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 집에 혼자 있겠구나. 밖에서 전화하면 딸아이는 정정한다. 아니, 무지랑 둘이 있어. 아, 그렇지 무지가 있었지. 자꾸 까먹는다. 무지는 우리집 고양이다. 사람이 아닌 고양이라서 나는 아이 혼자 있다고 여기고, 고양이를 자신과 동등한 개체로 여기는 딸아이는 둘이 있다고 말한다.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기가 이토록 어렵다.
3년 전, 딸아이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한 장 보냈다.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 네 마리를 품고 있는 장면이 ‘명화’ 같았다. 친구의 지인 새끼 고양이들인데 다 입양이 결정됐고 한 마리만 남았다며 우리가 키우자고 했다. 말로 졸랐으면 단박에 거절했을 텐데 사진을 보곤 홀렸다. 나는 고양이 입양 불가 의견을 빈대떡 뒤집듯 뒤집었다. “그럼 데려오든가.”
흰색·밤색·검은색 털이 멋스러운 삼색이가 식탁 아래 오도카니 몸을 말고 있었다. 딸아이는 고양이를 신발주머니에 넣어 운반했다고 한다. 도보로 20분 거리다. 가만히 있었느냐고 물으니 계속 야옹야옹 거렸단다. 그 장면을 그려보았다. 열세 살 여자아이와 생후 3개월짜리 고양이의 동행. 어미 품을 벗어난 어린 생명체의 두려움과, 다른 생명체를 품은 어린이의 책임감이 둘을 단단히 묶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고양이 이름은 무지로 지었다. 내 삶의 모토인 ‘네 무지를 알라’는 의미의 무지. 무지 귀엽다는 뜻의 부사 무지. 딸아이는 인터넷으로 육묘 노하우를 빠르게 학습하고는 전문용어로 고양이의 행동을 해설했다. 저건 식빵 자세, 닭 자세, 꾹꾹이, 그루밍…. 그리고 병든 노모 돌보듯 조석으로 사료와 물을 챙겼다. 무지랑 놀기가 중요 일과로 자리 잡았다. 둘은 좁은 거실을 톰과 제리처럼 가로지르며 뛰었다.
나도 놀고 싶었다. 낚싯대 장난감을 들고 유인해봤는데 무지가 시큰둥했다. 왜 엄마에겐 반응이 없냐고 물었더니 수레가 말한다. “엄마, 고양이 관점에서 생각해야지. 몸을 그렇게 뻣뻣이 세우고 있으면 오겠어.”
그러고 보니 난 항상 무지를 아기처럼 번쩍 들어올렸다. 내 눈높이로 끌어올리면 고양이는 1초 만에 빠져나가곤 했다. 수레는 늘 엎드려서 네 발로 무지랑 눈을 맞추었다. 이것이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한 “되기”인가. 자신의 고정된 위치를 버리고 다른 존재로 넘어가기. 한 사람의 놀이 능력은 곧 교감 능력이자 변신 능력이고 사랑 능력이나 다름없었다.
“고양이랑 결혼하고 싶어”
고양이는 만져지는 자연이다. 무지는 명당자리를 용케도 발견한다. 외출에서 돌아와 겉옷을 벗자마자 손 씻고 오면 그새 외투 위에 여왕처럼 앉아 있다. 목도리, 스카프부터 쇼핑백, 책까지 폭신하든 단단하든 보드랍든 뭐든 한 겹 깔고 본다. 커튼 사이로 한줌 볕이 들면 그곳이 아무리 손바닥만 할지라도 몸집의 표면적을 최대화해 누린다. 볕을 모은다. 무지를 보면서 알았다. 내가 고양이를 싫어한 게 아니라 고양이 키우는 걸 싫어했구나.
버지니아 울프가 쓴 〈플러쉬〉라는 소설에서 난 수레와 무지를 떠올렸다. 주인공이 코커스패니얼 견공 플러쉬와 여주인 바렛이다. 냄새와 행동으로 세상을 감각하는 플러쉬와 언어 생활자 바렛은 “넘을 수 없는 차원의 장벽(36쪽)”을 느끼지만 반려 관계가 되어 “각자에게서 휴면상태인 것으로 서로를 완성시켜준다(189쪽)”. 플러쉬는 여주인의 침대 발치에 자리를 잡는데 무지가 밤마다 수레의 발치에서 잠드는 것 같았다. 두 존재의 교감에는 ‘종’의 동일성보다 ‘곁’의 연속성이 중요함을 책과 현실이 증명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어린 시절부터 개를 키웠다. 평생 개의 행동과 습성, 감각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연구했다고 한다. 〈플러쉬〉는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 쓴 게 아니라 개가 되고픈 사람이 쓴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렸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고양이랑 결혼하고 싶다는 딸아이 수레의 말도 헛웃음으로 넘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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