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돌아왔다, 조선소에서
  • 장정일 (소설가)
  • 호수 521
  • 승인 2017.09.15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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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지난 8월20일, 창원 STX조선해양 주식회사가 건조 중인 7만4000t급 화물운반선 도색 작업 중에 폭발 사고가 일어나 노동자 네 명이 숨졌다. 이보다 앞선 지난 5월1일에는 800t급 골리앗과 32t급 타워크레인이 충돌하는 바람에 거제 삼성중공업 조선소에서 일하던 노동자 여섯 명이 숨지고 스물다섯 명이 부상을 입었다. 두 사건은 조선소에서 일어났다는 것 이외에 숨진 사람 모두가 하청(협력)업체 직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조선소에서 일어나는 산재(産災)는 왜 하청업체 직원만 덮치는 걸까. 허환주의 <현대조선잔혹사>(후마니타스, 2016)에 해답이 있다.

2012년 새해 첫날, 인터넷 언론사 <프레시안>의 허환주 기자는 울산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중간급 조선사인 세진중공업이 건조하던 선박에서 그라인더 작업(용접 후 표면을 매끈하게 하는 일)을 하던 노동자 네 명이 화재로 질식사했기 때문이다. 환기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밀폐된 블록 안에서 튄 그라인더의 불똥이 화재의 원인으로 지목되었지만 근본 원인은 그게 아니었다. 세 개 하청업체가 용접, 그라인더, 도장 작업을 한 작업장 안에서 동시에 한 것이 발단이다. 페인트를 칠하면서 인화성 높은 시너를 사용하는 도장 작업은 제일 마지막에 해야 하는데도, 공기(공정 기일)를 맞추기 위해 혼재 작업을 한 것이다. 혼재 작업은 그 자체로도 위험하지만, 각기 다른 업체가 서로 다른 일을 하는 상황에서 협조나 공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고 위험이 더 높아진다.

취재가 끝난 뒤, 취재에 도움을 준 현지의 노동자가 술자리에서 “허 기자, 백날 들어봤자 아무 소용없어. 직접 보고 느껴봐야 진정한 기사를 쓴다니깐” 하며 기자를 자극했다. 쓸데없는 자존심이 발동한 허 기자는 “취업이 가능하면 언제든 불러주세요. 바로 달려올게요”라고 대답했는데, 속으로는 ‘아무런 기술도 없는 내가 설마 취업이 되겠느냐’ 하는 계산이 있었다. 실수였다. 조선소는 대표적인 노동집약 산업이었고, 장애만 없다면 누구라도 괜찮았다. 두 달 뒤인 3월 초, 허환주 기자는 자리가 생겼다는 전화를 받고 창원으로 내려갔다. 

별다른 안전교육 없이 안전모 하나 쓰고 현장에 투입된 허 기자는 아파트 5층 높이의 허공에 설치된 족장(=비계)을 오르내리기도 한 끝에,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처음부터 노동자로 살려는 게 아니었기에 잠정적이라는 것은 본인도 알고 있었지만, 2주일 만에 도망치듯 서울로 올라온 그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살아서 돌아왔다.” 작업장에는 법에 명시된 생명줄이나 추락 방지망 같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었다. 6개월 이내의 신입도, 12년이 넘는 숙련공도 ‘공평하게’ 산재를 당했다.

앞서 혼재 작업 사례가 나왔지만, 아래층에서 일을 할 때 위층에서는 작업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서로 다른 하청업체가 아랑곳없이 각기 맡은 일을 했다. 원청업체는 이를 감독하거나 관리해야 했지만 그러면 하청의 실질이 불법 파견이라는 것을 자인하는 셈이 되기에 수수방관한다. 그러다가 사고가 나면 원청은 꼬리를 자른다. 현재 조선업계의 하청 노동자는 원청 노동자의 4배에 이른다. 조선 산업이 불법적이고 편의적인 이중 구조(원청과 하청)로 되어 있는 까닭은 노동집약 산업이라는 특성상 많은 노동자를 필요로 하면서도, 수주가 안정적이지 못할 때에 대비한 고용탄력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는 곳에서

ⓒ이지영 그림

대기업 노조를 ‘귀족 노조’라고 악마화하고 싶지는 않으나, 솔직히 이 책을 읽고 나면 김진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309일 고공 농성’을 새롭게 보게 된다(이 책의 지은이가 그렇게 쓴 게 아니고, 내가 그렇게 느꼈다는 말이다). 조선업계의 하청 노동자는 하청 단계가 거듭될수록 급여는 적어지고 일하는 시간은 늘어난다. 정규직이야 노조도 있고, 파업도 할 수 있고, 김진숙도 있었지만, 하청 노동자들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한국에 조선소가 처음 생긴 1972년부터 조선 노동자는 매년 산재로 죽었다. 하지만 이 글의 서두에 나온 것처럼 더 이상 정규직은 죽지 않는다. 조선업계의 하청이 본격화된 2000년부터 원청 노동자의 사망은 줄어들고 하청 노동자 사망이 늘기 시작했다. 2014년에 이르러서는 하청 노동자 13명이 죽을 때 원청 노동자는 한 명도 죽지 않았다. 기하급수로 늘어난 하청 노동자 수를 고려해볼 때 원청과 하청의 사망자 수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원청회사는 하청업체에 일을 맡기며 위험마저 외주화했다. 하청 노동자들은 원청 노동자들보다 더 어렵고 힘든 일을 맡게 되었고, 자신들의 고용 안정을 보장받기 위해 하청 노동자들을 방패막이로 삼은 원청 노조는 하청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결성을 노골적으로 방해해왔다.

박봉남 원작·김예신 그림의 <아이언 크로즈>(서해문집, 2017)는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같은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그래픽노블로 번안한 것이다. 1965년 강력한 사이클론이 방글라데시 치타공 해안을 강타하면서 그리스 선박 한 척이 해변에 좌초했다. 그 배는 얼마간 방치되어 있다가 급조된 선박 해체 업체에 의해 해체되었다. 이것이 방글라데시 선박 해체 산업의 시작이다. 매년 전 세계에서 온 대형 폐선 300여 척이 해체되는 치타공은 선박의 무덤이자 방글라데시의 심장이다.

폐선은 완벽하게 해체되어 100% 재활용된다. 철광석이 전혀 매장되어 있지 않은 방글라데시에 폐선박은 철강을 얻을 수 있는, 신이 내린 선물이다. 철은 분리해서 제련소로 보내고 엔진은 공장에서 재사용한다. 목재와 낡은 전선은 물론이고 배에서 사용하던 집기 일체와 더러운 변기까지 하나도 버리지 않는다. 현재 사업장 100여 곳에서 노동자 5만여 명이 일하고 있으며, 연관된 사업(제련소·재활용 가게 등)까지 포함하면 약 15만명이 폐선에 매달려 먹고산다. 매해 20명 넘게 산재로 목숨을 잃는 폐선장 노동자들의 하루 임금은 1~2달러다. 이 책 198쪽에는 방글라데시를 피폐하게 만드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사이클론을 꼽는데, 그것은 절대 방글라데시 국민을 가난에 빠트리는 원인이 될 수 없다. 궁금하시다면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와 알라스테어 스미스가 함께 쓴 <독재자의 핸드북>(웅진지식하우스, 2012) 제7장을 읽으면 된다. 이 책은 한 번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명저 중의 명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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