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단기간에 이뤄진 정상회담이다.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취임 51일 만이다. 트럼프 정부는 대북 정책을 담당할 국무부 동아태 차관이나 차관보 등 실무진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다. 뭐가 그리 급했을까. 사드 배치 문제, 북핵 문제 등 현안이야 산적해 있다. 하지만 한·미 양국 사이에는 늘 현안이 적지 않았다. 먼저 정상회담을 서두른 이유로 7월7~8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담을 들 수 있다. 최대 동맹국이자 풀어야 할 현안이 산적한 한·미 정상의 첫 만남이 다자회의에서 잠깐 스치듯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연합뉴스6월30일(현지 시각)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백악관에서 단독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모두 발언 모습.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을 서두른 주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미국 측과 상의해야 할 시급한 현안, 바로 남북 관계와 관련한 부분이다. 미국과 의논이 필요한 것은 단순히 남북 사이 문제에 국한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북핵 문제 해법과도 연결될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북핵 문제를 총괄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대화가 필요했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 문제에 대해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다른 접근법을 취하리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의 ‘북핵 플랜’은 무엇일까? 앞의 소식통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미국 측에 남북 관계를 통해 북핵 문제에 접근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미국은 미국대로 문재인 정부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한·미 정상회담에서 입장을 내놓기 위해 그동안 부지런히 움직였다. 5월 초부터 오슬로, 평양 등지로 바쁘게 오갔던 조지프 윤 미국 6자회담 수석대표의 행적이 바로 이와 관련된다.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웜비어를 비롯한 미국 시민권자들의 석방 교섭뿐 아니라 한국 측이 제기한 문제에 대한 북한의 의중을 타진하려는 목적도 숨어 있었다. 6월30일(현지 시각)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그런 과정을 통해 정리된 미국 측 입장을 제시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미 정상 간 심도 깊은 논의 내용이 기자회견 외에 얼마나 공개적으로 알려질지는 알 수 없다. 양국 정상이 이미 전초전을 치르고 만난 만큼 논의의 향배는 짐작할 수 있다. 우선 몇 개의 점을 서로 이어볼 필요가 있다.

ⓒ연합뉴스6월28일 미국을 방문하기 위해 서울공항을 이륙한 후 문재인 대통령(맨 오른쪽)이 기내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첫 번째 등장하는 점(인물)은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다. 문 특보가 정상회담 전인 6월16일 워싱턴 우드로윌슨센터에서 ‘뜬금없이’ 던진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한·미 합동군사훈련 및 전략자산의 축소’ 주장은 허공에 떠버린 것처럼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학자로서의 개인 의견이라 축소했고 청와대도 공식 입장이 아니라며 부인했다. 그 대신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핵 동결을 통해 더 이상의 고도화를 막고 그다음 비핵화를 해야 한다는 북핵 2단계 해법의 포문을 열었다. 문 대통령이 제시한 이 2단계 북핵 정책의 핵심인, 먼저 플루토늄과 우라늄 등 핵물질의 추가 생산을 막자(동결)는 제안은 한국과 미국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미 공감대가 형성된 사안이다. 다만 지난 9년간 한국에선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미국에선 오바마 행정부가 외면한 제안이었다(〈시사IN〉 제511호 ‘선 동결·후 비핵화’ 한·미 정상 합의할까’ 기사 참조) 


한국도 미국도 북한도, 모두 동의하는 접점

때마침 두 번째 점(인물)이 등장한다. 서울을 찾은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회장이다. 그 역시 ‘비핵화는 비현실적’이라며 먼저 ‘동결부터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의 해법과 같은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분야 스승으로 알려진 하스 회장과 문재인 대통령 간의 6월21일 청와대 회동은 한·미 정상회담의 사전 조율이란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하스 회장을 만난 뒤 문 대통령의 ‘선 동결·후 비핵화’라는 2단계 북핵 해법에 더욱 힘이 실렸다. 6월28일 오후(한국 시각) 문 대통령은 워싱턴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2단계 해법 과정에서 제기될 수 있는 여러 반론에 대해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5월15일 북한이 신형 지상대지상 중장거리 미사일 ‘화성12형’을 시험 발사했다.
북한 〈노동신문〉이 보도한 발사 직후의 ‘화성12형’ 모습.

마지막 세 번째 점(인물)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장웅 북한 IOC 위원이다. 문 대통령은 미국으로 향하기 전인 6월24일 무주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북한 태권도 대표단과 장웅 IOC 위원도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대회 연설에서 내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의 참가와 남북 단일팀 구성을 제안했다.


‘문정인’ ‘하스’ ‘장웅’은 서로 별개의 점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한 남북 관계 개선, 그리고 북핵 해법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먼저 문정인 특보의 제안을 좀 더 살펴보자. 그가 축소를 언급한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열리는 시점은 매년 3월이나 4월이다. 내년 2월9~25일 열리는 평창 동계올림픽 직후다. 내년 3월이나 4월에도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예년처럼 진행될 경우, 북한은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 남북 단일팀 구성은 고사하고 참가 자체를 거부할 것이다. 내년 3월의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축소하거나 생략하는 문제는, 이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국제적인 대북 제재 국면에서 현재 남북은 스포츠 교류 정도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뜬금없어’ 보였던 문정인 특보의 한·미 합동군사훈련 축소 발언은 문재인 대통령의 평창 동계올림픽 북한 팀 참가 제안의 성패를 좌우할 중요한 문제였던 것이다.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축소 내지 조정 문제는 보통 훈련 시작 4~5개월 전에 결정되어야 한다. 내년 3월에서 역산하면 올해 10월 말에 열리는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보통 한·미 SCM에 양국의 군 참모총장이 참석하므로 이때 결정하는 게 제일 좋다. 그런데 그런 중차대한 문제를 군부 간 대화에만 맡길 수도 없다. 즉 이번 한·미 정상회담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내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팀이 참여하는 문제, 이를 위한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조정, 또 이 조정을 위한 한·미 SCM 등 결국 양 정상의 사전 조율이 현시점에서 필요한 셈이다.

 

ⓒ연합뉴스6월24일,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2017 무주 WTF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막식에서 북한 태권도(ITF) 시범단 및 대회 관계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의 이 같은 구상을 미국은 받아들일까?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축소나 중단에 맞춰 북한 역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시험 중단을 선언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오는 10월 한·미 SCM에서 미국 측이 훈련 축소에 동의해주면, 북한을 설득해 올림픽 기간에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중단을 요구할 명분이 생긴다. 문재인 대통령은 실험 중단과 훈련 중단을 연계하는 것은 정부 입장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문정인 특보의 발언 뒤 미국 반응을 살피는, 완충의 여지를 두기 위한 기술적 표현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얘기한 동결에서 비핵화로 이어지는 2단계를 더 상세하게 나누면 ‘유예(모라토리엄)-동결-불능화-비핵화’의 4단계이다. 동결에 앞선 유예 단계가 흔히 얘기하는 실험 내지 도발 중단 선언 단계인 것이다. 중국 측이 주장하는 ‘쌍잠정(보통 쌍중단으로 번역)’이 바로 그것이고, 북한이 2015년 1월9일 주장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지난 6월21일 계춘영 인도 주재 북한대사가 다시 한번 언급한 내용이기도 하다. 계춘영 북한대사는 인도 방송 위온(WION)과 인터뷰하면서 “미국 측이 잠정적이든 항구적이든 대규모 군사훈련을 완전히 중단하면 우리 또한 (핵과 미사일 실험을) 잠정적으로 중단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리처드 하스 회장이 이끄는 미국외교협회(CFR)가 지난해 9월18일 발표한 북핵 문제 특별보고서에 나온 내용이기도 하다. CFR 보고서에는 미국 협상 재개를 위해 북한에 요구할 사항 중 하나로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실험 중단(모라토리엄)을 제시했다. 러시아 역시 이 방안을 지지한다. 즉 북한, 중국, 러시아, 한국 그리고 미국의 초당파 북핵 보고서에서 모두 지지하는 방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분야 스승이라는 리처드 하스 회장이 서울에 와서 같은 얘기를 한 것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도 이 방안에 공감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이 구상의 실현에 걸림돌은 무엇일까? 당장 북한이 모라토리엄을 실제로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미국 내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도 변수이다. 이들은 미국의 대북 정책 수립에서 상수이다. 군산복합체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북한과의 적대적 긴장 상태가 유지되기를 희망한다. 북한과의 스톡홀름 1.5트랙 대화를 하고 돌아온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이 6월22일자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기고문에도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가 일부 포함되어 있다. 그는 북핵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선제타격보다 대북 제재 강화로 김정은 정권의 붕괴를 앞당기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한·미 동맹 확인하고 북핵 공동 대응 약속

미국 내 군산복합체는 북한만이 아니라 러시아, 이란, 시리아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즉 적대 관계를 통해 무기 장사를 해온 이들을 트럼프 대통령도 썩 좋게 보고 있지는 않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에 이라크 전쟁 비판, 주한·주일 미군 철수 가능성, 나토 폐지론, 그리고 러시아·북한과의 관계 개선 등 군산복합체의 이해와 충돌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트럼프는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카드를 바탕에 깐 최대의 압박을 가한 뒤 북한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면 최대한 관여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4월 상원 의원을 백악관에 초청해 발표한 ‘최대의 압박과 최대의 관여’ 정책이 그것이다. 지난 4월15일 김일성 주석 생일에서 4월25일 인민군 창설기념일 사이 6차 핵실험 없이 넘기자,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대화 용의를 밝혔을 때가 바로 압박에서 관여로 넘어갈 시기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과 대화 발언이 있은 뒤 군산복합체의 입김으로 워싱턴의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한다. 5월3일 대북 정책에 대한 국무부 설명회에서 틸러슨 국무장관은 결국 ‘압박전술’이라는 대북 정책이 북한이 비핵화를 결심할 때에만 대화를 한다는 전제조건을 무시한 것이 아님을 누누이 설명해야 했다. 즉 북한과의 관계는 ‘선제공격을 통한 전쟁도 대화도 아닌 제재를 통한 긴장 상태가 최선’이라는 것이다.

 

ⓒ연합뉴스우드로윌슨센터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는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왼쪽). 한국을 방문한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회장(오른쪽).

한국의 보수 세력 중 일부는 최근 사드 배치 문제에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진 워싱턴 기류에 일부 기대감을 갖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곤경에 처하길 은근히 바라기도 했다. 그러나 한·미 ‘외교 채널’ 사이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사드 문제가 쟁점이 안 될 것이란 얘기는 정상회담 준비 초기부터 나왔다.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정상끼리 만나기 전에 (사드 문제) 다 털고 간다는 사전 조율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의 말은 방미 기자단과 인터뷰한 백악관 고위 관계자의 말에서도 확인됐다. 백악관 관계자는 “사드와 관련해서는 이미 엄청나게 잉크를 엎질러놓았다. 두 정상 누구도 이 문제를 논의의 중심에 놓고 다룰 것으로 보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첫 정상회담이니만큼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확인하고 북핵 문제에 대한 공동 대응을 약속하며 오랜 기간을 함께할 두 정상의 우의와 친목을 도모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단독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무역 협정을 재협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 개인적 관계도 매우 좋다”며 북핵 문제와 관련해 “우리는 많은 옵션을 논의하고 있다. 북한과 관련해 많은 옵션을 가지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밤 트럼프 대통령과 만찬에서 북핵 문제를 비롯한 상호 관심사에 대해 허심탄회하고 폭넓게 논의했다”라고 말했다. 오는 10월 한·미 SCM 회의부터 이 교감이 실제로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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