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 사학의 모델 상지대가 보여줄 것”
  • 변진경 기자
  • 호수 524
  • 승인 2017.10.02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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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 비리 1번지’로 꼽히던 상지대에서 정대화 교수는 재단에 맞서 학생들과 함께 싸우다 ‘파면’당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새 임시이사를 선임하면서 총장 직무대행이 되었다.

9월19일 김문기 전 상지대 이사장(위)이 총장실에 무단으로 들어와 총장석에 3시간 동안 앉아 있었다.
강원도 원주시 상지대학교는 ‘사학 비리 1번지’이자 이를 척결해낸 사학 민주화 투쟁의 상징이다. 역사가 길다. 1955년 원흥묵 설립자가 강원도 최초의 사립대학으로 세운 상지대를 1974년 가구점 사장이던 김문기씨(86)가 접수했다. 횡령, 부정입학, 부동산 투기 등 비리 종합 백화점으로 학교를 운영하던 김씨는 1993년 퇴출된다.

20년 후 그가 다시 돌아왔다. 2007년 “설립자가 최초의 이사들을 정하고 그들이 후임 이사를 선임하는 것이 학교법인의 설립 목적 영속성을 갖게 한다”라며 옛 재단 측 손을 들어준, 이른바 대법원의 ‘김황식 판결’로 발판을 마련했다. 2010년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가 준 이사회 과반수 추천권으로 도움닫기한 뒤, 2014년 상지대 총장으로 착지했다. 당시 학교에 칼바람이 불었다. 교수와 학생들이 줄줄이 징계당하거나 내쫓겼다. 단식하고 삭발하고 도보 순례를 하고 수업 거부를 해도 돌아온 옛 재단은 꿈쩍하지 않았다.

반전은 2013년 헌법재판소가 사학법의 정상화 관련 조항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시작되었다. 헌재는 김황식 판결과 달리 “사학의 건립 목적은 설립자에 의해 임명되는 이사진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관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며, 사학 정상화가 임시이사 선임 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옛 재단이 복귀한 결정적 계기였던 2010년 이사 선임 과정에서 개방이사를 선임하지 않는 등 위법했다는 판결을 내렸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8월4일 상지대에 새 임시이사 8명을 선임했다. 새 임시이사진은 김문기 총장 선임을 취소하는 한편 그와 싸웠던 교수와 학생들의 징계·파면을 거둬들였다. 지금 상지대는 한창 제자리를 찾는 중이다.

2015년 1월 겨울 상지대를 취재한 사진기자는 새하얗게 눈이 덮여 “잔인하게 아름다웠던” 치악산 능선을 기억했다. 당시 그 능선 아래 펼쳐진 상지대에서는 돌아온 김씨의 숙청 작업이 한창이었다. 김씨 측과 싸우다 연구실 폐쇄 통보까지 받은 정대화 교수(61)는 당시 ‘파면’ 교수 신분이었다. 전기와 난방이 끊긴 연구실에서 농성을 벌이던 파면 교수는 2년6개월 뒤인 9월20일, 본관 2층 총장실에 앉아 있었다. 정 교수는 새 임시이사진 결정에 따라 지난 8월21일부터 총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총장실에서 보이는 치악산 능선은 이제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산 아래 정문에는 “여기는 대학 민주화의 성지 상지대학교입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펄럭였다.

ⓒ시사IN 조남진정대화 상지대 총장 직무대행은 사학 비리의 대명사였던 상지대를 공영형 사립대학의 모델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총장실 문이 활짝 열려 있다.

학생들에게 그랬다. 언제든 총장실에 발로 차고 들어오라고. ‘발로 차는 건 좀 그렇고 노크하고 오겠습니다’ 하더라(웃음). 비서실에다가 아예 문을 열어놓으라고 했다. 김문기씨가 와도 문 안 닫는다. 실제 며칠 전에도 들어와서 여기 앉아 있다 갔다(9월15일과 9월19일 김씨는 20여 명 일행을 대동하고 상지대를 찾았다. 9월19일에는 정대화 직무대행이 업무를 보고 있는 가운데 총장실로 들어와 총장석에 앉아 있다가 3시간 후 돌아갔다).

김문기씨가 물러나고 지난달에는 정부 재정지원 제한에서도 벗어났다.

학생들이 정말 좋아한다. 그간 ‘국가장학금 2유형’을 못 받았고 학자금 대출도 반밖에 안 됐다. 상지대 오는 학생들 중에 가난한 집 친구들이 많다. 면담해보면 학생들 휴학하는 이유가 다 가정사와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재정지원 제한에서 풀린 것 자체도 좋지만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 상태, 이제 우리 학교도 정상이 되었다는 정신적 만족감도 크더라.

오는 길에 만난 학생들 표정이 밝아 보였다.

아까도 총학생회장한테 전화가 왔다. “총장님 뭐 하세요? 바쁘세요?”라며 딱 5분만 시간을 내달라고 하더라. 상지체전이라고 체육대회를 하고 있는데, 총장배 족구대회를 하겠으니 와서 상품만 걸어주고 가라더라.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 직원 노동조합, 교수협의회 이렇게 4팀이 겨뤘다. 1등 팀에게 한우를 사달라기에 ‘지금 학교 사정상 한우는 안 된다. 삼겹살로 하자’고 했다(웃음). 학생들이 대학본부를 만나는 게 스스럼없고, 또 내가 스스럼없이 대하고. 우리를 괴롭히던 총장, 우리를 징계하던 이사회, 문 닫힌 총장실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는 본부, 대학, 총장 이런 분위기가 빠르게 만들어지고 있다.

총장 직무대행 자리에 와서 확인한 학교 재정 상태는 어땠나?

첫마디가 ‘망했다’였다. 상지대가 폐허가 됐다. 어렴풋이 알긴 했는데, 막상 와보니 금고는 비어 있고, 교육은 엉망이고, 연구 시스템은 망가져 있고, 자기들끼리 나눠먹고 자화자찬 별 잔치를 다 했다. 모든 보직 교수가 금 한 돈을 다 나눠먹었더라.

비유가 아니라 실제 금 한 돈을?

공로상 중에 이런 것도 있다. ‘2015년 대학평가 준비를 열심히 해서 금 한 돈을 줍니다.’ 그런데 석 달 뒤에 대학 평가 D 마이너스를 받았다. 또 상지대가 많이 논란이 됐던 게 ‘김문기 우상화’ 교육을 실시한다는 거였다. 그 우상화 교육에 가장 앞선 이가 상지 정신을 선양했다고 또 금 한 돈을 받고…. 자기들끼리 이차저차 해서 인사위원회도 거치지 않고 나눠 받았다. 재정적으로도 손실이지만 도덕적으로도 문제다.

상지대의 이른바 ‘적폐 청산’ 작업이 필요하겠다.

책임질 사람이 아직 한 명도 책임을 안 졌다. 겨우 2014년에 김문기씨가 총장 된 것 하나만 취소시킨 상태다. 다음 이사회에서 옛 재단 사람들이 흔들어놓았던 상지학원 정관을 바로잡을 계획이다. 그다음 잘못된 결정을 단계적으로 취소하는 작업을 하고, 행정감사와 회계감사 결과에 따른 진상조사가 끝나면 잘못을 밝혀서 책임을 묻는 단계에 들어간다. 그거까지 올해 안에 하려고 한다. 또 같이 하려는 건 교육 정상화이다. 김문기 우상화 교육을 폐지하고, 상지대에 새로운 교육 모델을 구축하는 작업을 준비 중이다.

공영형 사립대학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상지대 민주화 투쟁 40년〉 책에 상지대학교의 비전을 썼는데 이게 곧 공영형 사학이다. 상지대의 비전과 정부 정책이 마침 맞아떨어졌다. 지난 이사회에서 공영사학추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의도 했다. 상지대를 빼고 공영사학을 선정하는 게 가능하지 않을 거다. 우리는 이미 시민대학을 통해 실험해왔고, 공영사학에 준하는 운영 모델을 보였으며, 앞으로 1년 동안 그 방향으로 가기로 결의도 했다.

현행법상 임시이사 권한은 한정적인데?

2007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2007년 전에는 판례에 의해 사학의 임시이사와 정이사가 동등했다. 민법에 근거한 이 대법원 판례가 최초로 깨진 게 2007년이다. ‘임시이사는 정이사를 선임할 수 없다.’ 그런데 나머지 조항은 없다. 이 대법원 판례가 확대 해석돼서 교육부가 절절매고 있다. ‘임시이사는 아무것도 못하는 거 아니냐’ 이러는데 그렇지 않다고 본다. 교육부가 적극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국회에서도 사립학교법 개정을 통해 정리해줘야 한다.

사학법 개정이 쉽게 될까?

교육부가 적극 나서기도 어렵고 여당인 민주당이 이 문제에 총대를 메려고 하지 않는 게 사실이다. 사학법 개정이 옳고 그름이 아니라 권력관계의 문제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민주당이 어려워하는 건 이해가 된다. 그 정서를 이해하되, 어떤 계기가 올 거라고 본다. 또 그 계기가 오기 전이라도 교육부는 시행령 개정으로 얼마든지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현행 사학법상 정권이 바뀌면 언제든 비리 사학인이 돌아올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 제도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우리가 사분위 폐지를 요구하는 거다. 현재 사분위는 옛 재단 복귀 추진위원회다. 그걸 바꿔야 한다.

사분위 제도가 도입될 당시 김문기씨를 복귀시키는 발판이 될 거라고 예상했나?

몰랐다. ‘저렇게 무리할까?’ 김문기가 돌아온 것은 〈드라큘라〉 영화랑 똑같다. 가슴에서 십자가를 떼니까 드라큘라가 다시 살아났듯이. (당시) 한나라당이 그런 걸 가능하게 했다.

여러 차례의 어려움에도 구성원들이 수십 년간 투쟁을 이어올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진짜 잘 모르겠다. 다만 생각을 해보면, 첫 번째는 김문기씨가 유난히 악독했다. 사분위를 통해 63개 학교에 옛 재단이 돌아왔다. 그런데 이 가운데 총장이나 이사장으로 돌아온 건 김문기씨뿐이다. 다른 데는 옛 재단이 복귀하면 ‘영리하게’ 교수들 월급을 올려주고 했는데 김문기씨는 학생과 교수들을 징계하고 자기 측근들을 특혜 채용했다. 또 하나, 1986년에 김문기씨가 자기 학교 학생들을 간첩으로 몰았던 용공조작 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건 이후 학생들이 강하게 매달렸다. 과거 선배들이 겪은 이 일을 듣는 순간, 학생들 머릿속에서 다른 생각은 다 삭제되는 거다. 또 설계되지 않은 어떤 집단적 리더십이 교수협의회를 끝까지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졸업하고 떠나면 그만일 학생들이 정말 열심히 싸웠다.


2014년 3월 말에 김문기씨 아들이 이사장이 되고 5개월 뒤 김문기씨가 총장이 되기까지, 이 5개월이 투쟁의 공백기였다. 교수협의회도, 노조도 안 움직였다. 공포의 침묵이었다. 그때가 세월호 참사 때다. 다들 절망하던 그때, 학생들이 먼저 나섰다. 총학생회에서 전화가 왔다. “교수님 올라가려고요, 2층에.” 2층은 총장실을 말한다. “누구누구랑?” “저희만요.” “교협은? “….” “노조는?” “….” 학생들하고 나하고 바로 같이 단식에 들어갔다.

ⓒ시사IN 이명익2014년 8월19일 비리로 물러났던 김문기 전 이사장이 총장으로 복귀하자 학생들이 농성하고 있다.

상지대는 이제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사분위는 이번 정권에서 거의 소멸될 거다. 김문기씨가 다시 돌아올 길은 차단됐다. 그건 내가 장담한다. 이제 공영사학을 통해서 상지대가 새로운 대학의 모델을 만들어낼 일만 남았다. 이런 우리의 길이 전체 대학과 우리나라 교육 전체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나도 이 정도 가능성이 있으니 베팅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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