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룰라)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브라질 노동당은 ‘외줄타기’로 성공했다. 상황에 따라 좌우를 종횡하며 정치적 균형을 잡는 데 능숙했다. 룰라는 ‘적을 만들지 않는 정치’로 박수를 받았다. 이는 위험천만한 일이기도 했다. 외줄타기를 하다 보면 낙마할 수 있다. 또한 ‘적이 없다’는 것은 ‘모두가 적으로 돌변할’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다.

정치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브라질처럼 민주주의 역사가 짧은 나라는 더욱 그렇다. 브라질 대의제가 불안정한 이유는 ‘파편화된 정당제’ 때문이다. 1979년 당시 브라질 독재정권은 민주화 세력이 단일 정당으로 결집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극단적인 다당제를 도입했다. 원내 의석을 가진 정당이 20~30개 난립했다. 대통령을 배출한 여당은 많게는 10여 개의 정당과 연합하여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룰라가 여러 정당 간의 합종연횡으로 구성된 정부를 이끌어가는 것은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연립정부 유지에 골몰하다가 ‘시민 참여제도’를 뒷전으로 밀어내버릴 정도였다. 새로운 노사정 기구나 도시위원회 같은 참여제도를 환영했던 사회운동 단체들은 룰라 정부가 우파 정당과 협상을 우선시하자 강한 실망감을 표출했다. 정부와 사회 간의 소통 창구가 막히게 되면 시민들은 거리에서 의사를 표출할 수밖에 없다. 룰라의 후임자였던 지우마 호세프 정부가 2013년 6월, 2015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시위에 직면했다.

브라질 정당제도는 고질적인 정치 부패의 근원이었다. 브라질은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5위의 면적, 2억이 넘는 인구(세계 6위)를 가진 대국이다. 연방 단위 선거를 치르는 데는 막대한 선거자금이 소요된다. 문제는 30여 개 정당 대부분이 계층적으로나 지역적으로 정치적 영향력이 한정되어 의석 점유율이 20%대에 머문다는 점이다. 대선을 치르는 정당들은 선거자금을 불법적인 방법으로 조성하는 일이 잦았다. 선거 이후 정당연합을 만드는 데도 비용이 들어갔다. 극소수 의석으로 이권을 극대화하려는 소수 정당들을 검은돈으로 달랬기 때문이다. 정치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서라도 ‘콩가루 정당제’를 3~5개 정당이 경쟁하는 ‘온건 다당제’로 개편하는 정치 개혁이 필요했다.

집권당이 정치 개혁에 나서는 순간 다른 당들이 연합에서 이탈하며 연립정부가 무너질 위험이 매우 컸다. 룰라 역시 정치 개혁을 목표로 헌법 개정을 시도했지만 다른 정당들의 반대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대신 추진한 것이 바로 사법 개혁이었다. 수사권을 가진 연방경찰의 규모와 인력을 두 배로 늘려 대형 사건을 수사할 수 있게 만들었다. 검찰청이 직접 검찰총장을 추천하도록 했다. 사법부도 효율적이고 응집력 있는 조직으로 통합시켰다. 그 결과 독립성이 강한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이 건설됐다. 부패 정치가들에 대한 수사와 처벌이 강도 높게 이뤄질 수 있었다.

역설적이지만, 사법 개혁으로 노동자당 정부가 위기를 맞았다. 노동자당도 연방 단위의 대규모 선거를 치르고 정당연합을 유지하는 데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기성 정당의 불법적인 관행을 수용했던 것이다. 2005년 노동자당이 여러 정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다른 당 의원들에게 월급처럼 검은돈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월급 스캔들’로 노동자당의 지도자들이 구속되고, 룰라도 사임 위기에 몰렸다.

호세프가 재선 임기를 시작한 2015년에도 대형 부패 스캔들이 터졌다. 브라질 공기업 페트로브라스와 여러 기업이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준 사건이다. 무려 200여 명의 정치인·기업인·로비스트들이 연루되었다. 여러 정당의 정치가들이 연루되었지만, 집권당이라는 이유로 노동자당과 호세프가 가장 큰 정치적·도덕적 타격을 입었다.

경제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잡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룰라는 호황기(2004~2011)의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성장과 분배를 골고루 챙길 수 있었다. 당시 브라질 경제는 국제적인 원자재 붐으로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4%대의 안정적인 성장기를 누렸다. 그때 인구의 25%에 달하는 5000만 빈민들에게 적극적인 복지정책을 펼쳤다. 성장을 원하는 계층과 분배를 바라던 계층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 87%에 가까운 기록적인 지지율의 비결이다. 

ⓒEPA8월28일 브라질 리우그란데두노르테 주에서 지지자들에게 유세를 펼치는 룰라 전 브라질 대통령(가운데).

후임 호세프 정부는 외줄타기 정치에 실패

룰라 정부의 노선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호세프 정부는 불황기에 집권했다.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에 이어 2014년 이후 중국의 경제성장까지 지체되면서 브라질 경제가 직격탄을 맞았다. 브라질처럼 천연자원, 농축산물 등 1차 산품을 수출하는 나라는 국제 원자재 수요가 급락하면 바로 위기를 맞는다. 호세프 정부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성장과 분배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중대한 갈림길에 놓였다. 어느 길을 선택하든지 치러야 할 정치적 대가가 있었다. 성장을 택하면 지지층이 등을 돌릴 것이고, 분배를 택하면 반대 세력이 결집할 것이다. 최악은 모두가 등을 돌리는 것이었다.

당시 우파와 부유한 중상층은 더욱 강력한 긴축정책을 압박했다. 반면 좌파와 하층은 분배를 더욱 강화하라고 요구했다. 호세프 정부는 대중교통과 교육, 의료 서비스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공약을 미루고, 경제 안정을 위해 재무장관을 재정 긴축파에서 골랐다. 좌파와 지지층은 배신감을 느끼며 지지를 철회했다. 우파와 중상층은 만족하지 않았다. 더 강력한 긴축이 필요하다며 아예 탄핵을 주장하고 나섰다. 호세프 당시 대통령은 모두로부터 버림받았다.

호세프는 거리 시위대의 요구를 수용해 정치 개혁에 나서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우파 세력과 타협해 연립정부를 유지하지도 못했다. 호세프는 더 많은 분배로 전통적인 지지층을 만족시키지도 못했고, 더 강력한 긴축으로 비토층을 달래지도 못했다. 외줄을 타며 균형 잡다가 낙마한 것이다. 아무도 적으로 만들려 하지 않다가 모두를 적으로 만들었다.

ⓒEPA지난해 8월31일 미셰우 테메르 브라질 대통령 권한대행(가운데)이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 확정 직후 공식 취임하면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연립정부의 한 축을 구성하던 우파 세력은 호세프 대통령의 위기를 철저하게 악용했다. 호세프 탄핵을 주도한 정당은 노동자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한 우파 브라질민주운동당(PMDB)이었다. 이 당에는 당시 호세프 정부의 미셰우 테메르 부통령, 헤난 칼례이루스 연방 상원의장, 에두아르두 쿠냐 연방 하원의장이 속해 있었다. 이 3인방이 연립정부를 붕괴시키고 탄핵을 주도했다. 지난해 8월31일 ‘브라질에서 가장 청렴한 정치가’로 불렸던 호세프 탄핵이 확정되었다. 부통령이던 테메르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테메르는 호세프의 잔여 임기(2018년 12월31일까지)를 채울 예정이었다.

반전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탄핵을 주도한 이들의 뇌물 혐의가 드러났다. 에두아르두 쿠냐 전 하원 의장은 뇌물죄로 수감되었다. 지난해 12월 브라질 대법원은 부패 혐의로 헤난 칼례이루스 당시 상원 의장의 직무정지 판결을 내렸다. 이 결정은 하루 만에 번복되기는 했지만 그 역시 부패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테메르 대통령은 부패 혐의가 드러나  기소되었다. 지난 5월 말 대통령이 직접 대기업 사장에게 “돈으로 증인의 입을 막아라”고 말하는 음성파일이 공개되었다. 6월 말에는 또 다른 부패 혐의가 드러났다. 연방검찰청이 500만 달러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대통령을 연방대법원에 기소한 것이다. 브라질 국민의 81%가 대통령에 대한 기소를 찬성했다. 테메르는 사임하기는커녕 연방 하원의 우파 의원들을 동원해서 자신에 대한 재판을 막아버렸다.

ⓒAP Photo8월2일 상파울루 시내에서 시위자들이 테메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우파들이 호세프 탄핵을 추진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대통령에 취임한 미셰우 테메르가 미국 뉴욕에서 헤지펀드 및 외교 엘리트들을 만나 직접 실토한 기록이 있다. 그 자리에서 테메르는 “호세프가 예산을 편법으로 운영했기 때문이 아니라 국제자본과 브라질 재계가 원하는 수준의 긴축정책을 추진하지 않았기 때문”에 탄핵했다고 말했다. 테메르가 원하는 강력한 ‘긴축정책’이란 13년간 노동자당 정부가 빈민들에게 제공해온 복지 재정을 감축하고 노동자들의 권리와 혜택을 줄이는 한편으로 기업가의 자유를 늘리는 것이다. 실제로 테메르 정부는 지난 7월11일 의회에서 노동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브라질 재계가 줄기차게 주장해온 이른바 ‘노동 유연화’ 정책을 고스란히 반영한 것이었다. 가령 휴가일수와 야근수당, 최저임금과 남성 출산휴가 등을 단체협약으로 변경할 수 있게 만들어버렸다. 외주화로 직접고용 노동자들을 간접고용 노동자로 바꿀 수 있고, 노동계약 대신에 ‘서비스 제공 계약’으로 노동자를 자영업자로 둔갑시키는 방법도 동원되었다. 노동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브라질 통화인 헤알화 가치와 주가가 치솟았다. 테메르 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호세프보다 더 낮은 5% 수준으로 추락했다.


부패한 우파 대통령이 하루아침에 노동권을 무너뜨린 것을 지켜본 브라질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것이 13년간 노동자당 정부가 이룬 성취를 지키기 위해 대선 출마를 선언한 룰라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38%까지 오른 이유였다. 그런데 브라질 사법부는 7월12일, 룰라 전 대통령에게 10년 가까운 실형을 선고했다. 그가 건설회사로부터 3층 주택을 선물받은 대가로 정부 발주 공사를 맡겼다는 것이다. 룰라는 이 주택이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최종심에서 룰라의 형이 확정되면 앞으로 20년 동안 피선거권이 중지된다.

룰라, 형 확정 시 20년 동안 피선거권 중지

법정 공방과 별개로 브라질 사법부가 룰라에 대해 기습 판결을 내렸다는 비판이 일었다. 지난해 3월 룰라 전 대통령을 강제 구인하겠다고 나서서 탄핵 위기의 호세프를 더욱 궁지로 몰았다. 이번에는 룰라의 지지율이 상승하는 시점에 서둘러 실형을 선고해 출마 자체를 막으려 한다는 지적이다. 정파를 막론하고 부패가 벌어졌는데도, 유독 노동자당 정치인들의 구속 비율이 높다. 여전히 우파 정치가들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는다. 2014년 대선에서 호세프와 대결한 아에시우 네비스는 부패 혐의가 드러났는데도 아직 재판에 회부되지 않았다.

더 중요한 질문이 제기된다. 이 모든 사건이 ‘브라질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이다. 국민이 직접 대통령으로 선출한 호세프를 사소한 이유로 탄핵시킨 우파가 노동자당 정부의 13년 성취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리는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정당한가?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있는 후보의 피선거권이 사법부의 기습 판결로 박탈되는 것은 정당한가? 이런 의문이 갈수록 커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 브라질 정치가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은 우파 대통령과 사법부 엘리트에 의해 좌우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명 박정훈 (중남미 연구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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