 3만명에 달하는 시민이 숨지거나 실종되었다. 당시 실종자를 찾기 위해 가족들은 교도소와 경찰서를 돌아다녔다.

시간이 흘렀지만 실종자 가족들의 아픔은 현재진행형이다. 군사정권의 오랜 폐단을 청산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지난 5월 아르헨티나 상원의원 56명은 만장일치로 ‘반인권 범죄자의 형기 단축 금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에는 지난 군사정권 시절 살인과 납치, 고문 같은 반인권 범죄로 형이 확정돼 수감 중인 재소자의 조기 석방을 금지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상원 표결에 앞서 하원도 찬성 211표 대 반대 1표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법무부의 한 관리는 “시간이 지났어도 그 범죄(더러운 전쟁)에 대한 심판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라고 말했다.

40년간 ‘5월 광장’에 나선 어머니들

지금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카사 로사다 대통령궁 앞 ‘5월 광장’에는 목요일마다 하얀 스카프를 쓰고 서 있는 할머니들이 있다. 1977년 4월30일, 군사정권에 자식을 납치당한 어머니 14명이 머리에 하얀 스카프를 두르고 대통령궁 앞 광장에 나타났다. 하얀 스카프는 실종된 자녀들을 감쌌던 기저귀 천이었다. 어머니들은 광장을 조용히 돌기만 했다. 구호도 외치지 않았다.

그 후 40년이 지났다. 자녀들이 실종될 당시에는 젊었던 어머니들이 이제 할머니가 되었다. ‘5월 광장 어머니회’를 설립한 에베 데 보나피니 여사(88)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군사정권 시절 두 아들과 며느리가 납치되어 살해당한 뒤 민주 투사가 되었다. 5월 광장 어머니회 회장으로서 단체를 이끌며, 인권을 위해 여전히 투쟁하고 있다.

ⓒAP Photo4월30일 ‘5월 광장 어머니회’ 회원들이 40주년을 맞아 기념 행진을 하고 있다. 맨 왼쪽이 에베 데 보나피니 회장이다.

5월 광장에서 만난 타니아 씨(52·가명)는 어머니가 숨을 거둔 뒤에도 대를 이어 집회에 참석한다. 그녀는 “당시 대학생이었던 오빠가 실종된 뒤 어머니의 시간은 멈췄다. 슬픔에 가슴을 두드리던 모습, 식사도 안 하고 울던 모습, 오빠 책가방을 안고 숨도 못 쉬던 그 고통스러운 모습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작년 여름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이제 내가 집회에 참석한다. 어머니가 느꼈던 고통과 똑같은 통증이 내 가슴을 누르고 있다”라고 말했다. 5월 광장의 어머니들은 하나같이 “아직 이 집회를 끝낼 때가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2015년 집권한 중도 우파 출신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이 ‘더러운 전쟁’의 희생자 수에 의문을 제기하자 어머니들은 역사 바로 세우기 싸움에 또다시 나섰다. 마크리 대통령은 더러운 전쟁으로 희생당했다고 알려진 3만명은 부풀려진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5월 광장 어머니회는 마크리 정부가 희생자 규모를 줄이려 한다며 군사정권 시절의 기록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5월 광장에서 만난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의 정치학과 학생 페르난도 씨(22)는 “내 부모가 안고 있는 상처 중의 하나가 ‘실종’이다. 군사정권 시절 실종된 가족을 아직도 찾지 못한 이들이 많다. 어딘가 암매장되었다고 생각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 와중에 말도나도 실종이 일으킨 파장은 컸다. 시민들은 먼저 SNS로 ‘산티아고 말도나도는 어디 있나?’라는 문구를 올리기 시작했다. 5월 광장에서는 말도나도의 생존 여부를 공개하라는 시위가 벌어졌다. 국방장관은 시민들의 공분에 기름을 부었다. 실종 8일째에 해명에 나선 파트리시아 불리치 국방장관은 “시위대는 모두 복면을 썼기 때문에 산티아고 말도나도가 그곳에 있었는지 확실치 않다”라고 말했다.

말도나도의 실종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한 국방장관의 태도가 시민들을 더욱 자극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경찰은 말도나도를 구금하지 않았다고 밝히는가 하면 그의 행방과 관련한 정보를 제공한 이에게 3만 달러에 이르는 포상금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경찰 발표를 신뢰하지 않는다. 아르헨티나에서 ‘산티아고 말도나도는 어디 있는가’는 SNS나 집회 현장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구호가 되었다.

기자명 부에노스아이레스·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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