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김해의 한 장례식장에 두 남성의 빈소가 나란히 차려졌다. 서른아홉 살 박경근씨, 서른여섯 살 이현준씨.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경주마를 돌보고 훈련시키던 14년차 마필관리사 두 사람이 두 달여 간격으로 목숨을 끊었다. “콩알만 하던 게 대문짝만해져버렸어. 두 달 동안 텔레비전에도 잘 안 나왔거든.” 아들 이현준씨를 잃은 지 9일째인 아버지가 말했다.

ⓒ시사IN 양한모

앞선 박경근씨 죽음 이후에도 마필관리사들은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야 했다. 마사회는 “마필관리사 고용 방식은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고용체계”라며 적극 대응했다. 또 다른 죽음 뒤에야 재발 방지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했다. 아들을 잃은 지 75일째에야 찾아간 기자에게 박경근씨 어머니는 아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한참을 말하다 “뭐부터 말하면 돼요? 사고 난 날부터 이야기할까요?”라고 물었다. 자식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려 기회 있을 때마다 이야기를 쏟아냈을 모습이 그려져 마음이 아렸다.


2004년 출범한 부산경남경마공원의 마필관리사들은 마사회도 조교사 ‘협회’도 아닌, 조교사 개인에게 고용된 노동자들이었다. 고용도 늘 불안했다. 이미 2011년 이 같은 현실을 고발하며 자살한 서른다섯 살 박용석씨가 있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마필관리사라는 직종이 있는 것도, 이런 고용구조가 존재한다는 것도 나는 처음 알았다. 같은 사업장에서 세 명이 죽음으로 현실을 고발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고용구조 개선을 위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누군가 죽고 나서 기사를 쓸 때마다 부끄럽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경고음이 없었던 취약 노동의 죽음이 있었을까. 얼마 전 소화기 제조업체에서 일하던 스물세 살 파견노동자가 소화약제로 독성간염 증세(추정)를 보이다 숨졌다고 고용노동부가 밝혔다. 제조업 직접 생산공정에는 파견이 금지돼 있다. 우리는 이미 똑같은 구조에서 발생한 사고를 알고 있다. 20·30대 청년들이 삼성·LG 휴대전화 부품공장에서 파견 노동을 하다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한 사건 말이다. 역시 불법 파견이었고 독성물질 관리체계에 구멍이 뚫린 사건이었다. 그뿐일까. 이른바 ‘물량팀’ 노동자들에게 안전장비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것은 조선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너무나 많은 취약 노동이 누군가 죽고 난 뒤에야 드러나고 알려진다. 사람이 죽기 전에, 다치기 전에 보도할 의무를 생각한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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