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평가라는 남는 장사
  • 이대진(필명∙대학교 교직원)
  • 호수 510
  • 승인 2017.06.27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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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평가의 신뢰도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내외 평가 기관들은 해마다 평가 방식을 미세 조정한다. 그런데 대학은 이런 부정확한 평가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서 외국의 대학 평가 기관에 제출한 자료가 조작된 사실이 드러나 올해 순위 발표에서 제외됐다. 조작한 이는 다름 아닌 대학 평가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교직원이었다. 평가 순위를 높이려는 욕심에 기업 관계자가 답해야 하는 ‘졸업생 평판도 설문’의 다수를 자신이 임의로 작성해 제출했다는 게 해당 대학의 설명이다.

자료를 조작한 그 교직원 처지에서 생각해보았다. 만약 전년도보다 순위가 하락했다면? 대학의 위상과 브랜드 가치 하락,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게 전달될 부정적 이미지, 외부 사업이나 과제 수주에 미칠 영향…. 이런 유무형의 손실을 놓고 벌어질 책임 추궁과 질책이 두렵지 않았을까.

사실 대학 평가의 신뢰도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평가 기관들이 공정성과 신뢰 확보를 위해 평가 방식을 해마다 미세 조정하고 있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해외 대학 평가의 경우도 대학이 직접 제출하는 자료를 다른 공식 자료와 일일이 비교·검증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순위를 높이기 위한 ‘데이터 마사지’가 조직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소문도 끊이지 않고 있다.

ⓒ김보경 그림

하지만 국내에서는 주요 언론사들이 대학 평가를 주도하는 탓일까. 최근에는 대학 평가의 신뢰도나 부작용에 대한 비판마저 사라졌다. 평가 결과가 나오면 홍보 자료를 베낀 듯 영혼 없는 기사들이 쏟아진다. 어떤 대학의 순위는 고작 1년 만에 수십 계단씩 올랐는데도 과연 신뢰할 수 있는 결과인지, 무엇을 어떻게 잘해서 순위가 상승한 건지 면밀한 분석이나 해설이 없다.

대학들은 “원하지도 않는 외부 평가에 휘둘린다”라며 불편해한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평가의 늪에 빠져든다. 막상 순위표에 이름을 올리거나 전년도보다 등수가 오른 대학들은 ‘세계 ○○위’ ‘국내 ○위’ 따위 수식어를 달고 앞다퉈 홍보한다. 창의적인 교육 프로그램이나 세계적인 연구 성과보다 순위를 보여주는 숫자 하나가 더 호소력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외부 평가에 전략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전담 부서를 만들고 평가 데이터 수집·관리, 시뮬레이션을 통한 순위 예측, 평가 기관과 언론사와의 유대 관계 형성 등에 적지 않은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 우리 대학 평가팀 실무자에게 “큰마음 먹고 이런저런 대학 평가를 거절하거나 무시할 순 없느냐”라고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평가를 거부해도 어차피 순위는 나온다. 그럴 바에야 제대로 대응하고 관리하는 게 낫다.”

이 실무자는 “대학 평가는 장사다”라고 말한다. 평가 결과(순위)는 고등교육 수요자를 위한 정보로서 무료로 제공된다. 하지만 동시에 평가 주체의 수익을 위한 ‘미끼 상품’이기도 하다. 국내외 교육 정보 업체나 언론사들은 순위 발표 후 자기네 책자나 신문에 광고나 홍보성 기사를 게재하라며 대학에 제안서를 내민다. 평가받는 쪽은 그들과의 우호적 관계 형성을 위해, 관련 기사에 순위가 상승한 우수 대학으로 소개되기 위해 광고비를 집행한다.

“순위가 높으면 기분 좋은 것 아냐?”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에 익숙한 학생 사회도 대학 평가와 서열화 문제에 무감각하다. 오히려 “다른 대학보다 순위가 높게 나오면 기분 좋은 거 아니냐”라는 반응이 많다. 학생들은 자기 대학 순위를 SNS로 공유하며 내가 누군가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는 우월감을 함께 나눈다.

대학 평가는 교육 환경과 연구 역량을 다른 대학과 비교·점검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한 대학의 수준과 성과의 총체로 읽힌다. 좋은 평가를 받아도 실무 담당자조차 “우리 순위가 왜 이렇게 올랐지?”라며 의아해하는 평가라면, 그 늪에서 빠져나올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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