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8월2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법정을 나서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지난 3월3일 박영수 특별검사는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삼성 뇌물·블랙리스트 재판은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 세기의 재판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특검과 삼성, 양쪽의 공방이 재판 내내 치열했다. 공판준비기일을 제외하고 결심공판까지 열린 재판이 53회. 증인으로 출석한 이만 59명에 이른다. 4월7일 첫 재판이 열린 이후 141일째인 8월25일, ‘이재용 재판’ 1심 선고가 났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이 선고되자 외신들도 긴급 속보로 보도했다. ‘세기의 재판’이 열리기까지 과정을 특검 공소장, 공판 과정, 1심 판결 등 관련 자료를 참조해 재구성했다(직책은 시점 당시를 기준으로 삼았다).

ⓒ연합뉴스2014년 5월10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왼쪽)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경영승계 작업에 속도가 붙었다.

2014년 5월10일로 돌아가보자. 이날 이건희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이건희 회장의 와병이 알려지자 언론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과 경영승계 작업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을 쏟아냈다. 삼성그룹의 취약한 지배구조를 이유로 들었다.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3.38%.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은 0.57%였다(2013년 말 기준). 이재용 부회장은 에버랜드(현 삼성물산, 25.10%)와 삼성SDS(11.25%)를 중심으로 지분을 보유했고, 삼성전자 지분은 미미했다. 이재용 부회장으로서는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어떻게든 강화해야 했다. 이건희 회장의 지분을 상속받는다고 해도 내부 지분율이 낮기는 마찬가지였고, 상속세가 약 8조원으로 추정됐다. 삼성전자의 지분을 직접 늘리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건희 회장 일가가 삼성생명과 삼성물산 등을 통해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지배구조도 문제였다. 특히 삼성생명을 경유한 지배력 행사는 금산분리 등 법률적 논란을 안고 있었다(8월16일 참여연대 토론회 이상훈·김도희 변호사 발제문). 3세 승계와 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고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미 2013년 하반기부터 합병 등 그룹을 재편하는 지분 정리 작업이 많아졌던 터였다.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의 와병 이후 이재용 부회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3차례 단독 면담을 가졌다. 2014년 9월15일, 2015년 7월25일, 2016년 2월15일이었다. 1차 단독 면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삼성이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맡아달라’고 요구했다. 삼성은 한화로부터 회장사를 넘겨받았고, 2015년 3월에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협력 사장이 대한승마협회 회장에 취임했다. 


대통령과 2차 면담 이후 키워드는 ‘정유라’

1차 면담과 2차 면담 사이인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계획이 발표되었다. 제일모직이 1대0.35 비율로 삼성물산을 합병하는 방식이었다. 통합회사명은 삼성물산으로 정해졌다. 합병을 통해 이재용 부회장은 합병 후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16.5%)가 될 수 있었다. ‘이재용 재판’ 1심 판결에 따르면, 이 합병으로 ‘지분 취득을 위한 현금 출연 없이도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주력 계열사인 삼성물산에 대한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이 강화되는 효과’가 발생했다.

ⓒ연합뉴스8월22일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위)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아래)이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2심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15년 7월10일 옛 삼성물산(11.2%)과 제일모직(4.8%)의 지분을 갖고 있던 국민연금공단은 합병에 찬성했다. 당시 헤지펀드 엘리엇이 합병 반대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국민연금공단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가 주목되는 상황이었다. 2015년 6~7월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조남권 복지부 연금정책국장에게 “삼성 합병이 성사됐으면 좋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 또한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전문위원회 대신 내부 투자위원회에서 심의해 합병 찬성을 의결하도록 했다(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홍완선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은 국민연금 투자위원회 위원들에게 합병 찬성을 지시해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쳤다(업무상배임). 2017년 6월8일 문형표·홍완선 두 사람은 1심 재판에서 각각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재용 재판’ 1심 판결에 비추어 특히 주목해볼 시기는 2015년 7월25일 2차 단독 면담과 그 직후다. 키워드는 ‘정유라’다. 삼청동 ‘안가’에서 있었던 2차 단독 면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승마 관련 지원이 부족하다. 삼성이 한화보다 못하다’고 질책했다. 대한승마협회 임원 두 명을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 직계 직원들로 교체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시사IN〉이 단독 입수한 안종범 업무수첩에는 이 면담과 관련한 대목이 적혀 있다.  ‘7-25-15 VIP-①’ 부분의 삼성이라는 이름 옆에는 ‘1. 제일기획 스포츠담당 김재열 사장→빙상협회 후원, 메달리스트 지원 2. 승마협회 이영욱(이영국의 오기) 부회장 권오택 총무이사, 김재열 직계 전무로 교체?’라고 되어 있다(〈시사IN〉 제487호 ‘이재용 영장의 스모킹 건, 안종범 업무수첩’ 기사 참조).

‘이재용 재판’ 1심 재판부는 이 시기에 ‘대통령의 승마 관련 지원 요구가 정유라 승마 지원 요구이고, 그 배후에 최순실씨가 있다는 것을 삼성이 알고 있던 것’으로 판단했다. 2차 단독 면담 이틀 뒤인 7월27일 대한승마협회 임원 두 명이 교체되었고,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이 독일로 출국했다. 박상진 사장은 최순실의 독일 회사인 코어스포츠와 용역대금을 지불하는 형식의 계약을 체결했다. 2015년 9월부터 몇 달에 걸쳐 36억여 원을 송금했다. 또 삼성 측은 2015년 10월부터 2016년 2월까지 최순실씨 대신 말 구입 비용을 마주 등에게 지급했다. 용역대금 명목 송금, 말 구입 비용 등 승마 관련 지원금은 72억여 원에 이른다. 1심 재판부는 이를 뇌물로 인정했다. 뇌물로 인정한 88억여 원 가운데 비중이 크다.

 

2차 단독 면담 때 또 다른 이슈는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이하 동계영재센터) 지원 건’이었다. 최순실씨는 동계스포츠 선수를 육성한다는 명목으로 정부 예산을 배정받고 기업의 지원을 받기 위해 2015년 7월14일에 동계영재센터를 설립했다. 면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이 동계영재센터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구체적으로 요구했다. 대통령은 동계영재센터가 사실상 최순실의 사익추구 수단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고, 삼성 측도 이 동계영재센터가 정상적인 비영리 공익단체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삼성은 2차 단독 면담 이후인 2015년 10월2일 5억5000만원을 동계영재센터로 송금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3차 면담(2016년 2월15일) 때도 동계영재센터 추가 지원을 요구했다. 삼성은 2016년 3월3일 10억7800만원을 송금했다. 총 16억2800만원이 지급되었는데, 1심에서 모두 뇌물로 인정되었다. ‘이재용 재판’에서 뇌물공여가 인정될지 여부가 핵심이었는데, 승마 관련 지원과 동계영재센터 송금이 뇌물로 인정된 것이다. 뇌물공여가 인정되면서 횡령·재산국외도피·범죄수익은닉 등 혐의가 줄줄이 유죄판결이 났다.

승마 지원, 동계영재센터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돈이 건네진 것은 2016년 3월까지였다. 2016년 9월 ‘최순실 게이트’가 부각되지 않았다면 드러나지 않았을 ‘뇌물’이다.

2016년 10월24일 JTBC의 ‘최순실 태블릿 PC 입수’ 보도 이후 상황이 급격히 바뀌었다. 최순실 구속, 특별검사 임명으로 이어졌다. 12월6일 이재용 부회장이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야 했다. 당시 이 부회장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재단 출연 요구를 받았는지, 승마 지원 사실을 보고받았는지, 최순실·정유라를 알고 있었는지 등의 질문에 대해 ‘보고받지 못했고, 모른다’고 대답했다. 이러한 이 부회장의 증언 태도를 두고 ‘바보 전략’이라는 말이 세간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국회 청문회 증언은 그의 발목을 잡았다. 1심 재판에서 위증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었다.


구속영장 기각되자 2가지 혐의 추가해

ⓒ연합뉴스지난 5월23일 박근혜 전 대통령(맨 왼쪽)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첫 번째 공판에 출석해 최순실씨(맨 오른쪽)와 함께 앉아 있다.

1월12일 특검이 이재용 부회장을 피의자로 소환해 조사한 이후 몇 차례 반전이 있었다. 1월19일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특검이 위기에 몰리는 듯했으나 특검이 영장을 재청구했고 2월17일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특검이 재청구한 구속영장에는 뇌물공여·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 위반(위증)에 재산국외도피·범죄수익은닉 혐의가 추가되었다. 공판이 진행되는 중에도 뜻하지 않은 변수가 튀어나왔다. 당초 불출석하겠다던 정유라씨가 증인으로 출석해 ‘(최순실씨로부터) 말을 자기 것처럼 타라는 말을 들었다. 삼성이 말을 바꾸라고 했다고 엄마에게 들었다’며 폭탄 발언을 했다. 또 박근혜 정부 정무수석실에서 작성한 삼성 관련 문건이 ‘문재인 청와대’ 캐비닛에서 발견돼 추가 증거로 제출되기도 했다. 재직 시절 이재용 부회장과 세 차례 단독 면담을 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증인으로 세 차례 채택되었으나 모두 불출석했다.

8월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는 이재용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뇌물공여·횡령·재산국외도피·범죄수익은닉·위증 등 5개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일부 유죄를 인정했다.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은 각각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박상진 전 사장과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는 각각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에 처했다. 〈시사IN〉이 단독 보도한 ‘삼성 장충기 문자’ 증거도 재판부의 유죄 심증 형성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장충기 문자에는 이헌수 전 국정원 기조실장 등으로부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한 정보보고를 받은 정황을 비롯해 정관계와 언론계에 뻗어 있는 삼성의 영향력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시사IN〉 제517호 ‘장충기 문자에 비친 대한민국의 민낯’ 기사 참조). 재판부는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 사건의 본질이다”라고 밝혔다. “대한민국의 최고 정치권력자인 대통령과 대규모 기업집단이 관련된 정경유착이라는 병폐가 과거사가 아닌 현실이라는 사실로 인한 신뢰감 상실은 회복하기 쉽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삼성 측 변호인은 ‘즉시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1심 선고 이후 CNN, BBC, 〈가디언〉 등 해외 유력 언론은 온라인 톱뉴스로 ‘이재용 유죄’ 사실을 보도했다. ‘세기의 재판’ 1라운드가 일단락되었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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