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문화팀에 가라는 지시를 받고 처음 든 생각은 좀 근본적이었다. 나는 문화를 몰랐다. 영화, 문학, 음악 모두 남들 아는 만큼만 아는 내가 문화 기사로 월급을 받아먹을 만큼 능청스러울 수 있는지 자문했다. 하지만 내가 ‘문화팀일 때’에만 적용되는 질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서 군말 없이 따랐다.
〈미인도〉 논란을 취재할 때는 ‘문화 문외한’ 티가 많이 난 모양이다. 답을 해줘야 할 취재원들이 자꾸 내게 물어왔다. 미술 쪽 취재가 몇 년째인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는지가 단골 질문이었다. 법학 전공자의 첫 미술 기사라는 말에 취재원 대부분은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꾸 꼬리를 무는 질문을 던지며 나는 멋쩍어졌다.
더러는 은근히 얕잡아보기도 했다. ‘미술 취재 경력’을 묻는 대형 화랑 관계자에게 ‘처음’이라고 답하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미인도〉 문제란 게 굉장히 오래된 거라서…. 출입하는 기자님들은 다 (결론을) 안다.” 다른 취재원은 “미술판이 워낙 좁기에 출입하는 기자들의 면면도 거의 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설명이 쉽다”라고 했다. ‘다른 기자들은 다 안다’는 말이 못내 켕겼다. 의구심이 들었다. 다들 아는 문제가 30년 가까이 논란이 되다니?
천경자 화백의 딸 김정희씨는 달랐다. 오히려 “잘 모르는 기자가 더 좋다”라며 반가워했다. 4시간여 인터뷰를 마치고 관련 기사를 찾아보자 그 이유를 가늠할 수 있었다. 〈미인도〉가 가짜라는 천 화백 측 주장을 옹호하는 기사가 적었다. 김씨가 새로 낸 책도 단신으로만 다뤘다. 반면 진품 주장의 손을 들어주는 기사는 꾸준히, 심층적으로 나왔다. 문제는 그 근거다. 기본적 사실관계를 비틀거나 문장을 슬며시 꼬아놓은 보도가 여럿 있었다. 같은 논조의 기사를 계속 내놓은 몇몇 기자의 이름은 외울 정도가 됐다. 업계의 주장을 대변한 칼럼에도 이들의 바이라인이 달려 있었다.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이제 진위 논란은 그만하자’고 주장했다. 내게는 그 기사들이 진위 논란 자체보다 더 값싸 보였다.
기자가 사안을 다 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업계 사람을 많이 알거나 취재를 오래 하면 사안이 완전히 파악될까. 꾸준히 ‘업데이트’하지 않은 경험은 오히려 함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와 같은 하룻강아지가, 훗날 내 기사들을 보고 냉소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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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업계’에서 흔한 전공은 아니다 보니 종종 주목을 받는 편이다.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는다. 조직도 취재원도 내 전공을 듣고서는 비슷한 기대를 내비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