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국회의원이 파업에 참여한 학교 비정규 급식 노동자들을 “그냥 밥하는 동네 아줌마”라고 일컬어 논란이 됐다.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의 존엄을 무시한 이 언행은 당사자를 포함한 많은 이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아줌마’의 사전적 의미(다음 한국어 사전)는 ‘나이 든 여자를 가볍게 또는 다정하게 부르는 말’ ‘결혼한 여자를 일반적으로 부르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현실에서 아줌마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용법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아줌마라는 말이 생생한 의미를 갖는 것은 이런 대화에서다. “저 여자 누구야?” “누구긴. 그냥 아줌마지.”/ “요새 어떻게 지내?” “어떻게 지내긴, 그냥 아줌마지.” 아줌마는 ‘그냥’ 아줌마이다. 어떤 형용사도 불필요한 텅 빈 존재이다. 가볍고 다정한 호칭이 아줌마라니. 지나는 개가 국어사전을 읽고 웃을 일이다.

한국 사회는 ‘나이 든 여자’와 ‘결혼한 여자’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다. 다른 이들이 정당하게 요구하는 바를 그들도 요구하는 순간, “이 아줌마 왜 이래?”라는 반응이 나온다. 행여 과한 언행을 보이면 에누리가 없다. “역시 아줌마네”라는 힐난을 듣기 일쑤다. 아줌마라는 말에 밴 부정적 뉘앙스 때문에 일터의 동료나 지인을 제외한 모르는 중장년 여성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다.

그에 비해 남성은 사치를 누린다. ‘아저씨’도 어느 정도 부정적 뉘앙스를 띠고 있지만 아줌마만큼은 아니다. 길에서 누군가 나를 아저씨라 부르며 길을 묻는다면 별 불쾌감 없이 길을 가르쳐줄 것이다. 한국 남자들에게는 ‘개저씨’라는 비하적 호칭이 있지만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최신 용어이고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남자들은 또한 사회적 존칭 하나를 독점하는데 바로 ‘선생님’이다. 이를테면 모르는 중장년 남성과 시비가 붙었을 때, 화해 분위기를 만드는 주요 방법은 상대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모르는 중장년 여성을 선생님이라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만약 중장년 여성과 길에서 시비가 붙는다면 사람들은 어떤 호칭으로 갈등을 해소할까? 사모님? 누님? 어머님? 이런 호칭들은 또 다른 편견을 담고 있으며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더 꼬이게 할 것 같다. 혹은 이런 갈등 상황에서 애초부터 화해하려는 의지 자체가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요새 들어 자주 듣는 호칭이 있다. 바로 ‘사장님’이다. 남성이 남성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예컨대 주유소나 카센터에서 사장님이라는 호칭은 뚜렷이 자기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다. 얼마 전에는 식당에서 종업원을 부를 때에도 ‘사장님’이라 부르는 것이 적절한 존칭이라고 들었다. 종업원을 향한 모든 종류의 호칭에 담겨 있는 하대의 뉘앙스를 대체하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호칭이 사장님이라는 이야기였다. 꽤 설득력이 있었다.

어쩌다 불리는 호칭에 한국의 가부장주의 문화 담겨 있어

사장님이란 호칭이 별 저항 없이, 혹은 정당성을 가지며 확산해가는 이 기이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일단 한국의 자영업 비율은 매우 높다. 2014년 통계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 중 26%가 자영업자이며 이는 OECD 국가 중 4위에 해당한다. 모르는 사람을 사장님이라고 불렀을 때 정말 사장님일 확률이 꽤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영업 비중이 높은 다른 나라에서도 모르는 타인을 사장님이라 부르는 게 일반적 매너일 것 같지는 않다.

한국에서 모르는 타인을 사장님이라는 부르는 것은 ‘당신은 이윤을 추구하는 영리 조직의 대표처럼 보입니다’라는 사전적 메시지를 포함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사장님은 존중받을 만한 사람을 상징하는 대표 이미지이다. 요컨대 사실과 상관없이 돈이 많고 밑에 사람을 거느리는 인물로 대우해주는 것이 한국의 예절이다. 천민자본주의가 아니라 예절자본주의라는 신조어를 만들어야 할 지경이다.

한국에서 누구는 어쩌다 아줌마라 불리고 누구는 어쩌다 사장님이라 불린다. 이런저런 호칭들을 통해 여성은 너무나 쉽게 비하되고 남성은 너무나 쉽게 격상된다. 어쩌다 불리는 호칭 같지만, 별것 아니고 당연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사실 한국의 뿌리 깊은 가부장주의 문화와 기괴한 자본주의 발전사가 아로새겨져 있다.

기자명 심보선 (시인·경희사이버대학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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