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여름방학을 맞아 서울시 중구 서울도서관을 찾은 어린이들이 엄마와 함께 책을 읽고 있는 모습.

여름에는 어린이들이 더 빨리 자라는 것 같다. 매주 더 까매져서 독서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키도 지난주보다 커 보인다. 덥다고 얼음물을 재촉하고, 에어컨 앞에서 연신 부채질을 하면서도 어린이들은 밖에서 놀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더워서 아무데도 못 가요”라고 말하는 어린이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수영장이건 공원이건 일단 나가야 한다. 

바깥 활동이 많은 여름방학에는 동물들을 마주할 기회도 많다. 풀벌레며 다슬기며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면 손부터 뻗고 보는 어린이와, 위험하다고 말릴지 체험 삼아 함께할지 망설이는 어른들에게 〈동물을 제대로 잡는 방법〉(마쓰하시 도모미쓰 지음, 봄나무)을 추천한다. 부제는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게’. 잡히는 동물도 잡는 사람도 안전하게 접촉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동물 사진작가, 애완동물 전문점 운영자, 수의사 등 전문가들이 각자 동물 다루는 법을 소상히 설명한다. 소개되는 동물도 40여 종이나 되고 사진들도 생동감 넘쳐서, 동물을 좋아하는 어린이라면 단 한 페이지도 놓칠 수 없을 것이다.

메뚜기는 어디를 잡아야 될까? 앞가슴 양옆을 살짝 잡아야 한다. 날개가 돋아난 앞가슴이 가장 단단하기 때문이다. 장수풍뎅이는 큰 뿔이 제일 잡기 쉬워 보이지만 가슴 부위의 작은 뿔을 잡는 것이 안전하다. 큰 뿔은 위아래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나비를 손가락 끝으로 잡으면 날개에 상처를 입힐 수 있으니 반드시 집게손가락과 가운데손가락 사이에 날개를 끼워야 한다. 어른이 이런 설명을 읽으면 잊고 있던 손의 감각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도 있다.

야외에서 만나는 동물뿐 아니라 우리 주변의 익숙한 동물을 다루는 방법도 가르쳐준다. 햄스터는 목 주위를 잡아 몸을 고정시키면서 잡아야 한다. 귀여운 외모와 달리 공격성이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다람쥐 역시 사랑스러운 얼굴에 속으면 안 된다. 서로 익숙하지 않을 때는 목덜미를 잡아야 한다. 언뜻 잔인해 보이지만 그 부위는 사람의 팔꿈치 피부처럼 잡으면 늘어나기 때문에 다람쥐도 아프지 않다. 위급 상황에서 수의사가 환자(개·고양이·고슴도치 등)를 제압할 때 쓰는 방법은 반려동물이 있는 가정에 반드시 필요한 지식이다.

동물을 잡는 일은 때로 위험하기도 하다. 그런데 작가는 “맞으면 생각보다 아파요” “물리면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날지도 몰라요” 하면서도 자꾸 만져보기를 권한다. 낯설다고 두려워하고 선을 긋기보다 조금씩이라도 다가가는 것이 좋은 자연 교육이기 때문이다.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친절한 설명 덕분에 마음이 조금 달라질 것이다. 병아리를 잡을 때는 손가락 모양을 야구공 쥐듯이 만들어 살포시 몸을 감싸야 한단다. 사진만 보아도 손 안에 병아리 체온이 느껴지는 것 같다.

바깥에 나가지 않고도 모험을 할 수 있다. 〈정신 차려, 맹맹꽁!〉(하민석 글, 유창창 그림, 사계절)은 시원한 실내에서 뒹굴며 가족이 돌려보면 좋을 만화책이다. 어머니의 입원이 길어지자 아버지는 명규(맹맹꽁)를 삼촌에게 맡긴다. 나중에 자신이 도깨비라고 밝히기도 하지만, 그런 고백 없이도 삼촌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조카에게 아기용 관을 침대로 내주질 않나, 조카를 좁은 동굴에 밀어넣어 보물을 찾아오라고 닦달하고는 상황이 나빠지자 혼자 도망갈 궁리부터 하질 않나. 이 이상하고도 활력 넘치는 삼촌 덕분에 맹맹꽁은 반강제로 모험을 겪는다. 그러는 동안 맹맹꽁이 마음속에 오래 품었던 눈물과 두려움이 하나둘 터져 나온다.

어린이가 그리는 만화는 엉터리 같아도 나름의 서사가 있다. 천진하고 과감해서 힘이 넘친다. 이 작품이 딱 그렇다. 꿈속처럼 뒤죽박죽인 장면들이 이상하게도 이해가 된다. 그래서일까? 독서교실의 한 어린이는 “슬픈 건지 웃긴 건지 잘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건 확실해요”라고 평했다. 레트로풍 경쾌한 색감이 기운을 북돋우는 점도 좋다. 더 좋은 것은 어린이의 마음을 그리면서도 어른의 위로를 건넨다는 것이다. 어린이는 어른의 마음을, 어른은 어린이의 마음을 짐작해볼 수 있는 책이니 가족이 함께 읽자.

어린이의 마음을 그리고 어른의 위로를 건네는

〈꼬마 할머니의 비밀〉(다카도노 호코 글, 지바 지카코 그림, 논장)은 마음이 아니라 몸으로 다른 나이(세대)를 경험하는 이야기다. 저명한 옷 연구가 에라바바 할머니(84)는 겹쳐 입을 때마다 한 살씩 젊어지는 옷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효코르 할머니(68)와 나란히 여덟 살 어린이가 되기로 한다. 두 사람은 원하는 대로 여러 나이를 오갈 수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다. 허영심 많은 어른들을 혼내주고, 강압적인 선생님을 골탕 먹이며, 돈벌이에 눈이 먼 사장에게 그보다 소중한 것을 깨우치기도 한다. 통쾌한 작품이다.

이 이야기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두 사람이 어린 시절의 감각을 다시 느끼는 장면이다. 할머니들은 몸이 어린이가 되자 “조금 전까지 그러고 싶다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여서 서로를 간질이고, 좁은 방 안을 꺄악꺄악 소리치며 돌아다니고, 무턱대고 흔들의자에 뛰어오른다. 길을 걷다가 갑자기 풀을 뽑고 싶어지고, 그걸로 담벼락에 난 구멍을 막고 싶어진다. 그리고 물론 그렇게 한다. 어린이는 그러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두 사람의 모험이 그저 쉽지만은 않다. 스포일러가 될까 봐 밝힐 수 없는 어떤 사건 끝에 두 할머니는 너무너무 피곤해서 택시를 타고 싶어진다. 그러나 모험에 쓴 손수레를 끌고 가야 하기 때문에 축 늘어진 채 걸어가는 수밖에 없다. 어른의 수고, 어른의 고단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가족이 함께 이 책을 읽고 어린이는 어린이의 좋은 점을, 어른은 어른의 좋은 점을 말해보면 좋겠다. 독서교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외국으로 출장 가는 것, 까치발 안 하고도 버스 손잡이 잡는 것, 뭐 구경할 때 잘 보이는 것”이 부럽다고 했다. “실컷 뛰어노는 것, 방학이 있는 것” 때문에 어린이가 더 좋다면서 으스댔다. 이 여름에 자기들이 쑥쑥 자라고 있는 줄은 까맣게 모르는 얼굴로.

기자명 김소영 (〈어린이책 읽는 법〉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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