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잔소리를 한다. 근시안적인 사고를 버리라고. 모든 문제의 해법도 간단하다. 근시안적인 사고를 버리고 장기적으로 보면 된다. 그런데 세상이 근시 사회라면 어떨까. 개인의 장기적인 안목은 의미가 없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폴 로버츠는 세상이 어쩌다 이렇게 지독한 근시가 되었는지 염려했다. ‘한때 신중함과 화합, 미래에 대한 염려를 칭송하던 사회가 어쩌다가 충동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근시안적인 사회가 됐을까?’

폴로버츠지음
김선영 옮김
민음사 펴냄
부제 ‘내일을 팔아 오늘을 사는 충동 인류의 미래’처럼 어쩌다 인류가 당장 내일만 보는 충동적인 삶을 지향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짚어준다. 스마트폰과 검색 엔진으로 우리가 원하는 걸 넘치게 제공받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제보다 더 충동적으로 살고 있다. 현대인이 만족을 미룰 수 없게 된 건 개인의 탓이 아니다. 신기술이 넘쳐나는 효율적인 사회에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은 넓지 않다.

단기간의 이익을 내는 데 주력하는 기업을 비롯해 정치 분야도 마찬가지다. 저자에 따르면 정당들은 한때 산업사회의 특징이던 ‘장기적 정치 과정에 봉사하는 대신 당파성이라는 당장의 성과’를 택했고 결과적으로 포퓰리즘이 넘쳐나게 되었다. 기술 발전이 정계와 재계에서 강조되는 효율성을 만나 우리 사회를 충동으로 몰아넣었다는 해석이 흥미롭다.

근시 사회라는 프레임은 현대 사회를 해석하는 데 적절해 보인다. 달리 말하면 충동 사회이기도 한데, 이런 사회의 아이러니는 온갖 기쁨과 만족이 넘치는데도 그것의 주된 생산품이 불안이라는 점이다. 지금 느끼는 불안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데 위안이 되면서도 뒷맛이 썼다. 단기적 사리 추구를 지향하는 문화는 결국 파국을 맞는다는 사실을 책은 상기시킨다.

대안으로 말하는 공동체의 회복은 공감이 가면서도 어디에서나 말하는 해결책이라 다소 아쉽다. 진도가 빨리 나가는 책은 아니지만 지금 사회를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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