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를 일으킨 인사들의 해명 발언에는 한결같이 아들딸이 들어간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8월7일 공관병 학대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박찬주 제2작전사령관의 부인 전 아무개씨(사진)가 군 검찰에 출석했다. 아니나 다를까. 전씨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들 같은 마음에…”라고 답했다.
방송인 유병재씨의 말마따나 대한민국에서 아들딸로 살기 힘든 건 다 이유가 있었다. “딸 같아서 성희롱하고, 아들 같아서 갑질”하니까. EBS 〈극한직업〉은 이 ‘유명 인사’들의 아들딸을 섭외해야 마땅하다.
역시 섭외 대상 1순위는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가족이 아닐까. 박 전 의장은 2014년 골프장 캐디를 성추행한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유죄판결을 받았다. 당시 박 전 의장은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자식 언급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손녀까지 끌어들였다. “손녀 같고 딸 같아서 귀엽다는 수준에서 터치한 것이다. 손가락 끝으로 가슴 한번 툭 찔렀다.”
섭외 리스트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검색어로 ‘아들 같아서’ 혹은 ‘딸 같아서’를 넣어보면 된다. 정말 끝도 없이 나온다. 50대 남성 공무원은 “아들처럼 귀엽게 생각해서” 공익근무요원의 신체 주요 부위를 수십 차례 만졌다. 여경 숙직실을 드나들거나 회식 도중에 강제로 손을 잡은 경찰 간부 역시 “딸 같아서” 그랬고, 자신의 신도를 상습 성추행하고도 “부모가 아이들한테 하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 심지어는 며느리에게 입 맞추기 위해 “딸 같아서”를 언급한 시아버지도 있다.
상황이 이러니 채용 설명회에서 회사를 소개한답시고 ‘가족 같은 분위기’라고 하면 젊은이들이 식겁한다. 마음대로 모욕하고 추행하겠다는 선언처럼 들리기 딱 좋으니 채용 담당자들은 참고하시길 바란다. 그러고 보니 초일류 기업 삼성의 대표 슬로건이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는 게 떠오른다. 국립국어원은 가족 혹은 자식이라는 단어에 ‘막 대해도 되는 대상’ ‘소유물로 취급됨’이라는 의미 추가를 검토해야 하는 건 아닐까.
국가나 국민이나 민족이나 가족의 틀에 서로를 욱여넣지 않고 개인 대 개인, 사람 대 사람으로 존중하고 서로를 대하는 날이 오긴 올까. 그런 날을 조금이라도 가깝게 하려면 각박한 사회를 만들어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자식의 이름’으로 갑질당하고 성추행당하는 헬조선 청년들 모두 참지 말고 ‘퀵(quick) 고소, 노(no) 용서’ 하시는 날들 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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