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여름, 기사를 마감하고 누워 있는데 뜬금없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독일로 건너갔다는 일본인 작가가 떠올랐다. 다와다 요코는 독일에서 독일어로 작품을 쓰는 일본인 작가다. 눈앞 천장 동편에서 서편으로 그녀가 탔을 열차가 지나갔다.

나도 서쪽으로 떠나고 싶어졌다. 돈이 없었다. 공짜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중국 공자학원의 장학 프로그램이란 게 걸려들었다. 외국인들에게 중국에 와서 중국어를 배우라고 1년 동안 학비도 대주고, 심지어 재워주고 먹여준단다. 옳다구나! 같은 해 가을, 몸담고 있던 회사에 사표를 냈다.

이제 날 먹여주고 재워준다는 학교를 정해야 했다. 중국 지도 위에 아무리 눈알을 굴려봐도 도대체 어딜 가야 할지 감이 안 왔다. 하얼빈은 빙등제가 유명하다 하니 겨울에 너무 추울 것 같고, 충칭은 미녀가 많다 하니 외출하면 기가 죽을 것 같고, 하이난은 관광지라 물가가 비쌀 것 같고, 이래저래 재다가 결국 항저우를 선택했다. 평소 좋아하는 배우 탕웨이가 항저우 출신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게다가 알리바바 마윈 회장도 항저우 사범대학을 나왔단다. 그럼 항저우에서 탕웨이처럼 예뻐진 후 마윈처럼 부자가 되면 되겠군!

ⓒEPA중국의 대학 신입생들이 군복을 입고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

2015년 퇴직금을 고이 모아놓은 통장에 손을 대야 할 즈음, 항저우 사범대학에서 어학연수 장학생 합격 통지서가 날아왔다. 다들 중국 공산품 질을 걱정하면서 샴푸며 화장품이며 잔뜩 챙겨 가는데 나는 캐리어 안에 이불과 겨울에 입을 패딩 점퍼만 달랑 넣었다. 중국도 사람 사는 곳인데 설마 얼굴에 찍어 바를 게 없을까 싶었다. 


항저우는 서쪽이기도 하지만 남쪽이기도 했다. 2015년 9월8일의 항저우 기온은 40℃에 육박했다. 더운 날씨를 좋아하는 나는 중국 도착 첫날부터 ‘역시 회사 때려치우고 남서쪽에 오길 잘했다’며 기뻐했다. 그러다 땀 뻘뻘 흘리며 군사훈련을 받는 군복 차림의 학생들을 보니 그제야 살짝 긴장이 됐다. 중국 대학 신입생들은 매년 9월 입학 직후 약 3주간 남녀 예외 없이 군사훈련(軍訓)을 받는다. 처음 보는 광경을 평소처럼 한국 SNS에 올릴 수도 없었다. 구글, 페이스북, 유튜브 등이 열리지 않는다고 사전에 듣긴 했지만 막상 진짜 안 열리니 답답했다. 슬슬 걱정이 되었다.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가 없는 나라에서 내가 잘 버틸 수 있을까.

대륙에서 눈 감고 귀 막고 푹 쉬다 왔더니…

다행히 잘 버텼다. 아니, 사실 버틴다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을 정도로 너무 잘 지냈다. 뉴스를 만들다가 뉴스를 보지도 듣지도 않는 처지가 되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한국 뉴스는 노느라 바빠서 볼 시간이 없고, 중국 뉴스는 봐도 뭔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세상은 언제나 부조리할 것이고, 나는 대륙에서 눈 감고 귀 막고 푹 쉬다 왔다.

1년간 잘 놀다가 2016년 7월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탕웨이 같은 미녀도, 마윈 같은 부자도 되기 전에 비자 기간이 만료돼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귀국 이후에도 중국의 매력을 잊지 못해 틈만 나면 중국에 간다. 2017년 현재는 중화권을 오가며 현지 문화와 상품을 한국에 소개하는 일을 하는 한편, 따이공(보따리상) 친구들과 함께 물류 공유경제 플랫폼을 준비 중이다. 앞으로 이 지면을 통해 중국을 생생히 보여드리려 한다. 나라가 크다 보니 이야깃거리도 많다.

기자명 허은선 (캐리어를끄는소녀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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