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요. 불안해요.” 네팔 이주 노동자 A씨(30)는 케이시 사문드라 씨(22)의 말이 자꾸 신경 쓰였다. 사문드라 씨는 대구 달서구에 위치한 한 이불 공장에서 A씨와 함께 일하던 동료였다. 불면과 우울증을 호소하던 사문드라 씨를 A씨가 신경정신과 병원에 데려갔다. 의사 앞에서 사문드라 씨는 입을 열지 않았다. 동료들에게도 “고향 네팔에 가고 싶다”라는 말만 했다. A씨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5년 전 같은 기숙사 방을 썼던 네팔 이주 노동자 너빈 그루 씨(당시 26세)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루 씨도 죽기 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도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잠을 못 자고 불안해했다. 사문드라 씨처럼 “네팔에 돌아가고 싶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사장에게 휴가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잠시라도 고향에 다녀오려면 공장을 그만두는 수밖에 없었다. 참고 일하거나, 어렵게 얻어낸 일자리를 포기하고 네팔로 돌아가거나. 이 두 가지 선택지 가운데 그루 씨는 후자를 선택하는 듯했다. 퇴사 후 네팔로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비행기 표를 끊었다. 출국 날, 그는 동대구역 인근 15층 아파트에서 스스로 몸을 던졌다.

5년 전 악몽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A씨는 사문드라 씨를 도왔다. 사장에게 사문드라 씨의 휴가를 사정했다. 다행히 사장은 60일간의 휴가를 허락했다. 24명에 이르는 네팔 출신 동료들은 2만원씩 거둬서 비행기 표를 사주겠다고 말했다. 사문드라 씨는 “나도 돈 있어. 괜찮아”라고 사양했다. 지난 6월12일, 그날은 회사 월급날이었다. 동료들은 쉬는 사문드라 씨를 뒤로하고 일하러 나갔다. 저녁 8시40분, 일을 마치고 화장실에 들른 동료 B씨(36)가 화장실에서 목매어 숨진 사문드라 씨를 발견했다.

기자를 만난 A씨가 악수를 나누자마자 물었다. “지금 우리 네팔 사람들이 많이 자살하고 있어요. 다른 나라 사람들은 자살하고 그런 거 없어요? 네팔 사람들 자살이 뉴스에 너무 많이 나와요.” 

 

ⓒ청주네팔쉼터 제공“오늘 이 세상을 떠나기 위해 허락을 받습니다”라는 케서브 스레스터 씨 유서.

실제로 최근 네팔 이주 노동자들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6월 사문드라 씨를 포함해 대구와 경산에서 각각 2명, 1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8월7일에는 네팔 이주 노동자 케서브 스레스터 씨(27)가 자신이 일하던 충북 충주의 자동차 부품 공장 기숙사 옥상에서 스스로 목을 맸다. 같은 날 충남 홍성의 돼지 농장에서 일하던 다벅 싱 씨(25)가 뒤를 이었다. 올여름에만 네팔 이주 노동자 5명이 스스로 생을 끝낸 것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에 따르면, 2015년에는 9명, 지난해에는 7명의 네팔 이주 노동자가 자살했다. 고용허가제로 네팔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한 2007년부터 지금까지 36명이 자살했다.

유독 네팔 이주 노동자들의 자살률만 높다고 보아야 할까? 그렇지 않다. 이주노조 측에 따르면 “그나마 네팔 이주 노동자들은 다른 나라 이주 노동자들보다 조직화가 잘되어 있어서 이들의 죽음이 수면 위로 잘 드러나는 편”이다. 네팔 외 다른 나라 이주 노동자의 경우 그간 몇 명이 자살했는지 통계조차 집계되지 않는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대사관이나 동료들도 고용주가 고용을 꺼릴까 봐 이주 노동자의 죽음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걸 원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2007년부터 한국에 입국한 네팔 이주 노동자는 3만8000명으로 같은 기간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이주 노동자 63만7000명의 6%이다. 그렇다면 드러나지 않은 나머지 94% 이주 노동자들의 자살 문제 또한 심각할 수 있다.


우울증, 과로, 추가수당 미지급…

“나는 사문드라한테 문제가 있는 걸 죽기 3일 전에야 알았어.” 그의 시신을 발견한 B씨가 말했다. 동료들은 사문드라 씨가 왜 힘들어하는지 몰랐다. 동료에게 신경을 쓸 여유 같은 게 없기 때문이다. 같은 공장에서 일했던 네팔 이주노동자 C씨(39)는 “친구끼리도 대화를 안 해요. 할 시간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B씨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대화를 할 수가 없어요. 아침 7시에 일어나서부터 바빠요. 저녁 8시40분까지 일해야 하는데 너무 바빠요.” 

결국 이주 노동자들은 각자 고립되어 스스로 몸과 마음을 챙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B씨는 “자살한 사람들뿐 아니라 주변, 특히 한국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이주 노동자들 중 우울증을 앓는 친구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모두 ‘우울증’이라는 병명조차 몰랐고 ‘그냥 저 친구는 걱정이 많구나’ 하고 넘겼다. 이후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이 있고, 약을 먹어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한국말이 서투른 이주 노동자들이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기란 쉽지 않다. 

일반 노동자가 일터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른 일터로 옮길 수 있다. 하지만 이주 노동자들은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웬만하면 처음 일한 사업장에서 버텨야 한다. 현행 고용허가제에 따르면 3년의 취업활동 기간 중 최대 세 번까지 직장을 옮길 수 있다. 하지만 휴업이나 폐업에 따른 고용허가의 취소, 고용주의 근로조건 위반 등 사업장 이동 허용 조건이 까다롭다. 

2014년 한국에 온 네팔 이주 노동자 나라연 구라가인 씨(34)는 “인천에 있는 미나리 농장의 한 사장은 겨울에 일이 없으면 내가 근로계약을 맺지도 않은 부산·울산에 있는 농장에 보냈다. 거기 있는 사장들 엄청 나빴다. 나쁜 말을 많이 하고 일도 많이 시켰다.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서 저녁 7시까지 일했다. 또 저녁 7시부터 9시까지는 비닐하우스에서 일해야 했다. 추가 수당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구라가인 씨는 3개월간 고용주와 싸운 끝에 겨우 사업장 이동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김흥구8월14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이주 노동자들이 고용허가제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 8월7일에 자살한 케서브 스레스터 씨와 다벅 싱 씨도 죽기 전 사업장을 옮기기를 원했다. 스레스터 씨는 지난해 11월 충주에 있는 공장에 취직한 뒤 2주일 간격으로 주야간을 교대하며 하루 12시간씩 일했다. 쉬는 날은 한 달에 이틀가량에 불과했다. 스레스터 씨는 고용주에게 “사업장 이동을 허락해주거나 휴가를 내고 네팔에 가서 치료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고용주는 둘 다 거절했고, 나흘 뒤 스레스터 씨는 스스로 목을 매달았다. 유서에는 ‘제가 세상을 뜨는 이유는 건강 문제와 잠이 오지 않아서 지난 시간 동안 치료를 받아도 나아지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 너무 힘들어서입니다. 오늘 이 세상을 떠나기 위해 허락을 받습니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도 받았고, 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안 되고, 네팔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안 되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김흥구‘청주네팔쉼터’의 모습.

하루 만에 충청도에서 네팔 이주 노동자 두 명이 자살한 후, 충북 청주시 ‘청주네팔쉼터’의 활동가 판데이 수니타 씨(39)는 충남 논산의 수박 농장에서 일한다는 한 네팔 이주 노동자의 전화를 받았다. “허리가 아파서 더 이상 일하기가 힘들어요. (최근) 두 명 죽었으니까 한 명 더 죽으면 세 명 되겠네요. 나도 자살합니다.” 걱정이 된 수니타 씨는 해당 농장에 전화해 고용주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30분이 넘는 통화 끝에 고용주는 말했다. “내년 3월까지만 참고 일합시다.”

기자명 대구·최진렬 (〈시사IN〉 교육생)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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