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자〉는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면서 ‘넷플릭스(Netflix)’의 영화다. 영화는 흔히 감독의 예술이라는데 일부러 제작사의 이름을 언급한 이유가 있다. 상영 방식을 두고 벌어지는 극장 배급 문제 때문이다. 여기에는 꽤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이를 알아보기에 앞서 〈옥자〉의 내용부터 살펴보자.

제목의 ‘옥자’는 돼지 이름이다. 보통 돼지가 아니다.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글로벌 기업 ‘미란도’가 육류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배권을 갖기 위해 유전자를 변형해 창조한 변종 돼지다.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강원도 산골로 보내진다. 새끼 시절부터 벌써 10년, 옥자는 몸집이 말 그대로 ‘슈퍼’급이다. 덩치와 다르게 성격은 순해 소녀 미자(안서현)와는 친자매처럼 지낸다.

ⓒ연합뉴스서울 중구 대한극장에 걸려 있는 영화 〈옥자〉 포스터.

떼려야 뗄 수 없는 미자와 옥자 사이를 갈라놓는 일이 벌어진다. 슈퍼 돼지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미란도에서 옥자를 뉴욕으로 데려가기 위해 동물학자 조니(제이크 질렌할)를 비롯해 사람들을 보낸 것이다. 미자는 이들을 쫓던 중 비밀 동물보호단체의 도움으로 서울 도심에서 옥자를 구출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옥자가 다시 미란도의 손아귀에 들어가면서 미자 또한 뉴욕행에 나선다.


이 영화는 〈설국열차〉에 이은 봉준호 감독의 다국적 프로젝트다. 〈괴물〉에서 한발 더 나아간 사실적 CG, 틸다 스윈턴과 제이크 질렌할 등 ‘어벤저스’급 할리우드 배우 캐스팅, 〈세븐〉의 촬영감독 다리우스 콘지와 〈라이프 오브 파이〉의 시각효과 감독 에릭 얀 드 보어 등 국제적인 스태프까지 합류했다. 〈옥자〉는 ‘대박’이 보장된 특급 콘텐츠다.

그런데도 〈옥자〉를 개봉하기로 확정한 극장은 6월16일 현재 전국 100개 이내다. 전국 스크린 수가 2400개가 넘고, 블록버스터는 2000개 가까이 상영관을 확보하는 경우도 있는데 〈옥자〉를 볼 수 있는 곳은 현저히 적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제작비가 600억원 들어간 〈옥자〉는, 스크린 200개라는 상한선을 넘지 않은 영화의 기준을 적용해 ‘다양성 영화’로 분류해야 한다.

기형적인 사태가 벌어진 까닭은 자명하다. 멀티플렉스를 보유한 CJ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같은 국내 대형 배급사가 〈옥자〉 상영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상영 거부가 ‘영화산업 생태계의 구조를 지키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입을 모은다. 동영상을 온라인으로 스트리밍 서비스하는 넷플릭스가 극장에서도 영화를 동시 개봉하면, 국내 영화계의 유통 질서가 어지럽혀진다는 주장이다.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은 아니다. 한국에서 영화 유통은 대개 순차적 과정에 따른다.

먼저 극장에서 개봉하고 일정 기간의 홀드백(영화가 극장 상영 후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할 때까지 걸리는 최소 상영 기간)을 거쳐야 한다. IPTV·VOD·케이블 TV와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는 그 뒤에야 이뤄진다.

다만 국내 대형 배급사의 〈옥자〉 보이콧이 환영받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들은 그동안 극장 플랫폼이라는 우월한 지위를 악용해 흥행이 보장된 영화에 스크린을 몰아주고, 속칭 ‘퐁당퐁당’이라 불리는 교차 상영으로 다양성 영화에 불이익을 줘왔다. 이 과정에서 관객의 선택과 접근은 심각하게 침해됐다.

넷플릭스의 유통 질서 흐리기?

〈옥자〉 보이콧 논란은 국내 대형 배급사의 힘을 보여주는 일례다. 막대한 투자와 각종 흥행 요소로 무장한 대작조차도, 대형 배급사의 실력 행사 앞에서는 무력해진다. 그동안 대형 배급사가 누린 독점적 지위를 역으로 증명하는 대목이다. ‘넷플릭스의 극장 유통 질서 흐리기’라는 프레임은 그래서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사안의 본질은 ‘박힌 돌’ 국내 대형 배급사와 ‘굴러온 돌’ 넷플릭스 간의 힘겨루기다.

한국에서 신구 영화 플랫폼의 충돌 계기는 〈옥자〉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넷플릭스는 2016년 1월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유료 서비스 가입자 수는 좀처럼 늘지 않았다. 〈옥자〉 제작비 전액을 넷플릭스가 댄 것은 한국 시장을 더 적극적으로 공략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다. 이후에도 넷플릭스는 한국에서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해 영향력을 높여갈 예정이다. 이미 김성훈 감독(〈터널〉)과 김은희 작가(〈시그널〉)가 참여한 8부작 드라마 〈킹덤〉 제작도 확정지었다. 〈킹덤〉은 내년 전 세계 190개 국가에 공개될 예정이다.

ⓒ연합뉴스6월14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영화 〈옥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감독과 작가 처지에서 넷플릭스와 같은 외국 자본의 국내 투자는 반가운 소식이다. 한국의 많은 창작자는 제작까지 겸비한 국내 대형 배급사가 원하는 방향에 맞춰 흥행이 검증된 장르와 이야기에만 재능을 소비해왔다. 넷플릭스는 그와 다르게 창작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함으로써 새로운 종류의 영화로 소비자를 유혹해 유통뿐 아니라 제작 질서도 재편할 기세다. 이 전략은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와 20세기폭스 코리아가 각각 〈밀정〉과 〈곡성〉으로 성공시킨 바 있다.


〈옥자〉를 지켜보는 국내 대형 배급사들의 속내는 복잡할 수밖에 없다. 봉준호 감독의 요청으로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옥자〉의 극장 상영을 결정하자, 그 배급권을 따내기 위해 CJ CGV가 경쟁에 참여했던 건 잘 알려져 있다. 지금은 배급·유통 질서 운운하며 날을 세우고 있으나, 사실 CJ CGV 처지에서 플랫폼의 형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옥자〉가 극장 환경에 어울리는, 더 정확히는 수익이 보장되는 콘텐츠라는 판단이 먼저였다. 결과적으로 〈옥자〉의 국내 극장 배급은 멀티플렉스와 같은 플랫폼을 보유하지 못한 NEW에게 돌아갔다. 이제 국내 대형 배급사들은 넷플릭스는 물론이고, NEW를 비롯한 다른 배급사들까지 견제해야 한다. 독과점하고 있는 시장 주도권을 잃게 될 수 있는 형국이다.

영화를 보는 플랫폼은 극장 외에도 다양해졌다. 또한 극장에서 흥행이 저조했던 영화의 경우, 개봉 기간 중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할 만큼 홀드백 기간도 현저히 짧아졌다. 다시 말해 넷플릭스와 같은 신규 플랫폼의 배급 진출에 따른 영화산업의 변화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넷플릭스의 유통 질서 교란을 하소연해서 해결될 단계는 지난 것이다.

이를 인정한다면 넷플릭스의 유통 질서 교란에 대한 하소연이 아니라 앞으로 배급의 유통 질서를 어떻게 재정립할지 논의가 뒤따라야 한다. 우리가 여기서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지금 논란의 중심에 선 플랫폼의 주체들이 한국 영화산업의 공룡 같은 존재라는 점이다.

1998년 한국에서 멀티플렉스 출현으로 큰 피해를 본 건 독립영화와 예술영화 진영이다. 다양한 영화를 상영할 것이라는 애초 기대와 달리 국내 대형 배급사는 몇몇 블록버스터에 스크린을 몰아주면서 배급 질서를 교란했다. 소수의 화제작을 제외하면 작은 영화들에 충분한 상영 기회를 보장하지 않았다. 여기에 넷플릭스와 같은 거대 플랫폼의 극장 진출이 〈옥자〉를 시작으로 늘어난다면, 또 이번과 다르게 국내 대형 배급사가 멀티플렉스의 문호를 개방한다면 작은 영화의 고사는 더 빨라질 것이다.

국내 대형 배급사가 이번 논란으로 유통 질서를 바로잡고 싶다면 이에 대한 문제 해결 의지를 전제해야 한다. 또 다른 공룡의 출현으로 위협받고 있는 영화산업 생태계의 건전한 복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럴 때 작은 영화도, 창작자도, 기존 플랫폼도, 신규 플랫폼도 한국 영화산업의 공생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기자명 허남웅 (영화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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