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SNS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봤다. 직원이 대부분 여성이며 임원도 거의 여성이고, 직원들은 3일씩 주어지는 생리휴가를 남발하는 반도체 회사가 있다고 한다. 그곳에서 A라는 한 페미니스트 직원이 유독 남자 직원들을 괴롭게 했다. 남자 화장실에 피에 전 생리대를 붙여두거나, 포스트잇을 붙이며 사람들을 선동했다. 그렇게 문제를 일삼던 A는 어느 날 남자 직원들에게 또다시 공격적인 행동을 했다. 이번엔 가방에 든 물건들을 던졌는데, 얻어맞고 보니 소지품의 정체는 차례대로 페미니스트 배지, ‘입트페(입이 트이는 페미니즘)’라 불리는 책, 생리대였단다. 그 덕분에 SNS에서는 생리휴가라는 단어가 종일 화제였다.

생리대가 끼어 있는 꼴이 영 어색하다고 생각하려니 비슷한 이야기 하나가 또 떠올랐다. 차를 타고 가던 폐경기의 언니가 갑자기 생리를 터뜨린다. 언니는 “뜨거워. 몸속에서 밀려나와”라고 말하고, 동생은 언니의 생리 냄새를 물고기 냄새로 묘사한다. 그리고 언니의 엉덩이를 들어서, 생리대로 허벅지를 닦고, 손톱깎이에 달린 작은 칼로 언니의 팬티를 잘라 벗긴다. 김훈 작가의 단편소설 〈언니의 폐경〉 속 장면이다. ‘한국 문단의 벼락같은 축복’이라는 말로 곧잘 수식되는 작가는 이 작품으로 2005년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갈수록 정확성을 더해간다는 평을 받았다. 물론 심사위원은 전부 남자였다.

ⓒ정켈 그림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저 소설 속 생리에 대한 묘사는 다 틀렸다. 생리대는 휴지가 아니며, 생리는 한 번 닦아내고 피 묻은 속옷을 버린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생리할 때의 느낌은 고사하고 흉내를 내보려면 무엇을 해야 했고 무엇을 하지 않았어야 하는지 감도 못 잡는다. 여성들이 어떤 부분에서 폭소를 터뜨린 건지 알지 못한다. 경험하지 않은 세계는 오랜 시간을 들여 관찰하고 경청하지 않고선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것이 아닌 세계에 대하여 끊임없이 말하고 자신 있게 쓴다. 소름 끼칠 정도로 관심이 많으면서 동시에 관심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 왜 그들의 이야기가 어불성설인지 그들은 앞으로도 영영 모를 것이다.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일단 세상에서 여성의 삶이 특수한 일부의 것으로 치부되어 쉽게 모방하기 어렵게 숨어버린 것, 다음은 그럼에도 평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자료 조사를 중요시한다고 말하던 남자 소설가가 자신이 그린 여성의 삶이 공감을 부르리라고 굳게 믿는 것. 이 둘은 서로를 끊임없이 강화한다. 여성의 삶은 생소해서 남성에 의해 제대로 모방되지 못하고, 그러면서 생소한 삶이 한 번 더 생소해진다.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 말할 수는 있지만…

물론 우리는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말할 수 있는 만큼이나 오만이 빚어낸 황당함을 조롱할 수도 있다. 나는 그들의 납작한 반쪽짜리 세계에서 구태여 있는지 없는지 모를 의미를 찾아 가치를 매겨주는 일은 이제 그만두고 싶다. 그보다는, 내 것이 아닌 세계에 그렇게나 관심이 많으면서도 절대로 관찰하고 경청하려 하지 않는 그들이 만들어낸 것들이 전부 가짜이며, 가짜인 채 의미가 없다고 말하겠다.

여태껏 남성들이 서로에게 속아 넘어가며 단단하게 만들어온 여성의 세계는 우스꽝스러웠다. 앞서의 조롱은 단순한 조롱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밀어내는 집요한 행위이므로 이제 그 우스꽝스러움은 점점 더 탄로 날 일만 남았다. 한계를 느끼고 쓰지 않거나, 나아지기 위해 배우거나, 야유 속에 폐기되거나. 여성들의 삶을 대신 말하던 남성들은 이제 셋 중 하나, 어디로 갈지 고르면 되겠다.

기자명 이민경 (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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