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게이트의 한 축 삼성 범죄가 공인됐다
  • 김은지 기자
  • 호수 520
  • 승인 2017.08.29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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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8월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는 뇌물공여 등 5가지 혐의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삼성 뇌물 사건’ 관계자 전원에게 유죄가 나왔다.

ⓒ정리 김은지 기자
디자인 최예린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8월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는 뇌물공여 등 5가지 혐의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위의 표 참조).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부회장)과 장충기 전 차장(사장)도 각각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대한승마협회 회장과 부회장을 지낸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과 황성수 전 스포츠기획팀장 또한 유죄판결을 받았다. ‘삼성 뇌물 사건’ 관계자 전원에게 유죄가 나왔다. 이로써 ‘박근혜 게이트’의 두 축 중 하나인 삼성의 범죄가 일차 공인됐다. 

ⓒ연합뉴스박영수 특별검사가 8월7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결심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을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 본질이다”라고 정의했다. 정경유착이라는 박영수 특검팀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삼성이 최순실씨의 독일 회사 코어스포츠에 돈을 입금하고 말 세 마리(살시도·비타나·라우싱)를 사준 금액을 합친 72억9427만원을 뇌물로 인정했다. 또 최순실씨가 설립을 주도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로 보낸 후원금 16억2800만원도 뇌물이라고 판단했다. 

뇌물죄의 핵심은 주고받기다. 대가를 바라고 금품을 건넸다는 사실이 입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 측은 1심 재판 내내 무죄를 호소했다. 모르는 일이거나 강요를 당한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삼성 쪽 변호인의 논리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이재용 승계 작업에 핵심으로 꼽힌 국민연금공단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찬성은 박근혜·이재용 2차 단독 면담(2015년 7월25일) 이전에 일어났다. 가장 큰 현안이 해결된 이후에 이루어진 면담이므로 청탁과 뇌물을 주고받기로 약속한 자리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둘째, 박근혜·최순실 관계를 특검이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제3자 뇌물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경제공동체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데 관련 증거가 부족하다는 변론을 펼쳤다. 

1심 재판부는 삼성 쪽 변호인이 원하던 세세한 다툼에 갇히지 않았다. 대신 사건의 본질에 접근했다. 이재용 승계 작업은 삼성의 ‘포괄적 현안’이었으므로, 개별 사건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종합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봤다. 2014년 5월10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쓰러지면서부터 삼성은 조직적으로 승계 작업에 힘썼다. 박근혜 전 대통령 또한 이에 관심을 보였다는 증거도 여럿 나왔다. 안종범 업무수첩, 김영한 업무일지, 대통령 말씀자료, 청와대 캐비닛 문건 등이다. 두 사람의 첫 번째 단독 면담이 있던 2014년 9월15일부터로 시간대를 넓혀 주고받은 것을 보아야 한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2015년 7월의 2차 단독 면담만 놓고 따지자는 변호인의 전략이 통하지 않았다. 

첫 단독 면담 이후 박근혜 정부는 △삼성SDS 및 제일모직의 유가증권 시장 상장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합병에 따른 신규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한 삼성물산 주식 처분 최소화 등을 지원했다. 이는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삼성생명 지배력을 확보하도록 돕는 효과를 냈다. 동시에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유라씨의 승마를 지원하고 한국동계영재스포츠센터를 후원하라고 삼성에 요구했다. 양쪽이 주고받은 대가와 청탁이 명확하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연합뉴스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법정을 나서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피해자’ 변론 펴다 모두 실패


변호인단의 두 번째 논리인 ‘박근혜·최순실 경제공동체 입증 실패’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재용과의 독대에서 승마 지원에 관심을 보이고 질책하고 △삼성에 대한승마협회 임원을 바꾸라고 요구하고 △승마 지원이 이뤄진 후에는 삼성에 고마움을 표하고 △최순실에게 삼성이 승마를 어떻게 지원하는지 계속 전달받고 △최순실의 독일 생활이나, 승마 지원과 관련된 주변인들의 인사를 직접 챙긴 점 등을 종합해 결론 내렸다. ‘경제공동체’라는 프레임에 얽매이지 않고, 둘 사이에 승마 지원을 둘러싼 공모가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중심에 두고 종합적으로 판단했다. 다만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낸 출연금 220억2800만원은 뇌물로 보지 않았다. 전경련 주도하에 다른 기업도 함께 출연한 터라, 삼성이 승계 작업을 위해 더 내놓은 대가로 보기 힘들다고 봤다.

ⓒ연합뉴스정유라씨는 공판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증언했다. 유죄판결을 이끌어낸 다수의 증언이 정씨에게서 나왔다.

결국 유·무죄를 가른 핵심은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 지원이었다. 박근혜-삼성-최순실 뇌물 커넥션을 풀어가는 핵심 키는 ‘정유라’였다. 지난해 9월 사건이 처음 드러났을 때, 삼성은 정씨를 지원한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코어스포츠로 직접 돈을 보낸 기록이 나왔다. 삼성의 스텝은 꼬였다. 삼성은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로서 정당한 지원이었다고 후퇴해 방어하려 했다. 하지만 이 또한 설득력을 잃었다. 코어스포츠가 정유라씨 외에는 지원한 선수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삼성은 또 말을 바꿨다. 박 전 대통령의 강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지원이라고 했다. 재판 마지막에는 박 전 대통령도 아닌 최순실씨의 강요였다는 주장으로까지 후퇴했다. 결국 이런 ‘피해자’ 변론 논리는 모두 실패했다.

1심 재판부는 범죄수익 은닉 혐의에 해당하는 ‘말 세탁’ 부분도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지난해 9월 박근혜 게이트 초기까지도 삼성과 최순실씨는 덴마크인 말 중개상을 끼고 거래를 진행했다. 삼성-덴마크인 말 중개상-최순실로 이어지는 말 세탁(비타나→블라디미르, 살시도→스타샤)을 하며 최순실씨 쪽에 이득을 주었다. 삼성은 재판 내내 이 모든 사실을 부인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위증 혐의 또한 정유라씨 관련이었다. 지난해 12월6일 국회 국정조사 증인으로 출석해 정씨를 모른다고 한 답변 등이 유죄로 인정됐다.

정유라씨는 공판 과정에서 적극 증언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 번에 걸쳐 증인 출석을 거부했고, 증인으로 나온 최순실씨는 증언을 거부했다. 정씨 또한 증인 출석이 불투명했다. 7월2일 공판 직전까지 정씨의 변호인은 정씨가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는다고 알렸다. 정작 7월2일 새벽에 집에서 나온 정씨가 특검에 신변보호까지 요청하며 증인으로 출석했다. 삼성 승마 지원의 수혜자인 정씨 입에서는 다수의 증언이 나왔다. “어머니(최순실)한테 ‘삼성이 지원한 말을 네 말인 것처럼 여기고 타라’는 말을 들었다” “코치가 삼성에서 돈이 안 들어온다고 짜증 낸 적이 있다. 녹취도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유라씨를 직접 언급했다는 7월7일 법정 증언도 나왔다.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박상진 전 사장이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직접 연락해 정유라를 2020년 도쿄 올림픽에 나갈 수 있게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삼성이 지원을 할 것이다’라고 내게 말했다”라고 증언했다. 

최순실로 드러난 박근혜 정부와 삼성의 검은 커넥션은 정유라를 매개로 이루어졌다. 이 초대형 정경유착의 유죄판결을 이끌어낸 핵심 키 역시 정유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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