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구

서울 신촌에서 홍대로 가는 언덕 위, 가게 앞 소담스럽게 쌓인 책이 사람들을 유혹한다. ‘머리 조심’이라는 경고까지 붙어 있을 만큼 책방 안은 소설, 만화책, 도록까지 수만 권으로 꽉 차 있다. 책방 안에 들어서면 공씨책방의 책방지기 최성장씨(72)가 손님을 맞이한다.

‘공씨책방’이라는 이름은 최씨의 형부이자 공씨책방을 연 공진석씨의 성을 딴 것이다. 공씨책방은 1972년 서울 회기동을 시작으로 1976년 청계천, 1984년 광화문네거리(현 세종대로사거리) 근처 새문안교회 맞은편을 거쳐 1991년부터 현재까지 신촌에 자리 잡고 있는 ‘1세대 헌책방’이다. 2014년 서울시는 미래 세대에 남겨주기 위해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보고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공씨책방이 유명해진 것은 1세대 헌책방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공진석씨의 박식함과 안목 덕분이다. 공씨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손님에게 양서를 추천해주었고 〈신동아〉 논픽션 부문에 당선될 만큼 책과 글을 사랑했다. 그는 세계에서 제일 큰 헌책방을 열고 싶어 했다. 그의 바람대로 공씨책방은 광화문 시절 ‘헌 교보문고’로 불리며 수많은 단골의 사랑을 받았다. 〈옛책사랑〉이라는 계간지를 발간해 책방을 이용하는 작가와 시인들의 글을 싣기도 했다. 최씨는 당시 공씨책방이 ‘한국 최초의 북카페’였다고 한다.

“고서적 찾으러 오는 대학원생부터 작가까지 책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자리였어요. 책 이야기를 하다가 탁자에 술판이 벌어지기도 했어요.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는 외국인 유학생들도 으레 우리 책방에서 자료를 찾았어요. 나중에는 공 선생님에게 ‘형님, 형님’ 하는 일본인 유학생도 많았어요.”

그런 공씨책방도 주변 재개발에 밀려 신촌으로 자리를 옮겼다. 1990년 공진석씨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옛책사랑〉도 9호를 끝으로 더 이상 나오지 못했다. 이때 책방을 신촌으로 옮길 것을 제안한 주인공이 단골이었던 박원순 변호사다.

지난해 가을 다시 한 번 공씨책방에 위기가 왔다. 바뀐 건물주가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300만원을 줄 수 없다면 나가달라’고 통보했다. 원래 내던 액수의 두 배를 웃도는 돈이었다. “몇 달 동안 손이 떨리고 눈앞이 캄캄하더라고요. 책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사람들 손때가 타고 사연이 담긴 건데 가게를 어떻게 정리하나 싶었죠. 꼼짝없이 나가야 되는 줄 알았어요.”

상황을 알게 된 단골들이 SNS에 사연을 올리면서 지난해부터 ‘공씨책방 반상회’를 조직해 대응에 나섰다. 이들은 책방을 지켜내기 위해 창고 정리를 돕고 버스킹·낭독 공연, 낭독회와 영화제 등을 진행했다. 재난학교를 열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이들이 함께 연대해 해결책을 모색했다. 특히 반상회의 도움으로 27년 만에 〈옛책사랑〉이 복간되기도 했다.

현재 새 건물주와 소송 중인 최씨는 “얼마 전 단골분이 와서 이야기하는데 민주화운동 때 금서를 저희 책방에서 숨겨주기도 했대요. 뉴질랜드로 이민 간 동포가 공씨책방을 기억하며 쓴 수필이 재외동포문학상 대상을 받기도 했고요. 공씨책방을 지켜야 다른 헌책방들도 쫓겨나지 않을 수 있어요. 지켜낼 겁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신동민 (〈시사IN〉 교육생)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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