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할 말은 소문뿐이었다. ‘선배’ 레즈비언을 찾고 싶었다. 10대 레즈비언을 다룬 다큐멘터리 〈이반검열〉(2005)을 찍고 있을 때였다. 아이들이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이영 감독에게 물어왔다. “그런데 30대에도 레즈비언 할 수 있어요?” 그 천진한 질문이 이 감독을 또 다른 질문으로 이끌었다. ‘내 선배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7월20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불온한 당신〉은 그 질문 속에서 태어났다.

노년 세대 성 소수자에 관한 자료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얻은 소문 한 자락을 들고 무작정 찾아다녔다. 현관문을 두드리며 물었다. “선배님, 제가 ‘바지씨’ 후배입니다.” 그 말을 알아채는 사람이 성 소수자였다. 아직 레즈비언이라는 말이 없었을 때에도 여자는 여자를 사랑했다. 불리는 이름이 달랐을 뿐이다. 남성적인 옷차림을 하고 다니던 이는 ‘바지씨’로, 여성적인 옷차림을 하고 다니던 이는 ‘치마씨’로 불렸다. 그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반바지’도 있었다. 이 감독은 그렇게 60명 가까운 노인 레즈비언을 만났다. 2009년 처음 만난 1945년생 이묵씨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시사IN 신선영이영 감독의 영화 〈불온한 당신〉은 7월20일 개봉한다.

“제가 이러이러한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너무나 흔쾌히 응하셨어요. ‘성 소수자 후배들이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사는 데 도움이 된다면 내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본인은 숨어서 사는 사람이 아니고, 나 자신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말이 제 삶의 지침이 됐어요. 영화 만드는 내내 그 말에 많이 기댔죠.”

이묵씨가 지내는 경기도 용인과 전남 여수를 오가며 긴 촬영이 시작됐다. 호박잎 찜을 가운데 두고 함께 밥을 먹었다. 청소를 돕고 간단한 밭일을 도우며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이묵씨의 부모 산소에도 성묘를 갔다. 무덤 앞에서 “어머니, 아버지…. 여기 기이한 동생들이 왔어”라고 촬영팀을 소개하며 이묵씨는 웃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성 소수자에게도 역사가 있었다. 택시운전사로 살았던 3년 남짓, 이묵씨는 서울 성북구 광덕주유소 2층에 있었던 ‘여운회(여자운전자모임)’ 회원이었다. 전국 주요 도시마다 지부가 있는 전국 조직으로 1980년대까지 이어져온 여운회를 사람들은 ‘여자깡패 모임’이라고 부르곤 했다. 한번 모일라 치면 어떻게 알고 경찰들이 구름떼처럼 따라붙었다. 그렇게 안면을 튼 ‘동지들’은 서로 대소사를 챙기는 사이가 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1960년대는 여성들이 사회생활하기 더 어려웠던 때잖아요. ‘바지씨’의 외모로는 더 심했겠죠. 그래서 외모와 복장에서 자유로운 택시운전사로 많이 진출했다고 해요. 당시에는 엄청난 고소득 전문직이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 오늘의 내가”

영화는 바지씨가 레즈비언으로 바뀌고, 이묵의 시대가 이영의 시대로 건너오는 세월을 섬세하게 교차해 보여준다. 변한 줄 알았던 세상은 성 소수자에게는 여전히 거대한 벽이었다. 전쟁위기설이 돌던 어느 날이었다. 이 감독과 친구들 역시 ‘만약 전쟁이 나면 어디서 만날까’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합정역 지하가 대피소라고 하더라고요. 거기서 만나자고 했는데, 한 친구가 그래요. ‘우리가 성 소수자인 거 알려지면 거기서 쫓아내지 않을까.’ 우리는 전쟁 나도 옥상에서 맥주나 마시다 죽자고 했는데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 현장에서 성 소수자들은 괜찮았을까….”

〈불온한 당신〉에는 노인 성 소수자가 전면에 등장한다. 생전 이묵씨(오른쪽)는 촬영을 흔쾌히 허락했다.

이묵씨를 찾기까지 무작정 발품을 팔았던 것처럼, 이영 감독은 이번에도 무작정 일본 후쿠시마로 갔다. 대규모 재난 상황에서 성별 이분법적으로, 가족 단위로 구획된 대피소에 성 소수자가 머물 공간은 없었다. 일본 내 성 소수자 단체의 도움을 받아 레즈비언 커플 논과 텐을 만났다. 한 달 가까이 두 사람의 집에 머물면서 그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친구를 찾아달라는 부탁은 들어주지 않아도 가족은 찾아주려 노력하는 재난 현장을 목격하며, 논과 텐은 가족이 되기로 결심했다. 서로를 지키기 위한 커밍아웃이었고, 커밍아웃이 곧 서로의 목숨이었다. 


그리고 카메라는 다시 이영 감독이 발 딛고 선 세상을 비춘다. 서울 성북구 인권조례, 서울시 인권헌장 제정을 둘러싼 갈등을 이영 감독은 카메라 너머로 묵묵히 지켜본다. 그사이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고, 세월호 유가족이 어떻게 ‘종북 게이’처럼 빨갱이 취급을 받는지도 담았다. 증오와 편견이 사회적 의견의 하나로 인정되는 후퇴의 과정을, 혐오 발언이 발화되는 현장을, 이 감독은 되도록 가감 없이 전하고 싶었다.

〈불온한 당신〉은 2015년 9월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다. 이후 각종 영화제에서 관객을 만나고, 여러 차례 수상하고, 해외 영화제도 다녀왔다. 정작 개봉은 하염없이 미뤄졌다. 돈줄을 쥐고 계신 ‘높은 분’들과 영화진흥위원회는, 성 소수자를 다뤘다는 것보다 영화 안에 세월호 이야기나 박근혜 전 대통령 반대 시위 현장이 담겨 있다는 걸 문제 삼았다. 블랙리스트에서 이 감독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한 동성애 반대 단체가 건 명예훼손 소송을 치렀고, 무혐의 처분을 받는 작은 소동도 있었다.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그 결과 정권이 바뀌면서 개봉은 싱겁게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러나 영화의 주인공이나 마찬가지인 이묵씨는 지난 4월 세상을 떠난 뒤였다. 자신의 평생을 흔쾌히 열어 내보이며 “어디 한번 히트를 쳐봐”라고 이 감독을 응원하던 이묵씨가 살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누구보다 기뻐하지 않았을까. 관객과의 대화(GV) 자리에 나와 특유의 유머로 관객을 휘어잡지는 않았을까. 이영 감독은 ‘이묵 선배님’을 생각하면 자꾸만 목이 멘다.

일생을 불온하다 취급받았던 한 인생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 오늘의 내가”라고 답한다. 그렇게 한 번도 공식적으로 기록되지 않았던 여성의 역사이자 성 소수자의 역사가 ‘대작’으로 뜨거운 7월의 영화관 틈바구니에서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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