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막장 대결 뒤 시진핑의 고민
  • 남문희 기자
  • 호수 519
  • 승인 2017.08.24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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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미국이 ‘핵전략 무력의 맛’이니 ‘화염과 분노’니, 말 폭탄을 서로 주고받았다. 대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내부 권력투쟁까지 얽혀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지난 4월 미국의 시리아 폭격 효과는 컸다. 국제무대에 등장한 트럼프 대통령의 이미지를 이 ‘한 방’으로 결정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과 대비되는 강력한 이미지와 함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 불가능으로 인해 위험한 인물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당장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협상에서 효과가 나타났다. 웬만해서는 꿈쩍도 않던 시 주석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100일의 시간을 달라고 자청함으로써 스스로 함정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시사IN> 제506호 ‘4월 한반도 위기설 어떻게 지나갔나’ 기사 참조). 중국 나름의 절박한 사정도 있었다.

미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8월8일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fire and furry)’ 발언을 촉발시킨 것은 <워싱턴 포스트> 기사다. 북한이 미국 본토까지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에 소형 핵탄두를 장착하는 데 성공했다고 지난달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DIA)이 결론을 내렸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북한의 핵탄두 소형화 얘기는 어제오늘 나온 것이 아니다. 지난해 4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축구공같이 생긴 기폭장치를 공개한 뒤 본격 공론화되었다. 새삼스럽게 격노할 일도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폭격 이미지와 겹쳐 그의 ‘화염과 분노’ 발언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때마침 북한이 괌 포위타격 계획으로 응수하면서 위기감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EPA4월15일 태양절 열병식에 참석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AFP PHOTO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에 강력한 경고를 보내며 동시에 중국을 압박했다.
그 국면에서 8월11일(현지 시각)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전화 통화가 이뤄졌다. 당연히 북·미 간 긴장 국면의 진화를 위한 대화가 주로 이루어진 것으로 예상됐다. 중국 중앙TV(CCTV)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 주석은 “유관방면(有關方面:관련 있는 쪽)이 자제를 유지하고 한반도 정세 긴장을 더욱 격화시키는 언행을 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지칭하지 않았지만 그에게 자제를 당부한 것은 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중국이 한반도 핵 문제에서 발휘하는 역할을 충분히 이해한다”라며 시 주석의 얘기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문제는 그런 다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통화에서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따로 있었다. 8월12일 CNN이 미국 행정부 고위관료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과 통화하면서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 및 강제 기술이전 의혹과 관련한 조사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지시하겠다”라고 말했다. 8월14일 트럼프 대통령은 ‘통상법 301조’를 꺼내들었다. 그는 미국 무역대표부에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약 685조원)와 강제적인 기술이전 요구 등 부당한 무역 관행을 조사하도록 하는 내용의 대통령 각서에 서명했다.

트럼프의 히든카드, ‘통상법 301조’


통상법 301조는 1974년 제정한 통상법 가운데 불공정 교역에 대한 구제 관련 조항을 말한다. 무역협정 위반이나 통상에 부담을 주는 차별적 행위 등 불공정 무역 관행을 행사하는 국가에 대해 대통령이 단독으로 과세를 비롯한 각종 무역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미국은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고 WTO에 따라 무역 분쟁을 해결하기로 하면서 통상법 301조를 거의 적용하지 않았다. 지난해 대선 기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통상법 301조가 다시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이 많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원래 이 조치를 8월4일 발표하려 했다고 한다. 8월5일이 유엔안보리에서 대북 제재안을 의결하는 날이라 중국의 협조가 절실해 뒤로 미뤘다. 지난 7월4일과 7월28일 두 차례 있었던 북한의 화성 14호 미사일 발사에 대한 안보리 결의안 2371호는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원유 공급 중단은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빠졌지만 북한의 석탄·철광석·수산물 수출이 중단되고 신규 해외 노동력 수출도 불가능하게 됐다. 북한의 수출 총액 30억 달러 중 10억 달러가 날아가게 생겼다. 이 대부분이 북한과 중국 간 무역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중국의 협조가 중요했다.

ⓒEPA2012년 11월14일 폐막한 중국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 모습. 시진핑이 당 총서기 및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임명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꺼내든 통상법 301조 카드가 대북 제재와 관련한 중국의 협조를 끌어내기 위한 압박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의 보수지 <월스트리트 저널>은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로부터 시작된 말 폭탄의 실제 대상도 평양이 아니라 베이징이라고까지 분석해 보도했다. 이 신문 8월10일자 사설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사이의) ‘말의 전쟁’ 극장의 주요 관객은 베이징에 있다. 북한의 ‘생명줄’인 중국에 ‘전쟁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피하고 싶다면 강력한 대북 제재에 나서라’고 압박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다른 견해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진보 성향 온라인 매체 <아메리칸 프로스펙트>와 한 ‘작심 인터뷰’(현지 시각 8월16일)에서 밝힌 내용이다. 그는 먼저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군사 위협에 대해 “군사적 해법은 없다. 그건 잊어버려라”고 일축했다. 배넌은 “누군가 (전쟁 시작) 30분 안에 재래식 무기의 공격으로 서울에 사는 1000만명이 죽지 않을 수 있도록 방정식을 풀어서 내게 보여줄 때까지 군사 해법은 없다”라며 트럼프 정부가 대북 군사 옵션을 배제하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 폭탄이 실제로 빈 폭탄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그 역시 <월스트리트 저널> 분석과 같은 의견이다. ‘화염과 분노’ 발언이 향한 대상을 평양이 아닌 베이징에서 찾는 점에서도 견해가 같다. 다른 점은 전자는 대북 압박용 발언으로 본 데 비해 그는 미·중 간 무역전쟁의 신호탄으로 본다는 점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중국과의 경제 전쟁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열정적으로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배넌은 “우리가 계속 진다면 5년을 뒤처지게 된다. 내 생각에 10년이면 우리가 결코 회복할 수 없는 변곡점을 치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경제적 국수주의자’로 지칭한 그는 “우리 둘(미국과 중국) 중 하나는 25년이나 30년 안에 패권국(hegemon)이 된다. 우리가 이 길에서 쓰러진다면 그들이 패권을 잡을 것이다. 한반도에서 그들이 우리를 툭툭 치고 있지만 그건 단지 사이드쇼(sideshow:지엽적 문제)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배넌은 이번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와 강제적인 기술이전 요구 등 부당한 관행에 대한 조사 착수와 관련해서도 “첫걸음”에 불과하고, 향후 중국산 철강과 알루미늄 덤핑 문제에 대한 제소가 뒤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평양 조선중앙통신7월28일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대륙간 탄도미사일급 ‘화성 14호’를 시험발사했다.
일련의 보도와 배넌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8월4일 중국에 대한 지식재산권 침해 및 강제적인 기술이전 조사를 지시하려 했다. 이는 중국과의 경제전쟁의 첫걸음을 떼는 조치이고 통상법 301조 발동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튿날인 8월5일 유엔안보리에서 대북 제재안을 의결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협조가 필요해 뒤로 미뤘다. 그런데 의외로 중국이 안보리 제재에 매우 협조적이었다. 중국과 경제전쟁의 고리를 걸 명분이 없었는데 마침 <워싱턴 포스트> 기사가 빌미를 제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련의 말 폭탄은 처음부터 평양을 겨냥한 게 아니라 베이징을 겨냥한, 경제 전쟁에 시동을 걸기 위한 의도적 도발이라는 것이다. 배넌의 말을 빗대면 평양에 대한 말 폭탄은 ‘사이드쇼’에 불과하고 메인 게임은 바로 중국과의 경제전쟁인 것이다(논란이 일자, 8월18일 트럼프는 배넌을 경질하기로 결정했다).

그렇다고 대북 압박의 의미가 퇴색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일단 안보리 결의를 충실히 이행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중국으로서는 ‘화염과 분노’를 들먹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세와 통상법 301조를 앞세운 압박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중국이 북에 대해 제재 강도를 높여나가면 북한의 반발에 직면하게 된다. 지난 4월 위기를 거치며 북·중 관계는 한국전쟁 이래 최악의 상태라 일컬어질 정도로 악화됐다. 중국을 더욱 압박해 북·중 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하는 게 바로 미국의 숨겨진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지금 대북 제재를 강화하면 북한과의 관계가 깨지고 그렇다고 주춤하면 미국으로부터 무역보복을 당하는 처지에 빠진 셈이다.

장쩌민·후진타오 세력과 혈전 중인 시진핑

중국의 처지가 왜 이렇게 됐을까. 애초 시진핑 주석이 4월 미·중 정상회담을 서두른 것부터 잘못이었을지 모른다. 시진핑 주석이 서두른 이유는 11월 열리는 19차 당대회 때문이었다. 이번 당대회는 시진핑 주석이 당 총서기의 정년(68세)과 3선을 금지하는 당 규약을 깨고 5년 임기를 한 차례 더 연장할 수 있을지 가늠하는 시험대이다. 현재 중국 내부는 시진핑파와 장쩌민의 상하이방, 후진타오의 공청단이 뒤엉켜 혈전을 벌이고 있다.

특히 장쩌민파의 실세인 쩡칭훙 전 국가부주석의 원격 조정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궈원구이(郭文貴)라는 자산가가 지난 1월부터 망명지인 미국에서 트위터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시진핑 주석의 오른팔인 왕치산을 공격했다. 당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인 왕치산은 ‘범도 파리도 다 두들겨 잡는다’는 시진핑 주석의 반부패 투쟁 사령탑으로 정적들에게는 저승사자로 통한다. 시진핑 주석은 가을의 당대회에서 왕치산을 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유임시킨 뒤 내년 봄 설치될 국가감찰위원회 수장에 임명하려 했다. 시진핑 2기 체제를 떠받치는 기둥으로 왕치산의 ‘공포정치’를 계속 활용하려 한 것이다. 궈원구이가 왕치산 처가 쪽의 비리를 폭로하면서 반부패 투쟁의 명분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왕치산도 지난 5월 이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지난 7월13일 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차기 후계자로 유력했던 쑨정차이 충칭시 당 서기를 규율 위반 혐의로 연행했다. 결국 그가 후계 구도에서 탈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쑨정차이는 공청단의 원자바오 계열로 알려졌지만 실은 쩡칭훙의 추천으로 충칭시 서기가 되었다. 장쩌민파가 밀고 있다. 쑨정차이에 대한 공격은 왕치산 공격에 대한 반격이자 10월의 당대회에서 시진핑 주석파 후계자를 내세우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같은 중국의 권력투쟁과 트럼프 대통령의 인맥이 얽혀 있다는 점이다. 최근 외신 보도에 따르면 앞의 궈원구이는 해외 정보공작을 담당해온 마건 전 국가안전부 부부장의 측근이었다. 그는 마건이 실각하자 2015년 중국 고위층 관련 비밀자료를 싸들고 홍콩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 뒤 그가 트럼프 대통령이 소유한 마러라고 리조트 회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트럼프가와의 관계가 주목을 받았다. 이 밖에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장쩌민계의 쩡칭훙 쪽과 간접적으로 관계를 맺어왔다는 정황도 발견되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권력투쟁에 직접 개입하려 했다는 정보는 없다. 다만 시기적으로 지금이 가을의 당대회에 앞서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가 열린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매년 8월 베이징에서 동쪽으로 280㎞ 떨어진 보하이(渤海) 만의 휴양지인 베이다이허에 원로들이 모여 국정과 인사 방향을 논의하는 비공식 회의다. 올해처럼 당대회를 앞두고 열리는 베이다이허 회의에서는 각파의 원로들이 모여 차기 지도부의 인선 방향을 미리 정한다. 그래서 각 파벌의 이해가 첨예하게 충돌하곤 한다. 바로 그 회의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통상법 301조 카드를 들이민 셈이다. 시진핑 주석으로서는 썩 유쾌하지만은 않을 상황 전개다.

북한 역시 중국의 권력투쟁과 무관하지 않다. 당 서열 3위 장더장(張德江) 상무위원은 장쩌민파로 북한과 가깝다. 장쩌민은 1950년대 창춘 제1자동차공장에서 경력을 시작해 동북 3성과 인연이 깊다. 시진핑 주석은 집권 이후 장더장 직계 라인인 동북 3성 인맥을 약화시켜왔다. 중국 권력 내 친북 라인을 제거해온 것이다. 올 11월 당대회에서 장더장을 비롯해 류윈산(劉雲山), 장가오리(張高麗) 등 장쩌민계 원로들이 모두 정년에 걸려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물러나 세력이 약해지면 북한이 중국 내에 기댈 언덕이 사라진다. 19차 당대회를 앞둔 시진핑 주석의 권력 강화 움직임에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있다는 점 역시 흥미로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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