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를 피해 공기 맑은 지역으로 떠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공기 난민’이라는 글자 앞에서 한동안 멍했다. 페트병에 외국 공기를 담아 판다는 중국의 상황이 한국에서 벌어질 날도 멀지 않았구나 싶었다. 식물을 주제로 실내외 조경·인테리어·전시·제품 제작을 하고 있는 플랜트 디자인 스튜디오 ‘슬로우 파마씨(slow pharmacy)’의 이구름 대표는 ‘우리 방식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골몰했다.

ⓒ시사IN 조남진7월9일까지 서울 한남동 ‘서플라이 서울’에서 〈에어 컨테이너〉 전시가 열린다.

이구름 대표가 기획한 〈air container (에어 컨테이너)〉전(展)에서는 그야말로 초록을 마음껏 경험할 수 있다(서울 한남동 ‘서플라이 서울’에서 7월9일까지 열린다). 우거진 식물 사이에 놓인 푹신한 소파는 관람객이라면 누구나 앉을 수 있다. “전시라고 하니까 뭔가 엄청 거창해 보이는데 잠깐이나마 아무 생각 하지 않고 조용하게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사색할 수 있는 공간, 걱정 없이 숨 쉴 수 있는 공간…. 이런 콘셉트를 생각했어요.” 


작은 화분 하나쯤 당장 시작하기

3년 전 ‘식물을 처방한다’라는 의미를 담아 슬로우 파마씨를 론칭할 때도 비슷한 문제의식이 있었다. 이 대표는 광고 디자이너로 정신없는 20대 후반을 보냈다. 번아웃(소진) 후에 몰려오는 정신적 허기 때문이었을까. 이끼로 만들어본 테라리움(밀폐된 유리그릇이나 작은 유리병 안에 식물을 재배하는 일)을 오래 들여다보는 날이 많아졌다. “이끼가 ‘침착해’라고 말하는 거 같았어요. 가만 생각해보니까 침착해라는 말 안에는 ‘착해’라는 말이 들어 있잖아요?(웃음) 나는 느리거나 뒤처진 게 아니라, 착한 거야. 침착해도 괜찮아, 그 안에 착한 게 있어…. 바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내가 식물을 통해 경험한 위로를 알려주고 싶었어요.”

이 대표의 말처럼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았던 걸까. 식물이 사람들의 삶 속으로 성큼 들어왔다. 한 홈쇼핑 채널에서는 한 달이면 아홉 차례 이상 ‘공기 정화 식물 6종 세트’를 방송한다. 식물(Plant)과 인테리어(Interior)의 합성어인 ‘플랜테리어’나 ‘반려식물’이라는 말 역시 널리 쓰인다. 겨우 1~2년 사이에 생긴 일이다. 세계적 색채 기업 팬톤은 2017년 트렌드 컬러로 ‘그리너리(Greenery)’를 선정하기도 했다. 청자 화분에 분재를 하거나 난을 치던 ‘어르신의 취미 생활’은 이제 조금 더 대중적이고 가벼운 하나의 취향이자 생활방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한때 도시농부를 꿈꿨던 이들의 베란다 텃밭은 실패하기 일쑤였지만, 작은 화분 하나쯤이라면 당장 시작하기에도 부담이 덜하다. 그렇게 집안으로 들인 식물이 공간의 표정과 풍경을 바꾸는 순간을 경험한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업 의뢰가 많이 들어와요. 그래도 한편으로는 식물이 있는 공간이 행복한 곳이라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가고 있구나 싶고요.”

식물이나 꽃이 수명을 다하고 버려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유용하고 아름답게 활용할 수 있는지, 또 반려식물로 어떤 인테리어를 할 수 있는지를 직접 구현해 보여주는 공간으로 운영되는 쇼룸도 있다. 2년 전 문을 연 서울 연남동의 ‘벌스(VERS)’가 바로 그런 공간이다. 카페도 겸하고 있는 이곳에서는 직접 기른 허브로 만든 음료를 판매하기도 한다. 주 업무는 고객 의뢰를 받아 진행하는 가드닝 디자인이지만 “벌스의 본질적인 정체성은 ‘식물병원’이다”라고 김성수 대표는 말했다.

ⓒ시사IN 조남진서울 연남동의 ‘벌스’는 반려식물 인테리어를 볼 수 있는 쇼룸 겸 카페다. 김성수 대표는 “이 공간의 본질적인 정체성은 식물병원이다”라고 말한다.

김 대표의 20대는 배우로 살기 위해 안 해본 일 없이 보낸 시간이었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겠다고 생각했을 때 떠난 일본 여행에서 집집마다 개성 있게 꾸며둔 자그마한 개인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정원이라고 해서 대단한 게 아니었다. 각자 그 모양도 크기도 다른 화분을 정성껏 가꿨을 뿐이었다. “한국도 지자체에서 나름의 조경을 하잖아요. 가로수도 있고, 꽃도 심고… 그런데 예쁘지 않고 획일화돼 있죠. 그런 풍경을 변하게 하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식물을 제대로 된 방법으로 키울 수 있게 돕는 거죠.” 


김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아침이다. 오픈 전 문을 열고 식물을 돌보고 있으면 동네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지나다니면서 ‘젊은 총각’에게 이 식물은 뭐고, 저 식물은 어떤 건지 이것저것 물어오거나 조언을 하기도 한다. “이제는 머루포도가 열려 있으면 스스럼없이 따 드시기도 해요(웃음).” 쇼룸 초창기부터 드나들었던 단골손님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 김 대표에게 들러 화분을 맡긴다. 벌스의 식물을 ‘분양받은’ 손님들은 키우는 식물이 아플 때면 들고 와서 상담하고, 분갈이를 해가기도 한다.  

벌스는 현재 2호점을 준비하고 있다. 널찍한 마당이 있는 공간을 물색 중이다. 사람과 식물을 좀 더 가깝게 연결하기 위해서다. “그때가 되면 동네 아이들을 위한 식물 교실도 열고, 허브를 이용한 요리법도 알려주고…, 할 수 있는 일이 지금보다 더 많아질 것 같아요.”

3년 전부터 서울 염리동에서 ‘공간 식물성’을 운영하고 있는 정수진 대표는 식물 선생님이다. 음반 레이블 파스텔이 소소한 배움을 나누기 위해 기획한 ‘스쿨 파스텔’에는 시 쓰기·소설 쓰기·나무 작업·드로잉 등 각종 ‘처음학교’가 여럿 개설돼 있다. 정 대표는 지난 2월부터 ‘식물을 기르고 싶은 처음학교’라는 강좌를 맡아 사람들을 만난다. “몇 년 전 프리마켓에 나가서 식물을 팔았던 적이 있어요. 근데 손님들이 제 매대를 가리키면서 ‘아 나는 저거 죽일 거 같아’라고 얘기하시더라고요. 살아 있는 걸 보면서도 그런 걱정이 먼저 앞서는 걸 보면서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었어요. 저 역시 경험했던 실패를 나누면 좋겠더라고요.” 

ⓒ시사IN 조남진‘공간 식물성’의 정수진 대표는 처음 식물을 기르는 사람들을 위한 강의를 연다.

수강생들은 정 대표가 준비해온 식물을 각자 심으면서 ‘글자로 읽어서는 다 알 수 없는’ 방법들을 나눈다. 분재나 베란다 텃밭보다야 진입장벽이 낮겠지만 사실 식물을 기르는 일은 만만치 않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식물을 한두 번쯤 ‘죽여본 경험’이 있다. 특히 식물 초보가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물주기다. 대개는 물을 적게 줘서가 아니라 많이 줘서 죽인다. ‘흙에 손가락을 1㎝ 정도 넣어보고 말랐으면 물을 주라’는 쉬워 보이는 팁도 초보에게는 도무지 도움이 안 된다. “정량화된 관리법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아요. 2~3일에 한 번 물을 주는 식물이라고 해도, 통풍이 안 되는 집이면 물을 주는 주기가 길어져야 하거든요. 이상한 말일 수도 있는데, 그래서 식물은 많이 죽여볼수록 잘 키우게 되는 거 같아요(웃음).” 


나와 맞는 식물을 찾아가는 과정

사람이 다양하듯, 식물도 그 종류가 다양해 자기와 ‘궁합’이 맞는 식물이 있기 마련이다. 나와 맞는 식물을 찾아가는 과정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과도 닮았다고 정 대표는 생각한다. 미술을 전공하고 관련 작업을 계속 해왔던 정 대표를 슬럼프에서 구한 것 역시 식물이었다. 몇 차례 작업실에 식물을 들여 죽이고, 키우고, 살리는 동안 식물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식물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매일 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까지 나아갔다. 공간 식물성은 식물을 판매할 뿐 아니라 각종 기획 전시와 대관 전시를 열기 위해 만들었다.

정 대표는 특정 식물에 대한 유행이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식물을 기르고 가꿔온 ‘가드닝’의 역사가 유구하듯, 식물에 대한 지금의 붐도 일시적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 일단 유행에 휩쓸려 식물을 기르기 시작했다 하더라도 식물을 접하고 공간의 풍경만이 아니라 마음의 풍경이 달라진 경험을 해본 사람들은 점점 더 다양한 식물을 만나고 싶어 한다. “고객들이 찾는 식물의 종류가 최근 1~2년 사이에 굉장히 다양해졌어요. 호기심이 생긴 거죠. 그런 요구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런 변화가 기뻐요.”

슬로우 파마씨의 이구름 대표도, 벌스의 김성수 대표도, 공간 식물성의 정수진 대표도 처음부터 식물을 잘 기르는 ‘금손’은 아니었다. 세 사람은 입을 모아 “일단 한 개부터 키워보라”고 조언한다. “기업이나 개인이나, 굉장히 의욕이 넘쳐요. 방에는 어떤 식물, 거실에는 어떤 식물을 놓겠다는 식으로 ‘그림’부터 왕창 그려서 접근하거든요. 그렇게 쓴 돈은 쓰레기통으로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웃음).” 이구름 대표의 말이다.

식물을 잘 기르기 위해서는 빛·물·바람 같은 조건이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애정과 관찰이다. 화분이 놓여 있는 공간을 ‘매일 회진하듯 하라’는 말이 나오는 게 과장이 아니라고 세 사람은 말한다. 그러나 그마저도 어렵다면 백화점에 어떤 식물들이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자. 빛과 물과 바람이 부족해도 잘 살 수 있는 ‘무덤덤한’, 그래서 이른바 ‘똥손’도 죽일 수 없는 식물들이 주로 백화점 인테리어에 쓰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공기 정화 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웬만한 식물은 기본적으로 공기 정화 기능이 있다고 보면 된다. 물을 언제 줄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수경 재배부터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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