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복지정책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내년부터 월 10만원의 아동수당이 도입되고 기초연금은 25만원으로 오른다. 비급여까지 모두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해준다니 벌써 실손의료보험 해약을 문의하는 사람들이 생겼다고 한다. 곧 서민 주거대책도 발표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허전하다. 무언가가 진행되지만 굵직한 기둥이 보이지 않는다. 우선 문재인 정부가 지향하는 복지정책의 비전이 불명확하다. ‘포용적 복지국가’라는 단어만 제시했을 뿐 어디에서도 복지 목표를 찾을 수 없다. 개별 복지 항목뿐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복지 지출을 어느 수준까지 올리겠다는 목표치가 없다(2016년 한국 GDP 10.4%, OECD 평균 21%, 프랑스와 벨기에 31%). 혹시 그 상승 폭이 그다지 크지 않아서일까? ‘문재인케어’라는 상표까지 붙었지만 보장성이 현재 63.4%에서 70%로 오르는 데 그치듯이 말이다.

종합적 목표를 제시하지 못하는 이유는 재정 전략의 빈약함과 관련 있어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밝힌 조세부담률 목표가 너무 낮다. 임기 말 GDP 19.9%에 도달하겠단다. 올해 19.3%에 비해 고작 0.6%포인트 올린다. OECD 평균 조세부담률 25.1%를 기준으로 향후에도 약 5%포인트 낮게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올해 금액으로 추정하면 부족액이 연 90조원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내년 예산안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추가 증세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라고 단언했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공약을 이행할 재정이 충분하다고 자신한다. 순조로운 세입 추세가 그 근거이다. 올해 국세 수입이 예상보다 15조원이나 더 들어올 전망이다. 애초 예상 세입을 기준선으로 설정하면 앞으로 매년 초과세수 효과가 누적되므로 총액이 임기 중 60조원에 달한다. 사실 이건 문재인 정부의 조세정책과는 관련이 없는 보너스 수입이다. 공약 이행에 필요한 총 178조원 중 3분의 1을 자동 확보하는 행운이다.

이러한 면에서 박근혜 정부는 운이 없었다. 임기 첫해인 2013년 국세 수입이 예상보다 약 15조원이 덜 걷혔다. 세금제도에서는 이전 정부의 골격에서 얻어진 세입이다. 문재인 정부의 초과세수 계산법을 적용하면 박근혜 정부의 임기 중 부족 세입은 수십조원에 달하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박근혜 정부가 소득세·법인세·담뱃세 등에서 일부 증세를 단행했지만 내내 재정 부족에 허덕인 이유이다.

어찌되었든 문재인 정부에서 초과세수가 잘 걷히기 바란다. 근래 경기 효과와 그간 세정개혁이 낳은 성과라 볼 수 있다. 문제는 좋은 세수 여건에서 출발했음에도 재정 운용의 전망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J노믹스’를 주창하며 평균 7%의 재정지출 증가율을 호언했지만 이번 중기 재정운용계획에선 평균 5.8%에 그친다. 재정수지도 내년 재정적자가 약 29조원이고, 이후 계속 늘어나 2021년에는 44조원에 달한다. 이는 GDP 2% 규모로 박근혜 정부가 2020년 목표로 삼았던 GDP 1% 적자의 두 배이다. 문재인 정부는 적극적 재정정책을 펴기 위해 이 정도의 적자는 용인할 수 있다고 하지만, 세입 확충에 온 힘을 쏟지 않고 발생한 적자이기에 명분이 약하다. 7% 재정증가율을 포기한 것도, 재정적자가 고착화되는 것도 소극적 조세정책이 낳은 결과이다.

 

 

ⓒ연합뉴스지난 8월29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내년 건강보험료율을 2.04% 인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회의를 마친 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위원장인 권덕철 보건복지부 차관(오른쪽 두번째)이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나라가 제구실 다하려면 그에 조응하는 재정 있어야

‘나라다운 나라’를 만든다고 했다. 나라가 제구실을 다하려면 그에 조응하는 재정을 지녀야 한다. 우리나라 일반재정 규모가 올해 GDP 32.5%이다. 앞으로 유럽 평균인 47.4%는 아니더라도 OECD 평균 40.4%에는 접근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조세부담률 상향이 필수적이다.

이제라도 문재인 정부가 담대한 조세 전략을 마련하기 바란다. 세금이 제대로 서기를 바라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높다. 금융소득,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고 법인세 인상이 적용되는 기업 범위도 늘려야 하며, 보유세는 최소한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매겨야 한다. 나아가 복지가 늘어나는 만큼 시민들에게 소득에 맞춰 누진적으로 세금을 더 내자고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조세 정의를 구현하는 ‘공평 과세’와 복지 확대에 발맞춰 세금을 더 내는 ‘복지 증세’를 시민들과 이야기하라.

 

 

기자명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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