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의 선택은 정치 행위이다. ‘의상의 정치학’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 이유이다. ‘의상의 정치학’은 어떻게 의상이 다양한 정황 속에서 각기 다른 기능을 하며, 그 의상을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개인적 또는 국가적 정체성이 형성되거나 강요되는가를 보여준다.

특정한 의상이 특정한 정황과 연계될 때에, 그 의상은 정치적 저항이나 정치적 견해의 선언을 상징한다. 한국 역사에서 1920~1930년대의 이른바 ‘신여성’이 입었던 서양식 의상은 가부장제의 억압적 전통에 대한 저항을 의미하기도 했다. 또 식민치하에서 전통 의상을 입는 행위는 식민체제에 대한 정치적 저항을 의미하기도 한다.  

2017년 5월10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식에서 의상이 화제로 등장했다. 한국 역사에서 남자 대통령이 취임할 때 배우자의 의상은 예외 없이 한복이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의 배우자 김정숙 여사는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한복이 아닌 대통령과 같은 서구식 의상을 입었다. 나는 이러한 의상의 ‘균형’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비서구 사회에서 남자의 서구 의상은 ‘진보와 근대화’의 주체라는 의미로, 여성의 전통 의상은 토착주의적 ‘전통의 보존과 계승’이라는 배타적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상징적 의미로 자리매김한다. 그래서 남자 대통령의 서구식 의상과 그 배우자의 한국 전통 의상이라는 이 어긋나는 불균형의 의상은, 대통령 취임식이나 외국 순방에서 ‘자연스럽게’ 볼 수 있던 현상이었다. 한국의 정치·사회적 공간에서 남성과 여성에 대한 상충적인 정치적 신념과 기대의 내용이 드러나는 한 단면이었다. 이러한 의상의 정치학을 통해, 남성은 서구와 같은 진보와 발전을 이루는 진취적인 ‘변화의 주체’로, 여성은 남성을 보조하고 전통을 보존하는 과거에 고착된 ‘수동적 객체’로 그 정치·사회적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21세기 한국에서 여성은 여전히 종교 또는 사회·정치적 행사에서 남성의 보조자들로 ‘동원’되고 호명된다. 이렇게 동원되는 여성은 많은 경우 평소에 입지 않는 전통 의상인 한복을 입곤 한다. 표면적으로는 여성의 자발성을 띠는 것 같지만, 그 ‘자발성’의 그림자 뒤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여성을 남성의 보조자, 전통의 보존자로 각인하는 가부장제적 가치의 내면화이다.  

ⓒ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과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제19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치고 국회를 떠나며 환영하는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2017.5.10
한때 한국 사회에서 회자되던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와 같은 모토는 식민주의 이후의 이른바 제3세계 나라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낭만적 토착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의 자기 착오적 환상을 극대화했다. 이러한 모토는, 이미 서구와 비서구의 경계를 더는 그을 수 없이 혼합되고 교차하는 이 현실 세계의 복합성과 혼종성을 보지 않는다. ‘한국적인 것’의 모색이라는 이름 아래, 가부장제적 전통과 가치의 미화가 구체적 일상 공간은 물론이고 학문적 이론의 구성에서도 등장했다. 그러나 고정된 의미의 ‘순수 한국적인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한국의 구체적 사회·정치적 ‘정황들’과 연계된 다층적 개입이 있어야 하는 것일 뿐이다.

‘한국적’ 민주주의와 ‘한국적’ 학문을 넘어서야

이 21세기에 우리가 모색하고 집중해야 하는 것은 ‘한국적’ 민주주의라든가 또는  ‘한국적’ 학문이 아니다. 한국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한 젠더·계층·장애·인종·성정체성 등의 구조 속에서 어떻게 구체적인 개별인들의 자유·정의 그리고 평등을 확장하고 제도화하느냐 하는 물음과 씨름해야 하는 것이 절실한 과제이다. ‘한복’이 이제는 한국인의 일상복이 아닌 것처럼, 공교육 정치제도 속에서 ‘한국적’인 것에 대한 토착주의적 집착은 이 현대 민주주의 사회가 모색할 방향이 아니다. 인류의 평화적 공존이라는 민주주의 가치를 확산하는 정치·종교·학문·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여전히 남성의 보조자로, 전통의 보존자로 인식된다. 여성에 대한 객체화를 넘어서서, 그 여성이 남성과 평등한 한 인간이라는 인식론적 전이가 우리의 일상세계에서 그리고 정치·경제·종교·교육이라는 공공 세계에서 획기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한, 한국 사회에서 성숙한 민주주의를 맞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 19대 대통령이 취임할 때 우리가 목도했던 의상의 획기적 전환이, 여성들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서서히 맞물리게 되기를 바란다.

기자명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천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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