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양한모

운동화를 신었다가 등산화로 갈아 신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서울 북한산 수유분소에서 3㎞가량 떨어진 곳까지 갈 채비를 했다. 그 정도 거리라면 가벼운 운동화가 걷기 더 편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도 산, 그것도 북한산인데.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다. 수사 기록에서 보이던 무미건조한 숫자에는 그곳의 험한 산세가 드러나지 않았다. 수유분소에서 용암문까지 가는 길은 평지 3㎞와 판이했다. 산을 꽤 탄다고 자부했는데도 1시간30분이나 걸렸다. 심지어 밧줄을 타고 올라가야 하는 절벽도 있었다.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앞이 안 보이는 어두컴컴한 밤에, 굳이 죽으려고, 여기까지 오를 이유가 없을 거 같은데….’ 사촌동생을 망치와 회칼로 여러 차례 찔러 숨지게 만든 다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선택할 만한 코스가 아니라는 생각이, 산을 오를수록 강하게 들었다. ‘박근혜 5촌 살인사건’ 현장을 다녀온 이후 심증은 더욱 굳어졌다. ‘정말 박용수가 박용철을 죽이고 자살했을까?’ 석연찮은 증거가 계속 나왔다.

자살한 박용수씨는 나무에 목을 맸는데 그 와중에 어깨에 빨간 수건을 걸쳤다. 경찰의 수사 기록에 첨부된 사진에 그렇게 찍혀 있었다. 자살할 사람의 행동이라기에는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살인 현장에서 발견된 흉기에 살인자로 지목된 박용수씨 지문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경찰은 용수씨가 손에 장갑을 끼어서라고 했다. 이것도 절반만 맞았다. 박용수씨는 손가락이 드러난 반장갑을 낀 채 발견되었다. 그러니까 손바닥은 장갑으로 가려졌지만, 지문이 찍히는 열 손가락의 윗부분이 모두 노출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경찰은 사건이 발생한 2011년 9월 당시 이를 밝히지 않았다. 수사 경험이 없는 기자의 눈에도 설명이 안 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결론을 너무 빨리 냈다.

사건 발생 6년이 지난 뒤, 경찰이 드디어 재수사 의지를 밝혔다. 박용철씨 유가족이 재수사를 해달라며 9월15일 고소장을 냈다. 사흘 후 김정훈 서울경찰청장은 “서울청으로 사건이 내려오면 광역수사대에 배당하겠다”라고 밝혔다. 이번만은 경찰이 제대로 의혹을 해소해주길 바란다. 그 첫걸음으로 현장부터 가보길 권한다. 현장을 보면 알 것이다. 진짜 이상하다는 것을.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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