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A인도 14대 대통령에 당선된 람 나트 코빈드.
지난 7월20일 한국의 주요 언론은 ‘인도 불가촉천민 출신 대통령 당선’이라는 기사를 쏟아냈다. 득표율까지 자세히 분석한 대목을 보면 인도 역시 한국처럼 ‘국민이 직접투표로 대통령을 뽑는구나’ 하고 오해하기 쉽다.

인도는 한국과 달리 간접선거로 대통령을 뽑는다. 총선 때는 주민들이 직접 의원을 뽑지만 대통령은 다르다. 상원 격인 라자사바, 하원 격인 로크사바, 그리고 주의회 의원이 참여하는 대규모 간접투표로 대통령을 선출한다. 나라가 크다 보니 대통령 선출인단만 5000명에 육박한다. 그래봐야 ‘그들만의 잔치’다. 인도를 꽤 드나든 처지에서 보기엔 ‘아이고 의미 없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인도는 내각제 정치 구조를 채택한 나라다. 대다수 내각제 국가처럼 실권은 총리(수상)가 가진다. 대통령은 상징적 존재에 그친다. 여기에 인도 정치의 ‘묘미’ 같은 게 있다. 어차피 상징적인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인심을 팍팍 쓴다. 카스트에 따른 차별도, 여성에 대한 부당한 대우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구실을 이 상징적 대통령들이 수행한다.

한국 정치도 고질적인 지역감정 탓에 지역 안배를 하지만, 인도는 나라가 크다 보니 한 술 더 뜬다. 지역은 물론 카스트, 그리고 종교 안배까지 있다. 대통령이 선출될 때마다 이번에는 어떻게 안배가 됐는지 바라보는 게 이른바 관전 포인트다.

이번에 당선한 14대 대통령 람 나트 코빈드는 인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주이자 대표적인 힌두 벨트인 우타르프라데시(UP) 주 출신이다. 그는 또 1억 인구를 자랑하는 비하르 주 총리를 역임하기도 했다. 출신지와 근무지 인연에 따른 지지층이 확고했다. 여기에 1억6000만명에 달하는 불가촉천민의 지지까지 받았다. 인도 사회에서는 이번 대통령 선출이 다음 총선 등을 노린 집권세력의 ‘신의 한 수’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따져보면 코빈드 대통령만이 아니다. 12대 대통령이었던 프라티바 파틸은 최초의 여성이었고, 11대 대통령 압둘 칼람은 무슬림, 10대 대통령 코체릴 라만 나라야난은 인도에서 가장 작은 주 중 하나인 케랄라의 천민 출신이었다. 3대 대통령은 철학자였는데, 당시 인도 사회에서는 ‘철인 정치’를 하는 진정한 나라라는 자화자찬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화려한’ 대통령 선출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 언론은 인도 대통령이 선출될 때마다 앞뒤 다 자르고 이번에는 ‘소수 계층 누구’라는 식으로 보도했다.

얼굴마담 격인 대통령이 누가 되든 중요한 건 실질적인 차별 해소다. 인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퇴임한 지 반년도 지나지 않은 2012년 12월 델리에서 끔찍한 성폭행 사망 사건이 있었다. 불가촉천민 코빈드가 대통령인 지금도 소가죽을 취급하는 하층 카스트는 소를 보호하는 자경단의 폭력에 희생되고 있다.

어떤 나라의 진짜 현실을 알기란 참으로 어렵다

글을 마무리하려는 찰나 싱가포르에서 뉴스가 하나 날아왔다. 싱가포르 최초의 여성 대통령 소식이다. 인도의 상황과 정확하게 겹치는 이 뉴스의 주인공은 할리마 야콥이라는 말레이계 싱가포르인이다. 중국계가 다수인 싱가포르에서 소수인 말레이계인 데다 여성이어서 한국 언론은 또 화제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위원회가 대통령 입후보자 자격을 심사하고, 신청자 중 유일하게 할리마 야콥만이 서류 심사에 통과해 무투표 당선이 된 현실에 대한 비판은 행간 사이에만 존재한다. 국제 뉴스가 쏟아지는 세상이건만, 어떤 나라의 진짜 현실을 알기란 참으로 어렵다.

기자명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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