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일찍 떠난 두 독립 PD를 기억한다
  •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 호수 516
  • 승인 2017.08.0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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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촬영 중이던 독립 PD 박환성·김광일씨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박 PD는 생전 방송사 불공정 관행에 문제 제기를 했다.

지난 7월14일(현지 시각) E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촬영 중이던 독립 PD 두 명이 교통사고로 숨졌다. 박환성 PD와 김광일 PD는 7월14일 저녁 8시45분 남아공 프리스테이트에서 촬영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사고 당시 목격자 증언에 따르면, 두 PD가 탄 차량은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차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상대 차량 운전자의 졸음운전과 과속으로 추정된다. 두 PD는 EBS 다큐멘터리 <다큐프라임-야수와 방주> 제작을 위해 사고 일주일 전부터 남아공에서 촬영 중이었다. 당초 촬영 예정 기간은 한 달이었다.

사고가 난 지 사흘 뒤에야 이들의 죽음이 최종 확인되었다. 처음 사고 소식을 전한 이는 박환성 PD와 일하던 현지 코디네이터였다. 현지 코디네이터 바네사 루카스 씨는 “7월14일 금요일 밤 연락이 두절되어 현지에서 수소문하다 사고를 알게 되었다”라고 전했다. 바네사 루카스 씨가 박환성 PD와 동행하지 않았던 것은 제작비 때문이다. 해외 취재의 경우 코디네이터와 제작진은 늘 같이 다닌다. 특히 남아공처럼 치안이 불안한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코디네이터는 현지 섭외 및 통역을 담당할 뿐 아니라 치안 상황에도 밝다. 두 PD는 제작비를 아끼려고 꼭 필요할 때만 그를 고용한 것이다. 그들은 낯선 외국에서 직접 운전하고 코디네이터도 없이 촬영을 하다 참변을 당했다.

ⓒ김흥구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차려진 박환성·김광일 PD의 빈소에서 유가족들이 고인의 사진을 보고 있다.

EBS와 박 PD는 지난해 8월 <다큐프라임-야수와 방주> 2부작을 총 1억4000만원에 제작하기로 했다. 당초 박 PD는 2억1000만원의 제작비를 EBS에 요청했다. EBS는 1억4000만원만 지원했다. 제작비가 줄어들어 어려움을 겪던 박 PD는 지난 2월 한국전파진흥협회의 ‘차세대 방송용 콘텐츠 제작지원 사업’에 지원했다. 제작비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지원작으로 뽑혀 1억2000만원을 받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박 PD는 생전 “EBS 측에서 정부지원금 가운데 일부를 간접비로 요구했다”라고 주장했다. 간접비는 편성·송출·홍보를 명분으로 방송사가 협찬을 받은 제작사에 요구하는 비용을 말한다.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지원금 일부를 EBS 측에서 간접비로 요구하자, 박환성 PD는 이를 언론에 알리며 공론화했다. 그는 “콘텐츠 제작비로 써야 할 정부지원금을 EBS가 간접비로 귀속시키는 근거를 알려달라고 요구했더니, EBS가 계약 위반이라는 공문을 보냈다”라고 주장했다.


“정부 지원금 받아오니 EBS가 일부 요구해”

사실 방송사의 간접비 요구는 지상파나 종합편성채널, 케이블 방송사를 가리지 않고 방송사 전반에 걸친 오랜 관행이다. 독립 제작사나 독립 PD들은 방송사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방송사는 ‘갑’이었고, 독립 제작사나 독립 PD들은 ‘을’이었다. 박 PD는 오랜 관행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한국독립PD협회’는 지난 7월3일 성명을 내고 “미래창조과학부의 제작지원금을 사기업의 협찬금과 같은 범주로 해석하는 EBS의 입장을 공개하라”고 박 PD의 문제 제기에 동참했다. 생전 박환성 PD는 기자에게 공론화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내가 EBS와 싸우기로 한 것은 독립 PD들이 당한 일을 더 이상 참고 싶지 않아서다. 한국 방송 환경에서 독립 PD와 독립 제작사를 한다는 것은 방송사 앵벌이다. 이런 오랜 관행을 왜 참아왔던가. 이제는 제작 자체를 못할 한계에 와 있다.” 공론화에 앞장선 박 PD는 잠시 싸움을 중단해야만 했다. 그는 천생 PD였다. 올해 10월 방송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 남아공으로 촬영을 떠났다. 출국 일주일 만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한국독립PD협회 제공고 박환성 PD(오른쪽)가 촬영 현장에서 방송사 불공정 관행에 항의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박환성 PD는 <호랑이 수난사> <말라위, 물위의 전쟁> <소년과 코끼리> <아버지의 이름으로> 등을 연출한 국내에서 손꼽히는 자연 다큐멘터리 전문 PD다. 호랑이와 같은 멸종 위기종의 실상을 보여준 EBS <다큐프라임-호랑이 수난사>로 2011년 한국PD대상 작품상과 한국독립PD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런 명작 이면에는 늘 방송사와 제작비 싸움이 자리 잡고 있다. 아프리카 등지에서 8년간 박 PD와 함께 일한 한 PD는 “남아공에서 사자를 훈련시키는 장면을 촬영할 때 비용으로 우리 돈 500만원을 요구받았다. 그것도 단 몇 장면 촬영하는 비용이었다”라고 말했다. 동물 다큐멘터리는 코디네이터 비용도 상대적으로 비싸다. 사자나 호랑이 등 맹수를 카메라에 담아야 하기에 위험 부담이 크다. 영국의 한 프리랜서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자는 “보통 하루에 코디네이터 비용으로 700달러에서 1500달러까지 준다. 그것도 한 달 이상 계약을 체결하거나 선금을 주어야 한다. 동물 다큐멘터리는 제작비가 상당히 들어간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남아공에서 사자 다큐멘터리를 한 달간 제작한다면 비용이 대략 얼마나 드는가”라고 묻자, 그는 “최소한 30만 달러(약 3억3500만원)가 든다”라고 대답했다. 박 PD가 현지에서 코디네이터와 며칠간 동행하지 못한 이유다. 


한국PD연합회는 7월20일 ‘박환성 PD와 김광일 PD의 비보를 접하고’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특히 지상파와 외주사의 지나친 갑을 관계는 이 나라 방송 생태계를 건강하게 재편하기 위해서, 그리고 독립 PD들의 열악한 제작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대 사안이다”라고 지적했다. 송규학 한국독립PD협회 회장은 “모든 독립 PD들은 상주이다. 이들의 죽음으로 잘못된 방송계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아프게 실감한다”라고 말했다. EBS는 박환성 PD와 김광일 PD를 추모하기 위해 경기도 일산 신사옥에 임시 분향소를 마련했다. 또 EBS는 고인의 장례와 유가족 위로, 외주 제작 상생 방안 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7월25일 분향소를 찾은 우종범 EBS 사장은 “EBS 직원에 준하는 대우로 두 PD의 문제를 논의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 PD는 남아공 출국 전날 동료 PD들과 ‘EBS 및 방송사 불공정 계약 비상대책위원회(가칭·이하 비대위)’를 만들었다. 비대위 위원장 최영기 PD는 “박 PD가 만든 비대위는 장례 일정이 지나고 바로 행동에 나설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박 PD는 생전에 제작자들이 불공정 거래로 희생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 이제 살아남은 우리가 이 싸움을 계속할 것이다”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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